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대 Jul 27. 2024

문득

운전면허를 따는 것은 올해 목표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지금이 아니면 시간이 없을 거라던 어른들의 말을 나는 무시했고, 그것을 후회했다. 이리저리 치이고 미루고 미루다 보니 26살의 여름이 되었고, 없는 시간과 돈을 내서 학원을 등록했다. 학원은 지방 소도시 그것도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워낙 수강생이 적었기에 필기시험을 응시하기 위해서는 학원에서 제공하는 차량을 타고 타지에 위치한 시험장으로 이동했어야 했다. 학원차는 어릴적 학원에 갈때 많이 타던 승합차였다. 연식은 삐져나온 쇼파의 노란 솜과 땀이 스며들고 마르기를 수없이 반복한 듯한 냄새가 대신 알려주었다. 에어컨은 언제 청소한지 모를 쉰내가 났지만 시원한 바람이 잘 나오는 것에 감사함을  가지고 좌석에 몸을 기댔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은 한여름 그 자체였다. 하늘은 높았고 바다 냄새가 날 것 같은 파란색이었다. 태양은 어찌나 강렬한지 지나가는 다른 차에 비치는 빛이 눈을 아프게 했다. 바깥 감상에 싫증이 날 때쯤 여기가 어디쯤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 것인지 때마침 표지판이 나왔다. ‘상주’ 그 글자를 보자 정말이지 문득 누군가 떠올랐다. 대학시절 자주 가던 학교 앞 식당이 있었다. 그 식당의 인기 메뉴는 저렴한 가격에 나오는 갈비찜이었다. 그곳의 유일한 문제는 친하지 않은 친구들과 가게 되면 추잡하게 보일까봐 나름 신경써야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깔끔하게 먹는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처음 듣는 칭찬이었다. 그 기억이 원체 신선했던 것인지 그녀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다. 그녀는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남 눈치 보지 않고 털털하게 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갈비를 뼈 채 잡고 누구보다 맛있게 먹었다. 시험기간이면 화장하지 않은 얼굴에 모자를 눌러썼고, 도수가 높은 안경을 끼고 왔었다. 1학년 새내기 시절 함께 떠난 계곡 여행에서는 어색해하는 날 위해서 먼저 말을 걸어 주었다. 상주는 그녀의 고향이었다. 문득 떠오른 그녀의 근황이 궁금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무엇을 하고 지냈을까.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미리 보기로 떠있는 알림을 보고 한숨이 쉬어지는 연락이면 어떡하지? 어떻게 답장을 보낼지 고민해야 하는 귀찮은 일이라 하루의 마지막 업무로 미루어야 하는 그런 부담스러운 연락이 되고 싶지 않았다. 찌질한 생각은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의 근황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기쁜 일 아닐까? 그것도 문득 떠오른 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어떤 기억 하나가 강렬히 남아있다는 것이니까. 용기를 갖고 그녀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오랜만에 온 연락에 그녀는 반가워했다. 여전히 털털했고 잘 웃었다. 그리고 행복해 보였다. 나도 누군가에게 문득 떠오르는 사람일까? 누군가의 기억에 이따금씩 오랫동안 떠오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