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조금 비를 뿌리더니, 지금은 날이 갰어요. 그러고 보니 금요일마다 비가 온 듯하군요.
오늘 무언가를 읽다가(정말 요즘은 무언가를 많이 보고, 많이 읽는 것 같아요. 머리엔 잘 안 들어오지만요. ^^;;) 반려물건, 이라는 단어를 봤어요. 반려견, 반려묘, 반려식물.. 이란 단어는 들어봤어도, 반려물건? 으잉? 했죠.
첨엔 반려된 물건인가 하는 생각도 하하하.
그러다 나에겐 반려물건이라는 게 있는가? 한번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요 며칠 전에 아이방 만들어준다고 내 책을 다 옮겼는데, 그 안에서 작은 책자 하나를 발견했어요. 중2 때 친구가 준 시집인데, 그걸 아직도 내가 가지고 있더라고요. 소중히, 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아이는 내 곁에 붙어 있었죠. 버려지지 않고.
얼굴도 이쁘고,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집도 부자고(?).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엄친아였던 친구였죠. 그때 저는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나 봐요. 어떻게 그리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기회로 그 아이와 친하게 되었고, 그 친구로부터 그 시집을 선물 받았어요.
그 친구는 전부 다 가졌는데 저는 그렇지 못했죠. 그때만 해도 내 안에서 스스로 성적별로, 집안 별로 사람의 등급을 나누던 시절이었어요. 나는 그 애가 속한 등급에 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움츠려 들더라고요.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온전히 친하지 못하는. 그 애도 나를 좋아하는데 그게 부담스러운. 하지만 그 애가 나를 좋아해 주니 그건 좋은, 그런 애매한 마음 상태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젤 앞쪽에 끼여 있는 편지지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받았고 이젠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 준다.'라고 쓰여 있는데 저는 그 구절이 너무 좋았어요. 아마 그래서일 거예요. 내가 부족해서 그 친구와 마음을 다해 우정을 나누지 못했는데도, 이 시집을 간직하고 있는 걸 보면.
중학교 졸업한 이후론 연락을 안 했었는데 (그 친구는 과고와 예고를 고민하다가 예고를 갔거든요.) 대학교 때 싸이월드를 열심히 하던 시절이었나. 그 친구와 우연히 연락이 닿았는데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보고 싶은데 네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보자고 말을 못 하겠다고. 아.. 말을 안 했어도 이 친구도 다 느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로도 보지는 못했지만 저는 그 친구의 안녕을, 항상 빌고 있죠. 내가 그릇이 안됐을 뿐,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잘 될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이 시집은 '그때의 어린 나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사람은 등급으로 나뉠 수 없는 누구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일깨우는 존재로 평생 간직하고 싶어요. 혹시나 내가 오만해질 때만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자중하고, 움츠려 드는 날엔 스스로를 응원하는 용도?^-^
반려 물건으로 꼽을 또 하나의 물건이 하나 더 있는데, 15여 년 전 친했던 언니가 선물해준 일기장이에요. 정말 선한 그 언니는 제가 어떤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 삶의 방향을 잡아주었죠. 그 일기장엔 언니의 생각들, 언니가 좋아하는 책의 구절들이 이쁜 글씨로 적혀있는데 아직도 마음이 헛헛해질 때면 그 일기장을 펴봐요. 그 일기장은 평생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줄 것 같아요. 내 인생 길잡이 반려 물건인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