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bler Sep 09. 2021

동굴 밖으로

방황하는 중년

시작하지 얼마 되지도 않은 브런치를 외면한지 반년이 넘었다. 

대단한 창작자도 아니면서 어느 순간 개인적인 글을 쓰고 싶어서 브런치를 시작해놓고, 또 어느 순간 글쓰기 버튼을 클릭하기가 싫어졌었다. 

연예인들이 집돌이 집순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 못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노트북과 핸드폰, 배달시스템이 있으니  굳이 집밖에 안나가고도 굶어죽지도 않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자니 굳이 사람들을 만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말로 내 표현을 하는 일이 줄어드니 글을 써야겠다고 소매를 걷어었는데... 

급기야 글로 표현하는 것에도 무기력해졌었던 것 같다. 

  

작년의 방황은 그동안의 전력질주에 대한 보상이랄까 위로랄까, 쉼이라고 포장했는데, 하지만 실제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일과 생활의 패턴이 달라지면서 조금씩 두려워졌다. 

빈둥거리다가 불현듯 예전에 사주 공부한다는 후배가 나에게 2021년까지는 힘들겠다고 했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그런가 팔자탓을 해본다. 


게으름의 핑계가 더 필요했다. 

더구나 (또 다시 외부 요인을 탓하며) 코로나19가 주는 부담감은 더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걸리는 것이 무서운 것 보다, 나로 인해 확산되는 모양새가 더 두려웠다. 개인적인 일로 다니는 동선도 밝혀지고 아이의 학교, 남편의 회사, 나이든 부모님에게 까지 여파가 번지는 원인이 되기 싫었다. 

게다가 학교가 거의 마비상태이다가 조금 나아지나 싶으면 다시 난리가 나길 반복하는 바람에, 아이 수발까지 의미를 두며 세상과의 단절을 택한 셈이다.  


어려울 것 같아도 동굴에 살다보면, 동굴의 어둠에 익숙해진다. 그러다 동굴 밖에  나가있는 시간이 줄고, 횟수마저 줄게되면 동굴사이즈에 맞추어 나를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차츰 편안해지면서, 동굴 밖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점차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매일 나가 보던 동굴밖 세상이 낯설게 느껴질 때 즈음, 그다지 큰 걱정없이 좋아하는 남편과 아이만 쳐다보는 삶이 편안해진다. 소위 말하는 새로운 시장개척없이 기존의 네트워크 안에서 필요한 부분만,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사니 삶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이대로 사는 것도 괜찮겠는걸?  

 

이라고 생각하던 중 내 갈등과 상황을 아는 지인 둘이 거의 동시에 동굴에 쳐들어왔다.  


화내는 걸 본 적 없는 선배 언니는 부드럽지만 묵직하게 이제 일 해야지? 라고 말을 건네고

냉철한 동생은 계속 집에 있을거면 아이 대치동 학원이라도 알아보라며 적시에 돌직구를 던졌다. 


마침 유난히 더웠던 여름의 끄트머리여서 조금은 제정신이 들었던 나는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남은 인생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작년 방황과 객기는 왜 부렸는데? 핑계였나? 허세였나? 이게 최종선택지인가? 


또 언제 무슨 변덕을 부려 동굴속으로 들어갈지는 모르지만,

나의 걱정과 핑계거리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굴을 나서봐야겠다. 

남은 인생이 너무나 길다.




작가의 이전글 두 워킹우먼_여성 총리와 여왕 (더 크라운 시즌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