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재석 Jan 18. 2024

서사의 위기 -한병철

하나의 문명비평서

한병철의 “서사의 위기” - 하나의 문명비평서

1.

핸드폰을 빠르게 스킵하다 ‘좋아요’를 누르며 관계 맺는 시대, 최신 정보를 얼마나 빠르게 몸에 습득시키느냐가 가치의 기준이 되는 시대, 이런 시대에 읽어야 할 문명 비평서 한 권이 나왔습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책 “서사의 위기”입니다.


그의 책은 얇지만 굵은 가닥에 현란한 가지들이 풍성합니다. 황홀해 잘못 디디면 혼란함에 빠지기 쉽습니다. 굵은 가닥을 놓치지 않으며 황홀함의 독서를 위해서는 “서사의 위기”에 자주 등장하는 핵심적인 단어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키워드는 ‘시간’, ‘기억’, ‘서사’라는 단어입니다.


① 시간  

시간을 다음과 같이 두 형태로 구분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나의 정체성을 강제하며 훈련시키는 시간이고 두번째는 나의 감각과 대상이 유일성을 가지고 만나게 해주는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강제하며 훈련시키는 시간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 동일한 정체성을 탄생시키는 시간표의 시간입니다.  시간표의 시간은 구성원의 몸을 동일한 감각과 동일한 사유로 강제하는 시간입니다. 시간표의 시간 안에서 사람들을 정보사회가 요구하는 정체성의 소유자로 탄생됩니다.  


“서사의 위기”에 나오는 시간은 시간표 밖에서 자유롭게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안에서 인간과 대상은 만나 고유한 기억을 만들고 그만의 감각과 사유의 세계를 구성합니다. 시간표 밖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개별적 기억을 가진 구성원을 만들어줍니다.


② 기억

여기서 기억은 과거에 일어났었던 어떤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사의 위기”에서 기억은 개체의 몸에 쌓여 세계와 접촉하며, 감각하고, 가치,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기억입니다. 어떤 기억- 시간표 밖 경험에서 얻어진 기억- 은 어떤 감각, 가치, 사유 하는 사람을 탄생시킵니다.


떨어져 나와 운동장 한편에서 흐르는 시간이 만들어준 기억은 나의 몸에 오랫동안 깊게 깊게 쌓입니다. 대지의 기억과 작은 공동체의 기억까지 겹겹이 나의 몸에 새겨집니다. 기억은 자신만의 고유한 몸의 감각, 사유, 가치가 되어 세계와 만나 고유한 이야기를 구성하기를 기다립니다.


③ 서사

한병철은 스토리텔링과 서사를 구분합니다. 스토리텔링은 고유한 시간, 독특한 기억을 대중적으로 소비하게 하는 자본주의의 생산품입니다.  이는 정보의 특성을 닮아서 상품처럼 소비되는 재화입니다.


서사는 우주의 기억, 대지의 기억, 공동체의 기억, 지금 여기의 기억들로 구성된 한 개체가 바깥 세계와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나와 세계의 어울림의 이야기, 그것이 삶의 이야기이고 서사입니다.



2.

시간, 기억, 서사에 대하여 몇 문장 옮겨보았습니다.


“과거를 현재에 끌어내어 엮고 현재 안으로 계속해서 작용하게 하는, 즉 소생하게 만드는 서사적 장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행복은 구원과 공명한다.”(p40-41)


“인간의 기억은 선택적이다. 그게 바로 데이터 기록과의 차이다. 디지털 저장소가 첨가적이고 누적적으로 작동하는 반면, 인간의 기억은 서사적으로 작동한다.”(p48-49)


“기억은 체험한 것의 기계적 반복이 아닌, 언제나 새로 이야기되어야 하는 서사다.”(p53)


“기억은 사건을 항상 새로이 연결하고 관계망을 만들어내는 서사적 실천이다.” (P83)


3.

저자 한병철은 정보와 데이터의 시대에 우리몸의 경험을 동일화시키고 단일한 의식을 가진 사람을 만드는 시대를 비판합니다. 정보에 끌려가는 몸이 아니라, 몸이 자신의 감각과 사유로 세계를 구성해 가는 세계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서사의 위기”의 저자는 시대를 구원하는 힘을 공동체의 기억을 간직한 자유로운 개인이 구성해 가는 서사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서사가 주는 구원에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한병철의 “서사의 위기”는 위기마다 저항의 몸짓으로 솟아나 서사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서사의 한 가닥 일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책 속, 작고 굵은 이야기 (1)-연금술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