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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Feb 16. 2024

엄마는 왜 이제야 나를 찾아온 걸까?

곧 있으면 엄마에게서 연락이 올 것 같았다. 울리지도 않은 핸드폰을 몇 번이나 들춰보며 염없이 엄마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날 드디어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 에잇, 스팸 메시지였다. 괜히 반가워했다.


몇 시간 뒤에 또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이번엔 진짜 엄마였다. 조금 뒤 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는 아직 좀 불편한데……'라고 생각하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혜원이니?"


울음에 잠겨있다 나온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되게 나이 든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마가 젊고 예쁜 사람일 거라 기대했었던 건지, 괜히 조금 실망스러웠다.


엄마에게 금했던 것들에 대해 물어봤다. 제일 먼저 우리 집 주소 어떻게 았냐 물었다. 이사 온 지 일 년도 안 됐을 때였고, 엄마에게 주소를 알려줄 만한 사람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건지 궁금했다.


"주민센터 가 주민등록초본을 떼줘. 예전에도 몇 번 떼 봤었는데 IMF 터지고 나서는 안 알려주더라. 빚쟁이들이 가족인 척하면서 주소를 어봤었 봐. 런데 마 전에 다시 가보니까 소를 알려주더라고."


엄마 내 개인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게 충격이었다. 게다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니…….


"그럼 어디 사는지 다 알고 있었는데, 왜 그동안 연락을 안 했어요?"


"너는 기억 안 나겠지만 4살 때까지는 가끔 기도 했었어. 근데 엄마 아는 사람 중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사람 랑 같이 살 거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꾸 연락하면 네가 적응하기 힘들 거래. 그래서 연락을 끊은 거야."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날 위해 그랬다고 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따져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고, 당시 엄마에겐 그게 고르고 고른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으니. 


"그러면 20살 때 날 데려가겠다고 한 건 왜 그런 거예요?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어요?"


"그건 이혼하기 전에 네 아빠랑 약속한 게 있었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아빠가 키우고, 20살이 되면 가 데려가기로 했거든."


내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약속을 할 수가 있까. 둘 다 자식 입장은 요만큼도 생각해보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마 말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이었다. 날 데려갈 생각이었으면 그전에 연락을 하고 지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떻게 하루아침에 데려갈 생각을  수가 있지? 


문득 할머니가 '네 엄만 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동안 마에 대해 들은 건 죄다 안 좋은 얘기들 뿐이었다. 날 위해 연락을 끊었다는 게 진짜일지, 갑자기 모든 게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엄마에 대한 불신을 해결해야만 우리 관계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엄마에게 솔직하게 묻기로 했다.


"날 데려갈 생각까지 했으면서 왜 그동안 연락 안 했어요?  22살 때까지 이사도 간 적이 없었고 집 전화번호도 그대로였어요. 솔직히 마음만 있었으면 충분히 연락할 수 있었던 거 아니에요? 날 위해서였단 건 핑계고, 그냥 엄마가 무관심해서 그랬던 거 아니에요?"


"미안해. 엄마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어. 변명 같이 들리겠지만, 그땐 네 아빠 눈치가 많이 보였어. 주소를 알아도 찾아갈 수 없고, 연락처를 알아도 전화할 수가 없었어. 엄마는 네 집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거든."


그때 엄마가 내가 전혀 알지 못던 얘길 꺼냈다.


"사실 네가 중학생이었을 때도 한번 만나려고 했었어. 그런 그땐 네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할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엄마를 만나면 어떨 것 같냐'라고 물었던 것 도 했다.  나는 '이제와 만나봤자 뭐 하겠어, 엄만 재혼까지 으니 새 출발 해서 잘 살고 있겠지' 식으로 대답했던 것 같은데 그게 엄마에 '만나기 싫다'는 의사표로 전달됐나 보다. 


사실 할머니 앞에서는 엄마를 만나보고 싶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머니는 내가 엄마 없이 잘 지내길 바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나만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건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어차피 엄마 날 만나러 오지도 않을 텐데 굳이 솔직하게 대답할 필요 없고 생각했다. 진실은 나만 알면 되는 거였다.


그동안 TV에서 입양 얘기가 나오면 그게 마치 내 얘기인 것 같았다. 저들은 부모가 도저히 키울 수 없는 환경이라 그랬다 쳐도, 우리 엄마는 왜 나를 키우지 않았을까 궁금.


그동안 머니가 해준 얘기만 곧이곧대로 믿고 엄마는 나를 싫어한다고 믿었, 내가 엄마에게 버려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에게서 거절당했 생각에 나 자신을 사랑받기 충분한 존재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 모성애라는 말도 실감할 수 없었다. 그때 단 한 번만이라도 나를 싫어해서 버린 게 아니었다고 말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마는 전에도 나를 만나려고 했었, 나만 그걸 까맣게 모르고 있던 거였. 엄마가 얘기해주지 않았더라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이야기였다.


이번에 나를 찾아온 건, 새아빠 아들이 지난달 결혼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의 자식 이만큼 키워서 결혼까지 시켰으면 내 할 도리는 다 한 것 같아서, 이젠 나도 내 자식을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한 거야." 


아빠와 할머니, 그리고 새아빠와 그 아들까지……. 엄마 여러 산들을 넘 이제야 나를 찾아온 거였다.


그래도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대답을 들으니 속이 시원했다. 게다가 날 싫어한 게 아니었다고 하니, 지난날의 설움이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이제라도 엄마와 연락하길 잘한 것 같다. 이제 나는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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