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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 Sep 21. 2020

나의 반려 물건, 스테로이드 크림

다정한 일기 by 혜진

은결님, 반려 물건이라는 따뜻한 단어를 골라주셔서, 잠깐 고민했어요. 

'은결님 같은 그런 추억이 있는 책, 나도 있을 텐데'

'일기장... 친구들한테 받았던 편지가 아직 남아 있을 텐데..'


그러다 무의식적으로 왼쪽 손톱을 세워 오른쪽 팔목이 접히는 부분을 박박 긁고는 습관처럼 연고를 찾아 발랐어요. 연고 뚜껑을 닫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대요. 

이런, 내 반려 물건은 스테로이드 크림이네. 





전 초등학생 학교 2학년 때부터 아토피를 앓았어요. 정확하게 그 시기를 기억할 수 있는 게, 초등학교 2학년 때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거든요. 그전까지 마당도 조그맣게 있는 일반 주택에서 살았는데 처음으로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아 그런데 새 아파트로 이사하자마자, 온몸이 왜 그렇게 가려운지.... 그때는 '새집 증후군'이란 단어조차도 없었으니, '첫 우리 집'이라는 큰 기쁨을 주었던 그 아파트가 문제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죠.

가려워서 긁다 보면 진물이 나오고, 진물이 굳어서 한층 더 가려워지고.. 나중엔 피와 진물이 범벅이 되도록 긁고 있으니 엄마가 아차 싶어서 피부과에 데려갔던 것 같아요. 

피부과에서 주는 약들은 독해서 바르는 순간엔 즉시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 금방 내성이 생겨버리죠. (그래 봤자 스테로이드 연고였지 싶지만요)


깨어있을 땐 의식적으로 덜 긁으려 애를 쓰는데, 문제는 잠 잘 때에요. 무의식 중에 엄청나게 박박 긁어요.

(지금도 전 손톱을 바짝 자른답니다. 조금만 손톱이 길어도 자다가 긁거든요. 네일 같은 거 꿈도 못 꾸고요)

팔이 접히는 부분과 다리가 접히는 부분이 제일 심했던지라, 여름마다 반팔, 반바지 입기가 꺼려졌던 기억이 나요. 


엄마가 아무리 예쁜 원피스를 골라서 입혀줘도, 머리를 곱게 빗어줘도 팔 위로 다리 아래로 허옇게 드러난 건선 자국은 많이 창피했거든요.

특히 외모 관심이 부쩍 높아진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아토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기억도 나요. 아토피가 점점 심해져서 팔다리를 타고 올라와서 목을 덮더니, 눈썹 위며 잎술 위까지 건선이 나타났던 슬픈 기억. 안 그래도 말수 적고 자신감 없던 아이였는데, 아토피까지 한 몫해서 반에서 거의 한 마디도 안 하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


평생 하얗고 고운 피부를 가졌던 엄마. 엄마 입장에선 제가 이해가 안 됐을 거예요. 제가 눈에 띌 때마다 "아, 약 좀 발라!"라고 소리치기 일쑤였거든요. ㅋㅋ 아니 근데, 약을 발라도 더 이상 좋아지지 않는데 대체 어쩌라고요.


아무튼 시중에 있는 피부 질환제란 피부 질환제는 한 번씩 다 써봤지 싶어요. 이것도 같은 약을 반복해서 쓰면 약효가 들지 않아서 돌아가면서 써야 해요. 제 몸에 바른 스테로이드 연고의 총량으로 따지면 누군가의 평생의 간식 총량과도 비교할 수 있을 듯한데... 물론 아토피 전용 연고, 로션도 써봤는데요, 결국 효과는 못 봤어요.


그런데, 이런 것도 시간이 약인 걸까요? 삼십 대를 넘어가고 아이 낳으면서 자연스럽게 아토피도 약해지더라고요. 이젠 팔 접히는 부분만 살짝 남아있는데요. 한의사 선생님이 이 경도라면 음식 조절 조금만 하면 다 나을 수 있다고는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밀가루 끊으란 이야길 하셨는데, 빵순이에겐 너무 힘든 이야기라...


여행 갈 때, 출장 갈 때, 하다못해 친정집에 갈 때도 이 스테로이드 크림을 꼭 챙깁니다. 여전히 하루에 한 번씩은 발라줘야 마음에 평안을 주네요. 게다가 자그마치 30년을 가까이 지내왔으니, 남편보다 더한 세월을 같이 한 반려 물건, 맞네요.


아토피 부위가 심해진 날은 몸에 좋지 않은 걸 많이 먹은 날이고, 깨끗한 날은 괜찮은 음식을 잘 챙겨 먹은 날. 제 몸 상태를 알려주는 팔 오금의 아토피. 그리고 한 번씩 발라줘야 안정감을 주는 스테로이드 연고.


스테로이드가 몸에 안 좋은 거 물론 알지만, 반려 물건이라 당장은 못 끊을 거 같고요. 서서히 헤어지는 연습도 해야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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