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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Mar 09. 2024

엄마와의 첫 만남, 엄마의 첫인상

우리 사이의 공통점

엄마의 첫인상을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엄마를 처음 만난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절기로는 봄인데 아직은 날씨가 쌀쌀했다. 밤이 되면 더 추워질 것 같아서 단정한 남색 플레어 원피스 위에 두툼한 겨울 코트를 꺼내 입었다.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 길. 마치 소개팅을 하러 나가는 기분이 든다. 상대방은 어떤 모습일까. 나를 마음에 들어 할까? 주변에 핀 벚꽃들을 보니 괜스레 더 마음이 설레는 것 같다. 퇴근 시간이라 버스가 막힐까 봐 일찍 나왔더니 약속시간보다 20분 먼저 도착했다.


가게 앞에 서서 엄마를 기다렸다.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봤지만, 사진 속 엄마 모습은 벌써 30년 전이라 크게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엄마가 기억하는 내 모습도 4살 때가 마지막이다. 그땐 젖살이 포동포동했지만 지금 몸무게는 42kg라서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만 같다.


저녁 시간이라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중년 여성이 지나갈 때마다 '저분인가', '아닌가 보다'를 반복했다. '월리를 찾아서'처럼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엄마로 추정되는 사람을 찾아 헤매느라 두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봄바람은 생각보다 서웠고, 여린 추위에도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음의 떨림까지 더해져 유난히 더 크게 요동치는 기분이다.


그때 낯선 여성이 다가와 나에게 작은 꽃다발을 건넸다.

'아, 이분이구나...'


그래도 핏줄이니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얼핏 봐서는 나랑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엄마가 준 노란 장미 꽃다발을 받아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뒤따라가며 보니 엄마도 나처럼 키가 작은 듯했다. 필 이것만 닮았나... 내가 안 먹고 안 자서 작은 건 줄 알았는데, 사실 유전 탓이었을지도 모르겠. 


엄마에게 처음 받은 꽃다발. '사랑해'라는 문구가 낯설고 어색하다.


"메뉴는 뭘로 드실래요?"

33년간 불러본 적이 없는 '엄마'란 호칭 선뜻 내뱉어지지가 않았다. 컵에 물을 따라 마시면서 엄마 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엄마의 첫인상을 요약해 보자면,


첫째, 나랑 별로 안 닮았다.

둘째, 기가 세 보인다.

셋째, 내가 더 예쁘다(?)


둥글둥글한 내 얼굴형과는 다르게 엄마 광대가 도드라 각진 느낌이 들었다. 화장 때문인지 눈썹과 눈이 진해 보였는데, 그 위에 검은 테 안경 쓰인상이 더 세 보였다. 썹만 연하게 그려도 훨씬 부드러워 보일 것 같은데... 래도 밖에서 볼 땐 전혀 안 닮았다 생각했는데, 밝은 조명 아래에서 보니 눈나 입이 약간 닮은 것 같기도 다.


식당에 손님이 별로 없어서인지 우리 사이의 적막이 더 크게 느껴졌다. 차라리 상견례 때가 덜 어색했던 것 같다. 그땐 여러 사람이 있었고, 스 요리가 계속 나왔으니까.


엄마 말했다. "너는 이해 못 할 수도 있겠지만 그땐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네 아빠는 돈도 안 벌고 허구한 날 술만 마시지. 어떨  날 때리기까지 하니까, 이러다 큰일 나겠다며 이웃집에서 도와주러 오기도 했었어. 그러다 시댁으로 들어가게 된 거야."


그 후의 삶도 평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빠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냥 남편복 없는 자기 팔자려니 한다고. 그래도 나에겐 미안하단 말밖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 모습이 나랑 닮아있다고 느꼈다. 강단 있는 말투에 이성적인 모습. 외모는 별로 안 닮았다 생각했는데 성격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듯했다.


아빠는 속상할 때마다 내게 말했다. 너는 엄마 닮아서 차갑다고. 그때마다 난 알지도 못하는 엄마와 비교를 당 얼마나 억울했는지 모른다.  알아야 반박이라도 하지. 그래서 더 궁금했다. 집에서 거의 악당 취급을 받는 엄마와 내가 어디가 어떻게 닮았을까 하고.


그런데 엄마를 만나보니 그 말뜻을 알 것 같았다. 툭하면 술을 찾는 여리디 여린 아빠에겐 우리가 지나치게 냉정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엄마와 할머니도 같이 사는 동안 참 많이 부딪혔겠다 싶었다. 둘 다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닌 데다가, 엄마가 틀린 말에 네네, 하고 넘어가진 않았을 테니까.


엄마랑 대화하면서 좋았던 건 가족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꼬장꼬장한 할머니 성격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지 않아도 엄마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척하면 척'이라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마음이 통한다는 게 이렇게 시원한 일이란 걸 그때 처음 느꼈다. 내 스트레스의 근본은 할머니와 아빠 때문이었는데, 아빠와 고모들조차 어렴풋이 짐작하기만 하던 심정을 엄마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마 과거에 엄마도 고스란히 느껴지 않았을까.


남들 앞에서는 누워서 침 뱉기 같아 말할 수 없었던 '가족들 흉보기'도, 우리끼리는 실컷 해도 괜찮았다. 뒷담화(?)을 하면서 깔깔거리며 웃다 보니 마음속에 커다란 해방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동안 드러낼 수 없었던 부정적인 감정들까지 모두 꺼내보일 수 있었다. 33년간 가족에게 공감받지 못해 외톨이 같는데, 오늘 처음 만난 엄마로부터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건 커다란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얘기하다 보니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사실 몇 가지를 알게 됐다. 할머니는 '엄마가 결혼도 하기 전에 나를 임신했다'라고 했지만, 엄마는 결혼 후에 나를 가졌다고 했다. 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엄마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도 전혀 근거 없는 말이라고 했다. 자식 싫어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며, 말 오해라고 했다.


그동안 엄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막상 만나보니 우리 엄마도 그저 평범한 엄마일 뿐이었다. 지금껏 들어왔던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비단 엄마만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의 관계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이혼 후 아빠는 술만 마시고, 할머니는 하루아침에 갓난아기를 키우게 생겼으니, 엄마를 향한 미움과 원망이 오죽했을까.


이젠 엄마에 대한 말들이 나를 찌르지 않을 것 같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알게 됐으니까. 나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나도 남들처럼 축복받으며 태어난 존재라고 생각하니, 자존감에 단단한 방패가 생겨난 듯했다.   


헤어질 때쯤, 엄마가 선물을 건넸다. 우리 애들을 위한 돌반지 두 개와 설화수 화장품. 그리고 용돈이 든 흰 봉투였다.


엄마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집 앞 편의점에 들러 소화제를 사 마셨다. 추운데 긴장까지 했더니 소화가 잘 안 된 모양이다. 꽃다발을 거실 테이블 위에 던져두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피곤했다. 침대에 대자로 뻗었다.


그래도 뭔가 커다란 숙제를 끝마친 듯한 기분이 든다.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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