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닫힌계에서 생명의 나무로 연결된 삶을 사는 존재들
2) 닫힌계에서 생명의 나무로 연결된 삶을 사는 존재들
나의 세계에서는 사용한 허파를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다. 호환 가능하기 때문에 공기가 소비된 알루미늄 허파는 충전소에 맡기고 충전되어 있는 허파를 가져와 장착하면 된다 (몇 개씩 가져와 비치해 놓을 수 있다). 세계의 모든 공기충전소는 지하 깊숙한 장소에 있는 지하 공기저장소에서 공기를 공급받는다. 세계의 허파인 지하 공기저장소가 전 세계의 충전소와 허파의 꽈리처럼 파이프로 연결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알루미늄 허파를 교환하는 장소인 충전소는 사람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이기 하다. 충전소에서 정보는 알루미늄 허파처럼 경계를 넘어 사람들 사이에서 교환된다. 한마디로 이곳은 삶을 지속시켜 주는 물질과 비물질이 겹쳐 흐르는 장소이다. 뿌리에서 나뭇잎까지 생명의 흐름이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생명의 나무처럼 그들은 살아가고 있다.
또한 알아야 할 것은 이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지상에서부터 치솟은 반원형 크롬 벽에 의해 외부와 차단된 세계, 닫힌계라는 것이다. 닫힌계에서는 형태를 가진 물질이든 형태 없는 비 물질이든 차단된 벽을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한다. 이런 세계에서는 엔트로피 증가법칙이 적용된다 (‘숨’에서는 엔트로피 증가 법칙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주요한 모티브이기에 여기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엔트로피 증가법칙은 피할 수 없다. 이 세계는 서서히 엔트로피가 증가하여 에너지 평형상태로 나간다.
에너지 평형상태가 되면 정적과 죽음만이 남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크롬벽으로 차단된 나의 방에 석탄 난로와 자체 배터리로 운영되는 전기포트가 있다고 하자. 외부에서 어느 것도 들어올 수 없다. 나는 석탄을 소비하며 난로를 사용해 음식을 해 먹고 활동하며 사유할 수 있다. 그러나 석탄, 음식의 에너지를 삶의 에너지로 옮겨와 지속하는 시간은 끝이 있다. 에너지 평형상태까지다.
전기포트도 마찬가지다. 따뜻한 물을 데워먹고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지만, 자체 배터리를 모두 소비하면 배터리와 전기포트는 죽은 물체가 된다. 시간이 길게 지속되면 음식을 충전받지 못하는 몸의 에너지도 소진되어 결국 배터리처럼 죽음에 이른다. 석탄, 배터리, 나의 몸이 에너지를 주고받지 못하는 평형상태가 되는 것이다. 닫힌계에서 평형상태가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크롬벽 안의 세계가 이와 같다. (우리 우주는 닫힌계이다)
나의 세계는 거대한 생명수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만 반원형 크롬벽으로 차단되어 있어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결국은 에너지 평형상태에 이르는 닫힌계이다. 물론 테드 창의 ‘숨’에서는 엔트로피 법칙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숨’을 읽다 보면 엔트로피 법칙의 원리를 모티브 삼아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에 ‘숨’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으로 닫힌계와 엔트로피 증가법칙을 이야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