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재석 May 09. 2023

문맥이 잡히고, 문장이 해석되는 『자기만의 방』-5장

민음사판 해설

1) 버지니아 울프는 현존작가들의 책이 보관되어 있는 서가에 다다릅니다희랍 고고학미학페르시아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보여주는 여성의 책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그중 한 권의 소설책을 꺼내 듭니다메리 카마이클이 쓴 생의 모험입니다.   

  

1장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글은 사실에서 건져 올린 픽션의 형태로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메리 카마이클도 가상의 인물입니다. 메리 카마이클이라는 가상의 작가를 출현시켜 여성이 전문성을 들어내고 예술로서 작품을 쓰기 시작하려는 시대에 여성작가의 미래와 현 위치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울프는 메리 카마이클의 책(가상의 작가이지만 인용되는 작품들을 당대 작품을 비유하며 평가한 글입니다)을 ‘레이디 윈칠시’. ‘에프라 벤’ 그리고 ‘위대한 네 명의 여성소설가’의 뒤를 잇는 작품으로 생각하며 읽어나갑니다. 앞선 선배들이 이룬 전통과 연계해 살펴보며 그 성과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카마이클의 글은 “문장과 문장의 매끄러운 연결이 차단되”어 있었고 “문체의 간결함과 긴박감”이 느껴집니다. 글이 당대의 평가에 무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신경을 곤두세운 이유는 여성의 글은 너무 감성적이고 화려하다는 평가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에 의도적으로 글에 가시를 박아 놓다 보니 읽으면 혀끝에서 단절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울프는 메리 카마이클의 단절된 느낌의 글이 의도적이라는 것을 간파합니다. 그녀는 기존의 글을 파괴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의도적으로 “문장을 부수”고 “연속성을 부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기에서 울프는 충고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된 전통을 잇기보다는 창조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며 그 행동을 해야만 한다고. 그렇다면 울프 자신도 독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여 한 문장 한 문장 그 의도를 파악하며 천천히 읽어나겠다고 말합니다.  


         

2) 울프는 한 문장 한 문장 책을 읽어나갑니다. “클로이는 올리비아를 좋아했다.”라는 문장을 읽고 문학에서 여성이 여성과 교류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문장이 있었나 회상해 봅니다. 그리고 다시 다음 문장 그들은 실험실을 같이 쓰고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나갑니다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공적인 위치에 만나서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장면이 비로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문학작품에서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에서만 그 위치는 부여받았고 그에 따라 내면의 세계가 표현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 “옥타비아에 대한 클레오파트라의 유일한 감정은 질투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문학에서 ‘여성 클로이가 여성 올리비아를 좋아하다’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18세기 제인 오스틴의 시대까지만 해도 여성들은 다른 성과의 관계에서 등장하였고, 남성의 사랑이 상승 중인가, 식었는가에 따라서 여성의 감정이 묘사되었습니다. 


19세기 들어서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긴 했으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인 프루스트마저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를 “아마 문학사상 처음으로 클로이는 올리비아를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 두 여성 간의 관계가 좀 더 복잡했더라면 그것이 얼마나 흥미로웠을까”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이야기를 지속합니다.      


울프는 책을 계속 읽어나가며 이제 “그들은 실험실을 같이 쓰고 있었다---”에 주목합니다. “그들 중 한 명은 결혼했고 두 명의 어린아이가”있었습니다. 그들은 실험실에서 악성 빈혈 치료를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여성이 이처럼 공적인 일에서 맺어지는 관계를 문학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여성들의 관계가 실질적으로 너무도 단순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들은 집안을 하다가 결혼하는 것이 삶의 정해진 과정이었습니다. 만일 카마이클이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를 가진다면 그리고 그녀가 ‘클로이가 올리비아를 좋아한다’의 표현 방법을 안다면 그녀는 미로처럼 얽힌 어두운 동굴에서 횃불을 들고 밝혀나갈 것입니다.           



3) 책장에 있는 책으로 눈을 돌립니다괴테셸리볼테르와 다른 위대한 사람들의 전기가 있습니다그들은 생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들과 마주하였고 기대고 신뢰하고 비밀을 털어놓고 교류하며 결혼도 했습니다다른 성이 바라보는 세계와 늘 부딪쳤고 어둠과 빛을 받으며 살아왔던 것입니다그들은 다른 성의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어둠과 빛에 자극받아 사유하고 자기화시켜 작품에 담았습니다     


남성 작가들은 여성들을 플라토닉 한 관계로만 만나지 않았지만 육체적인 쾌락만을 위해 만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성에게서 자신의 성과는 완전히 다른 삶의 체계와 질서, 사물에 대한 다른 반응과 감성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을 자극하고 낯선 경험으로 인도해 창조적 삶의 수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세계였던 정치, 법정, 군대에서 얻은 질서나 감성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주 간단한 대화에서도 자연스러운 견해의 차이가 드러”났을 것이며 이 차이는 고갈되고 있는 그들의 사고에 새로운 광경을 펼쳐 보여줬을 것입니다. 그는 그녀를 만나러 가기 위해 준비하면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주시했을 것이고 만나서 해야 할 말의 어구를 새로 준비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수 세기를 방 안에서 생활하고, 내면의 감성이 깊게 놓여있는 여성성을 만났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펼쳐져 있는 남성의 것과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여성성이 묻힌다면 이는 인류의 많은 부분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광대함과 다양함을 고려해 볼 때 두 가지 성으로도 너무나 불충분할진대, 하나의 성만 가지고 어떻게 해나갈 수 있”겠느냐고 울프는 말합니다. 만일 어떤 탐험가가 우리에게 “다른 하늘을 바라보는 다른 성들에 대해 전해 준다면” 이는 인류에게 거대한 기여를 한 것일 것입니다.           


4) 메리 카마이클에게는 관찰해야 할 사실들과 기록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그녀의 글이 가정의 벽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입니다카마이클은 런던의 길거리를 걸으며 구석진 곳까지 살피며 그것이 자신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기록해야 합니다그리고 남성들이 여성들 자신들이 보지 못한 부분을 보여주었듯이 여성들도 남성들이 스스로 보지 못하는 부분을 기록하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아직 관찰해야 할 사실이 너무 많아서 카마이클은 사실을 관찰하고 싶은 유혹에 이끌립니다. 한 늙은 여인이 중년의 딸과 함께 걷고 있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누군가 그녀에게 몇 개의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녀는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에서 돌출되었던 중요한 사건을 물어본다면 그녀는 순간을 쉽게 찾지 못합니다.     


그녀는 아침 식사가 끝나면 식기를 닦으며 점심준비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 돌보는 것만이 그녀의 시간이었기에 굽이치는 삶의 역사성이 있을 수 없던 것입니다. 반복되는 그녀의 시간에서 돌출된 기억을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버지니아 울프는 말합니다. 이와 같은 “무한히 불명료한 이 모든 삶을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퉁이에서 양손을 허리에 대고 서 있는 여자들”, “제비꽃을 파는 여자”, “정처 없이 떠도는 소녀들의 얼굴”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울프는 마치 메리 카마이클이 앞에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횃불을 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이 모든 것들을 탐구해야” 한다고. 이 모든 세계가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왔고 당신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를 울리는 시심으로 담아야 합니다. 가정이라는 벽을 넘어 이제 도시 산책자의 시각으로 이 모든 것에 깊숙이 담겨있는 의미를 캐어내야 합니다. 나폴레옹, 키츠, 밀턴에 대한 연구를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와 같은 글을 써야 한다고 버지니아 울프는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성(性)으로 엮어놓아 왜소화 된 문학을 넉넉하고 튼실하게 해야 합니다. 여성들은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을 남성들이 보여주어 자신과 세계를 알아가며 살아왔습니다. 이제 남성의 뒷 머리 쪽에 있어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검은 그림자를 여성들이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조롱이나 분노의 감정이 실린 글이면 안됩니다. 인류가 자신을 알아가고 삶을 확장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는 것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5) 버지니아 울프는 메리 카마이클은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제인 오스틴조지 엘리엇처럼 천재는 아니지만 재능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그녀에게는 선배에게 없었던 유리한 점이 있었습니다그녀가 글을 쓰던 시대에 남성은 단순히 분노를 유발하는 반대당파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지붕으로 올라가서 자신에게 허용되지 않는 여행, 경험,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지식을 갈망하여 마음의 평화를 깨뜨릴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성에 분노하고 비난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이전의 선배들이 누리지 못한 이점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 여성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가져야 될 생각보다는 자신을 사유하며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그녀의 책은 성이 그 자체를 의식하지 않을 때라야 생겨나는 그 신기한 성적 자질로 가득 차 있”게 됩니다. 울프는 그녀가 겉만 훑는 글이 아니라 심연 저 밑바닥까지 훑어내는 글을 쓰기를 지켜보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핑계 대며 “망설이거나 더듬거린다면 당신은 끝장”이니 “오로지 뛰어넘는 것만을 생각”해야 한다고 그녀에게 말합니다.      


메리 카마이클은 천재도 아니고 자기만의 방과 여유로운 경제생활을 갖추지도 못하였고, 무명의 여성임에도 이 정도 썼다면 충분히 박수받을 만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제 “그녀에게 백 년을 더 주자고 결론” 내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속될 시간 속에서 예술성이 듬뿍 담긴 그녀의 책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고른 5장의 명문장 : 【 버지니아 울프는 카마이클의 글에서 올리비아가 선반에서 병을 올려놓으며 아이들에게 돌아갈 시간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읽으며 여성작가는 이런 장면을 잡아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여성은 남성의 편견에서 벗어나 홀로 있을 때천장에 붙은 나방의 그림자처럼 흐릿하여 포착하기 힘든 것아직은 완전한 구문을 찾지 못해 반쯤 말해진 말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먹이를 잡기 위해 웅크리고 있는 생명체가 음식을 (지식모험예술낚아채 듯해야 합니다. 그 방식은 기존의 가치에 매이지 않고 (전통적인 문장 체계 내에서 완성되게 하지 않기 위하여아직 완성되지 않은 문장으로 아주 빠르게 기록하고자기만의 예외적인 재능으로 이러한 것들을 균형을 깨뜨리지 않고 옛것에 새롭게 결합시키야 합니다          


나는 그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올리비아가 선반에 병을 올려놓으며 아이들에게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을 클로이가 지켜보는 장면을 읽었습니다. 이것은 세계가 시작된 이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이라고 나는 경탄했지요. 그래서 나 또한 호기심에 차서 지켜보았습니다. 여성이 남성의 변덕스러운 편견의 빛으로 조명되지 않고 홀로 있을 때, 천장에 붙은 나방의 그림자만큼이나 어렴풋이 형성되는 그 기록되지 않은 제스처를 포착하고, 말해지지 않은 또는 반쯤 말해진 말들을 포착하기 위해 메리 카마이클이 어떻게 착수하는지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는 메리 카마이클이 거기 있기라도 하듯이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 창밖을 내다보며 어떤 다른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요. 그리하여 올리비아(수백만 년 동안 바위의 그늘 아래 웅크리고 있었던 이 유기체)가 자기 몸 위로 빛이 드는 것을 느끼고 낯선 음식들(지식, 모험, 예술)이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공책에 연필로 쓸 것이 아니라 가장 짧은 속기 즉 아직 거의 분절되지 않은 말로 기록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다시 책에서 눈을 떼며 생각했지요. 올리비아는 새로운 음식들을 붙잡기 위해 손을 내밀고, 무한히 복잡하고 정교한 전체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은 채 새것을 옛것에 흡수시키기 위하여, 다른 목적을 위해서 고도로 발달된 자신의 재능을 전적으로 새롭게 결합시켜야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테드창의 "숨"을 읽고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