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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Dec 30. 2023

내겐 처음부터 엄마가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의 의미

엄마와 아빠는 서로에 대해  몰랐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아빠가 술에 지나치게 의존적이란 걸 , 엄마가 다니는 교회가 이단이었음을 알게 됐다(그전까지는 엄마가 그저 신앙심 좋은 사람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여러 일들을 해봤지만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던 아빠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 시작. 두 사람은 성경을 펼쳐놓고 논쟁을 벌이기도 . 할머니(이하 할머니)까지 나서서 엄마를 설득해 봤지만 앙에 대한 엄마의 고집을 을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 아빠와 할머니를 초대했. 자기 신앙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빠는 예배당에 진동하는 라일락 향기 때문에, 할머니는 구리 우는 소리가 시끄워서 용을 제대로 지 못했. 기하게도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세 사람은 각기 다른 경험을 고 돌아왔(아 환각 같은 거였나 보다).  엄마 아빠는 짧은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내가 아직 돌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엄마와  처음부터 헤어질 인연이었 지, 우린 여느 모녀사이 답지 않게 서로에게 데면데면했다. "어머니, 저는 혜원이가 예쁜 지를 모르겠어요." 화장실에서 나를 씻기던 엄마가 한 말이었다. 어린 나도 그런 엄마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엄마가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거실에서 놀 내가 마를 피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를 본 할머니는 이제 막 기기 시작한 아기가 엄마를 반가워하지 않는 걸 신기하게 여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가 다른 엄마들과 다르단 걸 실감했다. TV에 나오는 이혼 정을 봐도 자식을 데려가는 건 엄마 쪽이었다. 간혹 엄마가 자녀를 키우지 않더라도 그건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지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엄마는 달랐다. 엄마는 나를 쉽게 포기했다. 집을 떠난 뒤로 연락 한 번 없었고 잘 지내느냐는 흔한 안부인사조차 묻지 않았다.


난생처음 전 과목 '수'를 받은 날. 나를 칭찬해 준 건 남의 엄마들뿐이었다. 학교 앞에 떡볶이집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 반 친구 엄마가 일하시는 곳이었다. 떡꼬치를 튀기고 양념소스를 묻히는 내내 아주머니는 내게 장하다고,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셨다.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난 또 다른 친구의 엄마는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용돈까지 주셨다. 기뻤지만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엄마도 처음엔 양육비를 보내줬다. 그러나 약속한 날짜를 번번이 어겨 할머니의 애를 태웠다. 기분이 상한 할머니가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앞으로 보내지 말라고 했더니 기다렸단 듯이 바로 다음 달부터 돈이 끊겼다. 그게 아마 4살 때 쯤이라고 했던 것 같다. 할머니는 네 엄마가 이런 사람이라며, 을 내팽개치고 간 엄마는 보고 싶어 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 후로 나는 엄마 얘길 묻지 않았다.


엄마에 대해서는 좋은 소리 하나 들은 게 없었다. 아빠도, 고모들도 모두가 입을 모아 다. 엄마는 쌀쌀 맞고, 못되고, 저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얼굴도 광대가 툭 튀어나와서 복 없게 생겼다며, 내가 아빠를 닮았으면 지금보 훨씬 더 예뻤을 거라고 했다.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아빠의 재혼을 염두에 뒀던 할머니가 엄마 사진을 모두 갖다 버렸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엄마가 나를 몰래 보러 오지 않을까 기대한 적이 있었다(TV 속에서 그런 장면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하교 시간마다 수상한 누군가가 있지 않은지 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그런 기대를 접었다. 엄마가 눈앞에 있더라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의 얼굴도, 엄마의 이름석자조차 몰랐으니까. 그 후로는 교문 주변힐끔 거리지 않고 곧장 집으로 걸어갔다.


아빠 술을 마실 때마다 나를 앉혀 놓고 말했다. 엄마 없이 자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엄마가 보고 싶진 않냐는 질문도 빼놓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빠짐없이 늘 괜찮다고 대답했다. 절반은 진심이었다.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리운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움이란 건 추억을 곱씹을 때 우러나는 거지 아예 모르는 사람을 그리워할 순 없는 법이다. 내겐 처음부터 엄마가 존재하지 않았다.  




고모가 말했다. 가족이라고 해서 다 사이가 좋은 건 아니라고. 세상엔 차라리 없는 게 나은 가족도 있는 거라고. 나도 엄마를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버리고 간 엄마 나도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느 날 마음이 바뀌었다. 내게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남들 다 있는 엄마를 나도 가지고 싶다며 처음으로 엉엉 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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