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 일상

걷기

by 영s

수술 후 6주가 조금 지났고 오랜만에 주치의 선생님께 진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무릎이 90도가량 수월하게 꺾이는 모습을 보여드렸다.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이제는 보조기를 떼고 다녀보라 하셨다.

사실 요 며칠 슬슬 보조기를 잘하지 않고 들고만 다녔던 터라, 그 말이 매우 반가웠다.

약간의 죄책감과 이래도 되나 싶던 작은 찝찝함이 한순간에 날라 갔다.

그러면서 선생님께서는 몇 마디를 덧 붙이셨다.

'보조기가 원체 가격이 있다 보니 중고거래에 팔기도 하고 그러는데, 일단은 어디 잘 넣어두세요. 환자분처럼 경과가 너무 좋으신 분들이 좀 무리하다 다시 다치는 경우가 많으니까. 당연히 그러면 안 되겠지만.'

이어


'지금 수술하고 6주가 지났으니까 슬슬 조깅 정도 하면서 일단 다른 운동은 조금 더 참으시고. 최대한 보수적으로 관리하는 게 절대 나쁠 게 없으니까. 아 당장 조깅하라는 건 아니고 한 2달 내지 3달부터 천천히 한 번 뛰어보세요. 절대 무리하지 말고.'


나를 단속시키신다.


요 며칠 일상으로 돌아간 나의 작은 고민 중 하나는. 일 하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다리에 로봇 같은 물건을 끼고 쩔뚝이며 다니고 있으니 행여 나를 굉장히 태생부터 불편함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있었다. 괜히 원래 그렇게 까지 친절한 사람이 아닌데 내게 친절하려고 무리하는 게 아닌가 혹은 그냥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사람인데 괜히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보지 못하고 나름의 배려를 하고 있는 듯한. 여러 편견 어린 시선들이 내게 작은 고민으로 다가왔다.

나를 더 편하게 대해줘도 되는데, 그러면 좋겠는데 여러 배려들로 오히려 생기는 약간의 불편함들이 난 불편했다. 그러다 그냥 농담 삼아 먼저 툭 얘기했다.

'원래 다리가 이렇게 태어난 건 아니고 나이 서른 먹고 공놀이하다 다쳐서 십자인대가 끊어졌네요. 그저 부끄럽네요'

대뜸 이렇게 말한다. 타이밍을 재고 뭐 할 것도 없이 먼저 이런 말을 하니 많은 이들이 당황하면서 웃는다.

한 분은 '아 저도 사이클 타는 거 좋아하는데 사이클 탈 때 끼는 보호기랑 비슷해서 뭐 하다 다치셔서 그거 끼고 계신 줄 알았어요' 하며 같이 웃으며 대화를 이어 갔고

한 분은 같은 리버풀(영국 축구팀) 팬이란 걸 이야기하다가 '아 나도 원래 축구 좋아하는데 반 다이크 당해서 지금 이러고 있잖아.'라고 틈을 보고 찔러 넣었고 그분도 웃다가 '아 반 다이크(리버풀 수비수, 십자인대 완파 당해 한 동안 쉬다 이번 시즌에 복귀) 당하신 거였구나, 복귀 하려면 꽤 걸리겠는데요.'

'반 다이크가 9개월 걸렸으니까 저도 9개월 내로 한 번 복귀 노려보려고요.' 등


약간의 고민이었던 여러 시선들을 가지고 재밌게 대화의 주제로 이용했었다.


여러모로 감사하게 무릎은 잘 회복되고 있었지만, 사실 무릎의 시림과 한 편의 아쉬움은 남아 있었다.


내가 축구를 좋아하던 이유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하나는 정신없이 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깅이나 러닝 등은 달리는 동안 시간과 공간이 너무 뚜렷이 보여 지속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리고 지루했다. 달리기의 마니아로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가 긴 소설을 어찌나 그리 꾸준히 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달리기는 사실 매우 고도의 지루함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물론 달리고 있을 때와 달리고 난 후에 몸에 많은 것들이 털어지는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후련했다.

축구를 하는 동안에는 시간과 공간이 보이기보단 주로 공만 보인다. 정신없이 둥근 공을 따라 정신없이 뛰다 보면, 내가 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거리나 속도보다 더 많은 양과 속력으로 뛰게 된다. 정신없이 공과 상대방의 움직임에 따라 전략적으로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2시간은 지나가 있고 나는 꽤 많은 거리를 뛰었고 많은 양의 땀을 흘리고 있다.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가쁜 호흡을 가다듬다 보면 그 어느 때보다 개운하고 특히 경기 전까지 가지고 있던 많은 고민과 스트레스들이 싹 다 사라져 머리 안에서의 개운함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찾아와 쌓이는 스트레스는 과거의 것들보다는 확실히 무겁고 거친 것들이 많았고, 나는 이 스트레스들을 푸는 방식을 '축구'로 찾아 풀었던 것 같다.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다 보니 술과 담배가 늘어가는 주변 나이 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축구' 양 또한 늘었었다.

몇 달간 뛰지 못하며 쌓인 노폐물과 스트레스들이 몸 구석구석 쌓인 것 같았다.


이제 보조기를 떼고 하루 한 시간 정도씩 가벼운 걷기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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