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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Jan 29. 2024

#6 워킹맘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출근길 단편집

너무 지쳤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서 그냥 내버려 뒀다. 아니 사실 지친지도 몰랐다. 모든 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나의 결정에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힘듦을 인정한다고 해서 나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단정 짓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어리석게도 그렇게 생각했다. 몸이 지치니 생각도 점점 좁아지고 모든 화살은 '나' 자신에게로 왔다. 아무도 나에게 과녁을 겨누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모두가 나를 응원하고 있고, 잘하고 있다고 말하고, 심지어 실제로 내 상태를 제외한 모든 것 -아기의 성장, 회사에서의 성과, 집안일, 가족관계 등등 - 은 정말로 잘 되고 있었다. 딱 하나 '나'만 놓쳤다.


‘나’를 놓치고 나서 가장 힘든 점은 피곤한데도 잠을 푹 못 잔다는 것이다. 하루에 4-5번씩 깨는 것은 기본이다. 심한 날은 10번도 넘게 깬다. 거의 가수면 상태로 자는 것 같다. 오늘도 새벽 4시에 잠에서 깼다. 조금 더 자볼까 침대에서 뒹굴거려 봤지만 그렇게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도 잠이 오지 않아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느긋한 아침 식사를 하고, 지옥철이 아닌 살만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사무실에 들어와 꺼진 불을 밝혔다. (아침 등원은 나보다 출근이 늦은 남편 담당이다.)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는 좋은 점도 있지만 오후엔 체력이 고갈되어 빌빌 거린다.


20대에는 감기에 걸린 적이라곤 한 번 밖에 없던 내가 수시로 아파서 골골 거린다. 한의원에 가서 보약이라도 지어먹으라는 양가 어머님들 말을 듣고 찾아갔다. 내 맥을 짚으시고는 '기'가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고 했다.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러게요 선생님 저도 제가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쓰디쓴 한약을 받아왔다. 먹을 때마다 괴롭지만 건강이 조금이라도 호전될 거라 믿으며 애써 담담히 마신다.


체력이 바닥나니 사람 마음도 쪼그라든다. 별것도 아닌 아이의 투정에 화르르 짜증이 타오른다. 아이가 나의 화내는 모습을 무서워하는 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며 화를 낸다. 그럼 아이는 내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엄마 그거 하지 마. 그렇게 말하지 마" 하면서 눈물 콧물 다 짜낸다. '아 내가 이 어린아이에게 뭘 한 걸까.'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다. 뒤늦게 아이를 안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나를 또 자책한다. '엄마 자격이 있는 걸까. 내가 이렇게 모자란 사람이라 아이는 내게 매일 투정을 부리는 걸까.'


회사를 안 다니면 해결이 될까? 글쎄, 나는 더 악화될 것 같다. 일주일 중 몸도 마음도 가장 힘든 날이 집에만 있는 주말이니까 말이다. 무엇에서부터 벗어나고 싶은 걸까? 아이? 글쎄, 너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 아이란 건 단언한다. 다른 건 다 됐고 아주 약간의 여유만 생겼으면 좋겠다. 나에게 지금 제일 필요한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돌 볼 시간, 내 체력을 기를 시간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이 너무 빠듯하게 살아서 그런 것 같다. 차라리 오늘처럼 내 수면 시간을 깎아가며 글을 쓰는 게 오히려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지금의 몸 상태로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면 그건 그것대로 또 몸이 상할 것 같지만 말이다.


워킹맘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남들보다 딱 2시간만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시간 동안 온전히 나를 챙길 수 있을 텐데. 어젯밤 자기 전에 아이가 한 말이 계속해서 마음을 쿡쿡 찌른다. "엄마 우리 오래오래 살자" 너무 자주 아픈 엄마를 보다 보니 어린아이가 이런 말을 다 한다. 온몸으로 아이를 껴안으며 "그럼~ 엄마랑 같이 오래 살자. 엄마 얼른 건강해질게" 말했다.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나를 챙겨야 한다. 우리 아이랑 오래오래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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