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이어령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20220306 가정예배
찬양: 주를 찬양 (세상의 유혹 시험이, 마커스) / 이 시간 너의 맘 속에(김수지)
말씀: 요 6:22-35
인도자: 엄마 (지음 ^^)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본 (본 것)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가난한 군중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자신들의 삶을 바꾸어 줄 분이라 믿고 그를 따라다니고 싶어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쩐지 군중들을 피해 먼저 가버나움으로 가시고 제자들도 보이ㅣㅈ 않는다. 디베랴에서 배를 타고 주님을 수소문하여 가버나움까지 찾아온 군중들은 예수님께 언제 여기 오셨냐고 묻지만 예수님은 너희는 표적을 본 게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불러서 나를 찾았다는 동문서답을 하신다...
깨 (깨달은 것)
본문은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군중들이 예수님을 쫓아 다니는 장면을 비교적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떡"와 영어 본문의 "bread"의 그리스어 원어는 "아르토스", 즉 "양식"의 의미이다. 주기도문에서 나오는 일용할 "양식"이 바로 아르토스이다. 따라서 군중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양식" 문제를 해결해 주시리라 믿고 그 분을 쫓아다닌다. 겨우 겨우 예수님을 찾아낸 군중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당신을 찾았는 줄 아냐며 "랍비여, 언제 여기에 오셨나이까?"라고 묻지만 예수님은 '너희들이 표적을 보지 않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나를 찾았다'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하신다. 그 이후 대화에서도 군중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은 묘하게 핀트가 어긋나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어령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목사님께서 주일예배에서 인용하신 이어령 선생님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내용을 가족들과 나누었다.
기침은 은근한 노크
서양인들은 노크를 하나의 예의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 노크의 심리를 한번 분석해 볼 때 그것은 별로 그렇게 점잖은 에티켓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노크 자체가 이미 실례이니까. 그러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좀 더 점잖은 노크의 방식을 써왔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기침 소리다. 노골적인 '노크'와는 달리 그것은 얼마나 암시적인 것인가. 옛 사람들은 으레 남의 내실이나 화장실에 들어가려면 큰기침을 했던 것이다. 물론 '노크'와 마찬가지로 지금 사람이 들어가니 조심하라는 신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문을 노크하는 것처럼 직접 대놓고 하는 행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은근한 시사에 지나지 않는다.
기침은 자연 발생적인 것이므로 반드시 상대방을 의심하고 두드리는 노크와는 다르다. 우연히 기침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니 피차 부색해할 필요가 없다. 그 반응도 역시 그렇다. 노크 소리를 듣고 방정맞게 '컴인'이니 '엉트레'니 하는 직접적인 대답이 아니라, 역시 은근한 방법으로 그에 응하는 것이다. 몸을 움직여서 인기척을 낸다. 옷자락이 구겨질 때의 그 은미 隱微 소리가 아니면 몸을 옮겨 앉을 때 생겨나는 장판지 소리로...즉 "당신의 기침 소리를 들었다. 들어와도 좋다"는 암시다.
(출처: 이어령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p.74-75)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4712188
거칠게 노크를 하며, 아니 노크도 하지 않고 예수님을 스토킹하는 군중들과 달리 예수님은 은근한 기침 소리를 건네셨다. 그 기침을 통해 사람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보아야 할 것은 떡이 아니라 그 기적 속에 담긴 "의미"임을 알려 주고 싶어 하셨다. 그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는 동안 이미 광야에서 만나의 기적을 경험한 그 때를 떠올리면 알 수 있다(이 만나도 '아르토스(양식)'이라는 동일한 원어를 사용하고 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3)
사람은 썩어질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은 사람들이 떠올려주길 바라며 은근한 기침을 하신 것이다. 그 때 그 기침 소리의 의미를 알아 들은 사람들은 얼마나 되었을까.
적 (적용할 것)
우리는 우리의 마음 문 앞에 계신 주님의 은근한 기침 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굳게 닫혀 있는 우리의 마음 문 앞에서 거룩한 기침을 하며 당신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알려 주고 싶으신 그 마음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를 함께 생각해 보았다.
아들은 기침 소리를 듣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다며 지금이라도 그 기침 소리를 잘 듣기 위해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사순절의 의미를 묵상하고 매일 말씀을 잘 읽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들 다운 F.M. 나눔이었다. ㅎㅎ
딸은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비유를 많이 드시는 이유를 몰랐는데 오늘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예수님의 비유를 들을 때는 그 안에 깊은 의미가 있음을 알고 예수님의 뜻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이해해서 하나님과 티키타카가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
남편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썩어질 양식을 위해 서바이벌 하는 게 아니라 리바이벌 하는 걸 원하신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의 영광이나 이생의 자랑보다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우리가 말씀으로 새롭게 되고 닮아가고 태어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게 된 시간이었다.
# 중보기도
우크라이나를 위한 중보. 아들은 더불어 러시아를 위해서도 기도했으면 좋겠다며 러시아 사람들도 악한 지도자와 부패한 세력들의 속임으로 이 전쟁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된 것 같다는 안타까움을 나누었다. 두 나라 모두 이 어리석고 악한 전쟁을 하루 속히 끝내길. 사람들에게 일상의 기쁨이 다시 찾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기도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20&aid=0003414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