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은말고이응 Jul 18. 2017

당연한 것들

학창 시절의 우정을 지키는 법

이상하게도 요 근래 오래된 친구를 만나고 오면 우울해질 때가 있었다. 약속이 끝나고 혼자 돌아오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한참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보았다. 처음엔 친구가 싫어진 건가 해서 아찔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아도 친구는 나와의 자리에서 흠될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친구가 아니라 친구와 나 사이에 흐르는 낯선 상황이 싫었던 것이었다.     


학창 시절에서 ‘학창’은 배움의 창가라는 뜻이다. 고등학교건 대학교건 학창 시절 기억의 창을 들여다보면 내 주변엔 친구들이 있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에 따로 근황을 공유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 수 있는 것이 친구들의 일상이었다. 그 때는 대화에 질문이 필요 없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어?”라는 말 없이도 비슷한 스케줄 아래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니 어떤 질문들, “잘 지내?”, “요샌 어때?”라거나 “잘 만나고?” 같은 아주 짤막한 질문들이 파고들 사람 간의 거리가 없는 것이 이상한게 아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일자리로 떠난 지금, 그런 질문들이 쓰임새를 발휘하는 것이 이상한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태연하게, 또 자연스럽게 세월이 상황을 바꿔놓는 것을 보니 참 뻔뻔하게 느껴졌다. 그 뻔뻔한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게 참 낯설었다.     


학교 선생님 성함으로도 수다 떨던 친구와, 대화할 주제를 찾지 못해 계속 질문을 던져야할 때의, 그런 '당연한' 노력들. 오랜만에 시간을 내서 찾아간 친구의 집 앞 카페에서, 친구의 눈과 귀는 이미 내일의 업무에 있을 때, 내가 해줘야 하는 '당연한' 배려들. 사실 아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음에도 업계 용어가 달라서, 머리론 알겠는데 공감이 안 될 때, 받아들여야하는 '당연한' 차이들.


어릴 때 ‘X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했던 게임처럼, 이젠 흘러가는 세월에게 흔쾌히 '당연하지!'라고 해야만 서로를 마주할 수 있게 됐다. 학창 시절 속에서 저절로 쌓여온 시간과는 달리 노력, 배려, 차이 그 모든 것을 인정해야만 관계의 시간이 지속되는 것이다. 전보다는 조금 고달프고 꽤 어렵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친구와 함께한 시간들은 아무 것도 아닌 듯,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듯, 나에게 그 인연을 주었지만 갓 사회인이 된 입장에서 돌이켜보면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인생에서 흔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고마워하고, 누구나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그리 억울한 일이 아니다. 세상엔 참 예측가능하고 당연한 비극들이 많지만 그러한 희극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알지만, 그래도, 요 근래 오래된 친구를 만나고 오면 우울해질 때가 있었다. 아마도 그 낯선 상황들이 친구와 멀어지는 과정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나이를 먹으면 당연한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도 생각이 났다. 혼자 돌아오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한참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봤다. 노력, 이해, 배려. 그런 것들을 할 준비가 되어있고 상대방도 그럴텐데.


그래도 멀어지는 게 더 당연하다면?

지금의 이것들이 정말 어린 투정이라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처음 만나는 그 낯선 상황들이 참, 싫을 수 밖에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위로#3 <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