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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Jul 10. 2023

빵구 난 양말

출근길 단편집

오늘 아침, 출근 준비로 바쁜 와중에 하필 신은 양말에 구멍이 났다. 갈아 신을까, 그냥 갈까 0.5초 정도 고민했지만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 양말에 구멍 하나쯤이야, 내 삶에 구멍이 얼마나 많은데.


어렸을 땐 구멍 난 양말이 참 싫었다. 신발을 벗을 일이 없는 날이라도 하루종일 노심초사하고 있는 게 싫었다. 고작 양말에 난 구멍인데 그게 나의 치명적인 약점인 양 느껴졌다. 물론 외모에 예민한 10대이니 그럴 수도 있었겠다. 엄마가 기워 준 양말은 더 싫었다. 그 불편한 감촉은 물론, 어쩌다 양말을 보일 일이 생겼을 때 “어? 빵구가 났네?”하며 천연덕스럽게 모른 척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성인이 되고 난 후, 구멍 난 양말쯤은 미련 없이 쓰레기통으로 버리지만 가끔 좋아하는 디자인의 양말은 주저하게 된다. 그렇게 몇 번 더 신다가 엄지발가락이 ‘나 여기 있어요’하고 강한 존재감을 내밀게 될 때쯤, “이것 봐라 내 발에 알감자 생겼다!” 깔깔거리며 가족들에게 한 번 보여준 후 먼 곳으로 보내준다.


오늘 신은 양말처럼 작은 구멍은 애교다. 나만 아는 비밀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들켜도 부끄럽지 않은 나이가 됐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이것이 나의 인간미이오”라고 말하거나, “어머 바빠서 몰랐네요”하며 능청 떨 수 있다. 내 삶의 구멍이 아닌, 내 약점이 아닌 것을 알기에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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