누군가 그랬다. "요즘 최고의 극한직업이 뭔지 알아? 바로 친정엄마래~" 아이를 둔 요즘 엄마들이 회사로 복직하기 위해 친정엄마에게 손을 내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기는 젊은 사람들이 봐도 힘든데 50~60대의 어머니들이 하는 육아는 얼마나 더 힘들 것인가. 임신 기간 중 이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고 그냥 웃어넘겼다. 나는 우리 엄마에게 안 그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친정엄마가 집에 놀러 오셨다. 아기도 보고 반찬도 갖다 주실 겸. 40분 거리에 살고 계셔서 자주는 힘들지만 종종 오시곤 한다. 아기를 향한 친정엄마의 사랑은 남다르다. 나는 나보다 우리 아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줄 알았는데 '나의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나보다 더 아기를 위해 뭐든 할 각오가 되어있다. 이 뿐만 아니라 엄마는 '나', 바로 자신의 딸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철부지 딸내미 모드로 돌변한다. “엄마, 나 2시간만 나갔다 올게~” 엄마는 우리 집에 오시자마자 아기와 함께 덩그러니 남겨진다. 내심 서운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오히려 웃으며 반기신다. “그래 나가서 좀 쉬고 와~”
조용한 카페에 가서 여유롭게 책을 읽었다. 육아를 하며 자주 느끼지 못하는 고요함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있는 엄마와 아기가 생각났다. ‘잘 놀고 있을까, 할머니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2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금방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엄마와 함께 나눠 먹을 디저트도 손에 들고. 내가 예상보다 빨리 집에 들어오자 엄마는 더 놀다 들어오지 왜 그랬냐며 나무라신다.
친정엄마, 나, 아기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있을 때면 기분이 묘하다. 엄마는 나를 낳았고, 나는 우리 아기를 낳았다. 우린 서로 그 어떤 관계보다 깊은 연결고리를 맺고 있다. 어떤 관계가 모녀 사이보다 깊겠는가. 엄마는 연신 아기를 챙기면서도 나를 챙기신다. “내가 얼른 먹고 아기 돌볼 테니 너는 천천히 먹어라~” 그러면 나는 거절하지 않고 오랜만에 느릿한 식사를 만끽한다. 엄마는 두 사람을 다 챙기느라 바쁘다. 본인을 챙길 여유는 있으신 걸까. 그 몫은 내가 해야 하는 건데 나는 모른 척 엄마에게 기대기만 한다.
몇 달 전에 부모님 집에서 아기와 며칠 지낸 적이 있다. 남편의 장기간 출장으로 인해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친정으로 갔다. 그 기간 동안 내심 걱정도 했다. 엄마께서 아기와 관련된 청결이나 먹거리에 대해 덜 예민하실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려와는 달리 엄마는 아기를 위해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거실을 청소하고, 아기가 쓰는 이불은 하루도 빠짐없이 먼지를 털고 햇빛에 말려두셨다. 아기 설거지 거리는 어른 것과 꼭 구분해 두시고, 아기에게 아무거나 먹이는 일도 일절 없었다.
나는 때때로 아기와 떨어져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엄마는 반대로 아기와 종일 붙어 있고 싶어 하셨다. 아기가 생각보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쉽게 마음 문을 열지 못해서 목욕을 시킬 때와 밤잠을 잘 때면 나와 단둘이 있어야만 했다. 나는 그게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엄마는 되려 그 시간을 아기와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워하셨다. 이런 게 내리사랑이구나. 내리사랑이 이렇게 위대한 거구나 깨달았다.
내년에는 회사에 복직해야 한다. 이제 워킹맘이 되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워킹맘이 가능할지 시뮬레이션 해보았더니 도저히 어렵다. 업무 특성상 매일같이 정시퇴근을 할 수 없는 컨디션이기 때문에 내가 1시간만 늦게 퇴근해도 아기를 어린이집에서 하원 시키는 시간이 저녁 7시가 된다. 1시간만 늦게 퇴근하면 양반이다. 그보다 더 늦게 퇴근하게 될 때면 내 마음은 얼마나 초조하고 미쳐버릴까. 아마 아기에게도 일에도 둘 다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고생만 엄청할 것 같다.
역시 친정엄마가 필요하다. 워킹맘이 친정엄마(혹은 시엄마)의 도움 없이 회사를 다니는 것은 불가하다. 직주근접에 살거나 회사에 어린이집이 달려 있는 경우는 그나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결국은 남편과 상의한 끝에 우리가 친정집 근처로 이사 가기로 했다. 둘 다 회사는 훨씬 멀어지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나는 그렇게 친정엄마에게 손을 벌리기로 했다. 임신 전 들었던 말, '최고의 극한직업은 친정엄마' 그것을 곧 실천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엄마는 내가 복직하면서 아기를 맡기는 것을 매우 반가워하신다. 아기의 활동량과 떼쓰기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엄마는 괜찮다고 하신다. 그냥 아기와 붙어 있는 게 좋으신가 보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줄 수 있는 분이시니까.
아기를 낳고 나면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택도 없다.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우리 엄마는 정말 위대하다는 것. 나는 우리 엄마처럼 되려면 너무 멀었다. 글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 엄마가 보고 싶다. 방에서 잠든 아기가 보고 싶다. 오늘 하루, 두 사람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내가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