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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ler Nov 17. 2020

두 워킹우먼_여성 총리와 여왕 (더 크라운 시즌4)

20세기에 배우고 21세기에 살기_02

넷플릭스의 '더 크라운' 시즌4가 시작되었다.

'더 크라운'은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는 - 흔치 않은 -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왕가 사람들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세상의 변화 속에 살아가는 왕가 사람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그동안  여왕이 가족과 직무를 대하는 태도, 특히 처칠을 비롯한 역대 총리들과의 대결과 조화는 일하는 여성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터라 시즌 4에 예고된 그녀와 대처의 만남이 꽤나 궁금했다. 그리고 시즌4의 10편을 정주행 한 결과, 주변의 많은 여성리더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즌이기도 하다.  


항상 새로운 환경에서 decision maker의 입장에 있는 여성이라면 시간이 되는대로 전 시즌을 다 보길 추천한다. 특히 여왕도 워킹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왕권은 우리들에게 주어질 리 없는 특권이지만, 그들도 화려한 데코레이션과 정해진 표정을 걷어내고 보면 선택할 수 없는 환경에서 성장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승진도 좌천도 없이 바뀌지도 않는 타이틀과 역할로 급변하는 시대에 생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와중에 여왕은 영국 역사상 첫 여성 총리를 맞이했다. 귀족 출신이 아닌 여성 정치가를 맞아 정책을 논의해야 하는 것은 선대의 기록에도, 그녀의 경험에도 없던 일이다.



이하에는 '더 크라운' 시즌 4 내용에 대한 스포가 일부 있습니다.



식료품점 딸이었지만 열심히 공부해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변호사가 된 대처를 여왕은 높이 평가하고, 대처 역시 왕관 쓰고 앉아있기만 할 줄 알았던 여왕이 정무에 관심도 많고 정보력도 있다며 같이 일하는 것에 기대한다.


물론 두 여성이 국정을 이끄는 것에 부정적이었던 여왕의 남편처럼 대처의 남편 역시 두 갱년기 여성의  단합으로 치부해버리는 이러한 시대에 스마트한 그녀들도  20세기 여성들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여왕은 첫 대면에서 가족의 축하와 남편의 근황을 먼저 묻고,

총리는 가족이 일에 방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긋는다.

내각에 당연히 여성은 없겠다고 던져보는 여왕에게

총리는 여성은 너무 감정적이라 고위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두 여성의 대화는 남성 간이라면 하지 않을, 그리고 지금 21세기에는 하면 안 되는 아이스브레이킹 대화였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저 질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21세기에 만들어진 이 드라마에 그려진 20세기의 여성 리더들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낯설지는 않다. 


1979년-1990년, 마가렛 대처가 총리로 재임하던 약 11년 동안 동갑내기 두 여성의 동행은 항상 좋지만도, 항상 나쁘지만도 않았던 것 같다. 호감으로 시작했지만 그녀들은 너무 다른 성장과정과 라이프 스타일, 업무추진방식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니까.


총리는 인류애를 바탕으로 협조를 요청한 여왕의 청을 냉정한 경제원리로 거절하기도 하고, 총리의 국정 결단에 의견을 내지 않고 항상 총리직을 지지하는 입장을 고수하던 여왕이 전에 없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과 열정, 국가에 대한 의무감에 있어서는 서로 믿었고 동시대의 여성으로서의 동질감도 느꼈을 것이다. 


철의 여인이라고 불리며 카리스마 정치가인 대처 역시 여전히 귀가하면 다림질을 해야 했고, 직원들을 집으로 불러 직접 요리해 상을 차린다. 휴가 반납, 야근 불사 업무 스타일이지만 아들의 실종 보고가 국가의 중요한 위기 대처에 우선시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아들을 편애하고 연약한 엄마와 딸은 폄하하는 남성/파워 지향적 워킹우먼이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가사일에서는 자유로운 여왕은 업무에서는 평화와 조화를 우선시하는 균형감각을 가진 지도자이지만 자녀들의 상실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고민을 호강에 겨운 투정으로 치부하는 엄격한 엄마이기도 하다. 왕가의 후계자로 엄하게 키우려 하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녀에게는 실망을 금치 못하는 부모...

번듯한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는 부모만 못할까 봐 전전긍긍 교육에 몰두하는 21세기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측근의 배신(?)으로 총리직을 마감하게 된 그녀가 여러 가지 억울함에 그동안 절대 보이지 않던 눈물로 여왕에게 하는 요청은 우아하게 거절당하지만 다우닝가를 떠나는 그녀에게 여왕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우로 인사한다. 


그녀들의 모든 것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해석하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는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배경과 역할의 여성리더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하며 함께 했던 모습을 상당히 인상깊게 보여준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도 새카만 양복들 뿐인 임원 회의에  유일하게 참석하는 여성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두 명이 되면 한 명의 어색함과 다른, 참으로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둘이 친해지면 모든 이의 호기심 어린 시선은 이 둘에게 모아지고, 2대 수 명 (혹은 수십 명) 사이의 바리케이드는 깨지기 어렵다. 그렇다고 따로 지내면 뒷소문은 끊이지 않으며 본의 아닌 경쟁 구도로 간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두 사람의 설전 혹은 대화는 왕과 남성 총리 사이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만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경험을 해본 여성 관리자들은 그녀들의 요동치는 감정들을 더욱 세밀하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 역시,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대화의 기류를 알지만 쉬이 먼저 나타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여왕이 총리에게 건네는 위로와 공감의 진심은 결국 그 자리를 떠나야만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대처의 취임으로 시작해서 퇴임으로 끝나는 이 시즌에서 두 여성 리더들은 서로에게 단 한 번씩 '여성 대 여성으로서'라는 말을 한다. 다른 상황에서 각각 다른 의도의 표현이었지만, 그 깊숙이 박혀있는 그녀들의 날카로운 외로움은 아는 사람만 안다.  



사족으로, 시즌4는 20세기 톱스타 이상의 인기와 동화 스토리의 주인공인 다이애나를 보는 시각적 즐거움과 찰스-카밀라-다이애나의 아침 드라마스러운 3각관계를 보며 욕하는 재미;;도 있다. 다이애나의 '멀리서 보면 희극(동화에 가깝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인 인생 또한 새로운 여성의 권력과 성장에 대해 또 다른 서사를 풀지만, 진행 중인 상황에서 시즌4가 끝나서 말을 아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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