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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경 Feb 19. 2019

에릭 슈미트에게 듣는 키스의 미학

너바나, 너 어젯밤 어디에서 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낭만의 대상만은 아니었다.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에게 바다는 ‘공포와 두려움의 공간’이었다. 누군가 슬픈 바다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대여, 여기 바다가 보입니다. 조개껍질을 주워 봅니다. 모래성도 만들어 봅니다. 바다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추억을 생각할 것 같아요. 자전거가 남긴 자국이 우리 사랑의 발자국인 것 같아 마음이 짠해집니다. 그 추억 위로 지나갈 것 같은 그대가 그리워서 이렇게 바다를 찾아왔습니다. 그대가 파도 위에서 미소를 보이며 내게 손짓을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한 가지씩 좋은 추억으로 바다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저마다의 사연을 바닷속으로 던져 버리고 싶을까? 누군가에게 바다는 다정함으로 누군가에게는 바다는 슬픔으로 보일 수 있다.


쓸쓸함을 못 이겨, 쓸쓸함에 기대어 차디찬 겨울 바다에 발을 담가본다. 살을 에는 듯한 그 차가움에 기겁할 것 같지만, 그럴수록 차디참을 이겨내려는 의지를 확인해 본다. 파도 너머의 추억을 생각하며 문득 바다가 슬퍼 보인다. 슬픈 바다가 나를 멀리 하려 저 멀리 밀려간다. 바다 저편에서 사랑하는 이가 하얀 미소를 짓고 있다. 홀로 걷는 쓸쓸함이 느껴지는데 그 추억 속을 걷는 스스로에게 해안은 그저 아쉬운 쉼터로 남아 있다. 그래서 때로는 바다가 부정적인 공간으로 그려진다.    


“다시 돌아온 이 바닷가에 그대는 떠나가고 없습니다. 조금은 슬픈 추억 때문인지 나만이 홀로 이렇게 쓸쓸히 혼자인 걸 느낍니다. 그대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내 언제라도 찾아오겠어요.”


노을이 붉어진다. 노을 넘어 떠나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인다. 겨울 바다는 그래서 더욱 애잔하게 보인다. 사실 20세기 중반에 들어 관광, 여행 산업이 번창하면서 바다의 이미지가 극적으로 뒤바뀌었다. 휴양과 낭만의 공간이 되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시애틀의 바다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일까?     


시애틀 레이크시티. “‘꺼지지 않는 록의 불꽃’이라 평가되었던 스물일곱 살 커트 코베인은  총포점에 들린다. 권총을 구매한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호텔에 있는 아내 코트니 러브에게 전화를 건다. 아내는 일주일 전에 아는 이들에게 그들의 결혼 생활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는 예감을 말했다. 일찍이 코베인은 ‘나답지 않는 모습으로 사랑을 받을 바에는 본연의 내 모습 때문에 미움받는 게 낫다.”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화제가 된 책  ‘미움받을 용기’의 철학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었나!  코베인의 목소리에는 겨울도 아닌데 겨울 바다의 애잔함이 묻어났다.  


“자기,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정말 좋은 음반을 만들었으면 좋겠어.”    


캘리포니아의 따스한 기운 때문일까? 코트니는 쏘아대듯 반응했다.  


“설마, 이혼하자는 것? 혹시 자살이라도 생각하는 거야?”    


 “아냐.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기억해줘.”     


커트 코베인과 그의 아내 코트니는 그렇게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코베인은 행방을 감췄고, 아내 코트니는 사립탐정을 고용했다. 시애틀 경찰에 코베인의 어머니가 실종 신고서를 접수했다. 너바나의 팬은 이렇게 기억한다. 너바나는 번뇌와 고뇌가 소멸한 상태를 말하는 불교 용어 열반(니르바나)의 영어식 표현이다.    


“시애틀 음악지 ‘더 로켓’은 너바나가 해체됐다고 전했습니다. 커트 코베인은 붉은 잉크로 아내와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씁니다. 시애틀은 쓸쓸한 도시답게 그날도 비가 내렸습니다. 커트코베인이 세상을 등지고, ‘I love you. I love you’하고 그가 유서에 마지막 문장을 남깁니다.”    


그의 팬들은 오열하며 분수에서 옷을 벗어던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대 그리워 찾아오는 바닷가, 이제 그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베르테르의 효과였을까요. 시애틀의 라디오 방송국에는 ‘자살하고 싶다’는 수많은 사람의 사연이 쏟아졌습니다.”    


그룹 너바나의 멤버 커트 코베인의 집 앞은 그를 추모하며 흐느끼는 젊은이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외롭고 어둡게 만들었을까? 우울함이 물들어 있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     


“우리는 무대 뒤에 있습니다. 쇼를 알리는 표시로 객석의 불이 꺼집니다.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성이 들리기 시작해도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합니다. 퀸의 프레디 머큐리처럼 우리의 행위를 사랑하고 관객이 바치는 애정과 숭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속일 수 없습니다. 누구 한 사람도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너무 순수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딸을 생각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범죄는 거짓을 통해 마치 내가 100퍼센트 즐기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팬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일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는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는 너무 신경이 예민했다. 어린 시절에 가지고 있던 정열을 다시 찾기에는 조금은 둔감해질 필요가 있었는데. 그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렇다고 해도 내 안에 있는 부담과 죄책감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왜 아무 생각 없이 즐기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게는 야심과 배려가 충만한 여신 같은 아내와 내 어린 시절의 판박이인 딸이 있습니다. 내 딸 프랜시스는 사랑과 기쁨이 넘쳐 만나는 누구에게나  키스를 합니다. 아. 그런데 내겐 두려움이 있습니다. 프랜시스가 나 같은 한심하고 자기 파괴적인 인간으로, 죽음으로 달려가는 일만 생각하는 인간이 되는 걸 상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그는 갔다. 그래도 그는 매우 좋은 인생이었다고 자위했다. 그가 남긴 말처럼 우리가 스스로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는 너바나의 이름에 정말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었나! 그는 이렇게 삶에 대해 평가했다.     


“일곱 살 이후 인간에 대해 증오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손 쓸 방법이 없을 정도로 정상을 벗어난 변덕쟁이 갓난아기입니다. 내게 더 이상 정열이 없습니다. 기억해 주세요. 점점 소멸되는 것보다 순식간에 타오르는 것이 낫다는 것을요.”


그의 노래를 듣는데 마음이 슬퍼진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My girl, my girl, don't lie to me

내 여자여, 내 여자여, 내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

Tell me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내게 말해달라, 어젯밤 어디서 잤는지

In the pines, in the pines

소나무 안에서, 소나무 안에서

Where the sun don't ever shine

태양이 절대로 안 비취는 곳에서

I would shiver the whole night through

나는 하룻밤 새도록 추위에 떨 것이다.

My girl, my girl, where will you go

내 여자여, 내 여자여, 어디로 갈 것인가

I'm going where the cold wind blows

나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간다.

In the pines, in the pines

슬픔(소나무) 안에서, 슬픔(소나무) 안에서

Where the sun don't ever shine

태양이 절대로 안 비취는 곳에서

I would shiver the whole night through

나는 하룻밤 새도록 추위에 떨 것이다

Her husband, was a hard working man

그녀의 남편, 열심히 일하는 남자였다

Just about a mile from here

여기서 한 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His head was found in a driving wheel

그의 머리는 차바퀴 밑에서 발견되었다

But his body never was found

그러나 그의 몸은 발견되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나를 사랑하는 시간들>에 나오는 구글의 회장 에릭 슈미트를 불러서 그의 '키스의 미학'을 들어 보자.


그는 보스턴 대학의 교수이자 시인인 솔 벨로(Saul Bellow)가 쓴 시의 구절을 인용해 삶을 찬양한다.   


“나는 삶에 대한 진실한 예찬자입니다. 만약 내가 삶의 표면 저 높은 것에 도달할 수 없다면, 그 아래 어딘가에 키스를 할 것입니다. 내 말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삶에 키스를 한다는 것’은 완전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인용은 그가 생애에 걸쳐 쓴 수많은 아름다운 시 구절 중 하나입니다. 나는 이 구절이 아름다운 삶을 잘 요약하여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구절은 평범한 삶을 은총, 사랑, 존엄으로 가득 찬 삶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키스를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답해야 할 질문입니다. 그전 세대들 역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그런 삶을 모든 세대는 살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세대는 다릅니다. 역사적으로 완전히 연결된 힘을 보여 줄 첫 세대니까요. 여러분은 최대한 높이 날아 거룩한 삶과 입맞춤하세요. 멋진 키스 자국을 삶에 남기세요.”


20여 년 전 너바나의 커티가 키스의 미학에 동의할지는 모르겠다. 세상은 보기에 따라 더 위선으로 가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우리들의 시간을 가져 보아야 한다.  


인생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의미가 생기게 된다. 친구, 가족, 직장 동료 등 많은 이가 우리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큰 힘을 주기도 한다. 슈미트는 청년들이 헤쳐 나갈 세상에서 일자리로 대표되는 경제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한다. 그러나 그는 청년들이 갖고 있는, 그 어떤 세대도 가지지 못한 가능성을 새로운 힘으로 규정한다. 그 가능성을 실현하고 최대한 높이 날아 삶에 아름다운 입맞춤을 하는 것은 각자의 몫 이리라.


“사람들은 언제나 무언가, 혹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스크린 앞에서 자란 세대에 대해 한탄합니다. 그들은 틀렸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세상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연결성이 바로 여러분이 가진 우월함이며, 여러분이 인류를 위해 해야 할 책무입니다. 여러분이 거룩한 삶에 입맞춤하길 기대합니다.”


그게 인생이다. 삶은 축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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