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음사판 해설 -
4장
1) 【16세기에 셰익스피어와 같은 마음 상태(시심이 흠 없이 예술로 발휘되는)를 가진 실존 여성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다소 시간이 지난 후 17세기 무렵부터 괴물이라 불리기를 무릅쓰고 글을 쓴 여성들의 작품을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윈칠시 부인, 마거릿 뉴캐슬 공작부인, 도로시 오즈번, 에프라 벤이 그들입니다. 】
울프는 윈칠시 부인의 글을 읽어봅니다. 윈칠시 부인은 1661년에 태어났고 귀족 출신입니다. 그녀의 시를 보면 여성의 지위에 대한 강한 분노가 표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영락한 것일까! 그릇된 지배에 영락한, 자연이 빚어낸 바보라기보다 교육이 빚어낸 어릿광대.---” 그녀는 인류를 둘로 구분합니다. 반대쪽에는 여성을 비웃으며 글쓰기를 가로막는 남성이 있습니다. 윈칠시 부인은 “모든 장애물을 다 태우고 눈부시게 빛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7세기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다음으로 귀부인 마거릿 뉴캐슬 공작부인의 책을 펼쳐 봅니다. 글에는 마찬가지로 분노의 감정이 덮여있습니다. “여성은 박쥐와 올빼미처럼 장님으로 살고 짐승처럼 노동하며 벌레처럼 죽는다-----.” 울프는 마거릿 뉴캐슬 공작부인의 책을 내려놓고, 도로시 오즈번의 서한집을 펼쳐보았습니다.
그녀의 글에서 시인의 소질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도로시의 서한집을 넘기면서 생각하건대 신기한 점은 그 교육받지 못한 외톨이 소녀가 문장을 구사하고 장면을 만들어 내는 상당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한집은 시, 소설과는 달리 조건의 제한을 덜 받는다고 합니다. 자기만의 공간과 사유의 시간이 크게 요구되는 형식은 아니었나 봅니다. “여성은 아버지의 병상 옆에 앉아서 편지를 쓸 수 있지요. 또 남자들이 대화하는 동안 난롯가에서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쓸 수도 있습니다.” 울프는 도로시 오즈번의 유일한 책인 서한집을 다시 꽂아놓았습니다.
이번에는 에프라 벤의 책을 훑어봅니다. 벤 부인의 작품은 예술성이 뛰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벤 부인은 책을 써서 돈을 벌어 생활을 하였습니다. “벤 부인은 유머와 활력, 용기라는 평민의 미덕을 모두 갖춘 중산층 여성이었지요. 그녀는 남편의 죽음과 몇 가지 불행한 사건들로 인해서 자신의 기지로 생계를 꾸려 가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남자들과 대등하게 일해야 했지요. 열심히 일함으로써 그녀는 먹고 살만큼 충분히 벌었습니다.”
에프라 벤이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이후 여성들은 “저에게 용돈을 주실 필요 없어요. 저도 제 펜으로 돈을 벌 수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8세기 무렵부터 여성들은 번역이나 질 낮은 소설을 쓰며 용돈을 벌거나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남성들에 의해 선택된 몇몇 역사 기록보다 더 충실하게 전해져야 한다고 버지니아 울프는 말합니다. “그리하여 18세기말 무렵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데, 내가 만일 역사를 다시 쓴다면 십자군이나 장미전쟁보다 그것을 더 충실하게 묘사하고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즉 중산층 여성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지요.”
2) 【 위와 같은 여성들이 있었기에 19세기 조지 엘리엇, 에밀리 브론테, 살럿 브론테, 제인 오스틴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의 시적 충동은 모두 소설 형식만 취했을까요. 울프는 그녀들의 상이한 재능이 어떤 상황에서 소설로 귀결되게 되었는지 직접 만나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의문이었습니다.】
당시 여성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집중된 시간을 가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공동거실에서는 사람들이 빈번히 왕래하고 집안일은 늘 그녀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인 오스틴의 조카는 회상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떻게 숙모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왜냐하면 숙모님에게는 종종 찾아갈 만한 독립된 서재가 없었고, 또 숙모님이 쓴 작품의 대부분은 공동의 거실에서 온갖 종류의 일상적인 방해를 받으며 써야 했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공간과 사유의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적 충동이 개체의 몸과 공명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규정된 시대의 규율 안에서 예술가의 눈을 번뜩이며 사유의 힘을 발휘하여 글을 써야 했습니다. 공동거실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관계와 성격을 분석하는 것을 문학 수업으로 대신하며.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들이 소설 형식을 취한 것은 자연스러웠을 귀결이었을 것입니다.
3) 【 버지니아 울프는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는 제인 오스틴(오만과 편견)과는 달리 분출되는 경련과 분노로 인해 온전히 자신의 재능을 작품에 담지 못하였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울프는 만일 살럿 브론테에게 일 년에 300파운드가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비슷한 시기 러시아의 한 젊은이(톨스토이)는 집시와 때론 귀부인과 자유분방하게 만났으며, 전쟁에 참가하였고, 누구의 비난도 받지 않고 다양한 삶의 경험을 하는 것이 가능하였는데 이는 샬럿 브론테에게는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
버지니아 울프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과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비교합니다. ‘제인 에어’는 “그것을 반복해서 읽어보고 그 안의 경련과 분노를 주목하다면, 그녀가 결코 자신의 재능을 흠 없이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샬럿 브론테는 작품의 인물을 형상화하는데 쏟아야 할 곳에 자신의 감정이 표출되기도 하였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19세기 목사의 집안에서 허용된 범위에서만 경험을 했습니다. 만일 “자신의 재능이 멀리 떨어진 들판을 홀로 쳐다보는 데 소모되지 않았더라면, 경험과 교제와 여행이 자신에게 허용되었더라면, 자신의 재능을 얼마나 큰 혜택을 입었을지는 그녀” 자신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 러시아의 톨스토이는 “때로는 집시와 때로는 귀부인과 자유분방하게”살았으며, 전쟁에도 참전하고, “방해받지 않고 비난받지 않으면서 다양한 인간 생활을 경험”했던 것과 비교됩니다.
만일 “톨스토이가 기혼녀와 ‘소위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프라이어라 (조지 엘리엇이 세상과 단절하며 살았던 곳)에서 살았더라면, 그 도덕적 교훈이 아무리 유익하다 하더라도 ‘전쟁과 평화’를 쓸 수는 없을 것입니다.”
4) 【‘전쟁과 평화’가 앞에 놓여 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에 대한 평가는 독자에 따라 판단이 다르겠지만 작가의 성실성과 작품의 완전성이 작품의 생명력에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럼 작가의 성실성과 작품의 완전성이 단지 성(性) 차이 때문에 영향을 받는 경우는 없었을까요.】
글 쓰는 여성은 사회적 적대감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적대감에 비판과 분노의 감정을 작품 속에 투영시키기도 합니다. 샬럿 브론테는 “자신에게 적합하고 응당 누려야 할 경험에 굶주렸다는 사실을 기억했지요. 세상을 자유로이 방랑하고 싶을 때, 그녀는 목사관에서 양말을 기우며 침체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녀의 상상은 분노로 인해 빗나갔고, 우리는 그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고 느끼지도 못하게 깊숙이 들어앉아 있는 장막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가치 더미입니다. 예를 들면 뜨개질, 옷, 조용히 뜰을 보고 있는 것보다 정치, 전쟁, 사냥, 스포츠가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성의 시적 정신은 작품으로 나타날 때면 지배적 가치의 눈치를 보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점에 쌓여있는 여성들의 소설의 중심부에는 외적 권위에 상처 난 흠집(주류화된 가치를 따르는 것- 남성적 가치)이 있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울프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과수원에 나뒹구는 얽은 자국이 있는 작은 사과들처럼 런던의 중고 서점에 산재한 여성들의 소설을 생각합니다. 그것들을 썩게 한 것은 중심에 존재하는 바로 그 흠집입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경의를 표하여 자신의 가치를 변질시켰던 것입니다.”
5) 【 버지니아 울프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신의 빛나는 시심을 성실성과 완전성으로 보여준 인물은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 뿐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는 적대적 응시로 엮어놓은 가림막을 걷어내고, 여성적 전통을 스스로 다져놓으며 거대한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들은 이제 스스로 여성의 리듬에 맞는 전통을 만들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
사물을 거침없이 보는 시야와 표현의 자유는 어떠한 형태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기나긴 남성 중심 사회에서 만들어진 전통적인 서사시나 극형식은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남성들의 감성, 신체리듬, 정치적 필요 등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전통을 가진 형식에 비하면 소설은 새롭게 태어난 형식이기에 아직은 유연하여서 여성들이 선택하기 좋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남성처럼 쓰지 않고 여성이 쓰듯이 썼습니다. 그 당시 소설을 썼던 수천 명의 여성들 가운데 그들만이 영원한 현학자들의 끊임없는 충고 – 이렇게 써라, 저렇게 생각하라. - 를 완전히 무시했지요.”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는 “횃불 같은 선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참조하고 도움받을 수 있는 선배들의 작품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성 작가들은 발 디딜 받침대도 없었고 존재하는 몇몇 작품들은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녀들이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위대한 남성 작가들에게 접근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남성의 마음의 무게와 속도, 보폭은 여성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여성은 그들에게서 실속 있는 것을 효과적으로 얻어 올 수 없습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모방할 수”도 없었습니다.
울프는 여성들의 시적 감성과 몸에 적응된 책에 대해 짧은 고민을 전해줍니다. “책은 어떻게든 육체에 적응해야”기에 여성들의 책은 남성들의 책 보다 짧고 응집된 내용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성들은 남성만큼 방해 없이 집중하여 책을 보는 시간을 마련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일과 휴식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 가도 살펴봐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일과 휴식의 배치는 수도승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외에 참 많은 것들이 토론되어야 한다고 울프는 말합니다. 그리고 “이 모두가 ‘여성과 픽션’이라는 문제의 일부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주목시킵니다.
내가 고른 ‘4장’의 명문장 :
【여성이 소설의 형식으로 자신의 시적충동을 드러냈던 또 다른 이유는 당신 거의 모든 문학의 형식이 오랜 전통이 있었지만 소설만이 새롭게 태어난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서시시나 시극 같은 오랜 전통의 문학형식은 남성의 사유나 리듬에(생물학적이 아니라 사회학적에 무게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
용기를 꺾는 방해와 비판이 여성의 글에 어떤 영향을 미쳤든지 간에 여성이 종이 위에 자신의 생각을 옮겨 놓으려고 할 때 그들이 직면했던 다른 어려움과 비교하면 그것은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그 다른 어려움은 여성들의 배후에 전통이 전혀 없거나 설령 있더라도 너무 짧고 편파적인 전통이라서 그들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 위대한 남성 작가들에게 접근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여성인 그들의 몇 가지 기법을 배워서 자신에게 적합하도록 이용했을 수는 있었겠지요. 하지만 남성의 마음의 무게와 속도, 보폭은 여성과 다르기 때문에 여성은 그들에게서 실속 있는 것을 효과적으로 얻어 올 수 없습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모방할 수 없는 것이지요.
---여성이 작가가 될 무렵 옛 문학 형식들은 모두 이미 굳어지고 결정된 형태였습니다. 소설만이 그녀가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고 새로운 것 이어지요. 이것이 아마 여성이 소설을 쓰게 된 또 다른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