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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풀 원섭 Jul 01. 2023

관찰을 관찰하다.

비 정상(頂上) 일기 (My Abnormal Diary)

하지메마시떼 (처음 뵙겠습니다)

와따시와 OO 데스 (저는 OO입니다)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잘 부탁드립니다)

이로이로또 아리가또-고자이마스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도쿄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으로는 처음이다.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모르기에, 위 4문장만 외워갔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일본어 4 Combo를 시전 했다. 택시 기사에게도, 길을 묻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심지어 전날에 이미 본 사람에게도, 기계적으로 '하지메마시떼'로 시작하는 4 Combo를 시전 했다. 그렇다, 아직 따로따로는 문장 구사가 힘들다는 것이 함정이었다. 


약 10년 전 오사카를 관광으로는 가봤지만 도쿄는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얼마나 바뀌었을까? 사실 일본 출장 전 일본에 대한 나의 인식은 '보수적','느림','경직','고립'과 같은 키워드였다. 최근 일본 드라마를 봐도 몇몇 남자 배우의 머리 스타일이 여전히 그 특유의 뾰족함을 강조하는 샤기컷임을 확인할 수 있다. '대체 언제 적 샤기컷이야', '일본은 정말 변화에 둔감하구나...' 싶었다. 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경제 분야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매스컴을 통해 종종 접해서인지 '일본은 변화에 둔감한 나라다'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일본에 처음 도착하여, 택시를 탔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전형적인 일본 자동차였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탑승했다. 그런데? 뒷좌석에 터치가 가능한 태블릿이 설치되어 있고, 공기청정기와 선풍기가 있었다.

  '아니, 전산화가 느린 일본에서 한국에도 없는 태블릿이?' 

더 놀란 것은 일본 택시 기본요금이 500엔으로(약 4500원) 한국의 택시 기본요금보다 더 저렴하다.(4800원)

일본에서는 택시가 비싸서 절대 타면 안 된다는 말도 다 옛말이구나 싶었다. 

어디 그뿐인가? 10년 전 오사카에서는 나보다 큰 사람들이 많이 없었는데, 도쿄에서는 나보다 키 큰 사람들을 정말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샤기컷이 아닌 포마드로 한껏 멋을 부린 양복 입은 직장인들도 왕왕 보였다. 또 지형적으로 고립된 일본만의 문화라고 생각했던 '갸루화장'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한국과 다를 것 없는 화장법 역시 내 기존의 인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나는 일본에 대해 너무 오래 묵은 인식을 고수해 왔구나'라는 부끄러움에 출장 기간 내내 눈을 부릅뜨고 다시 관찰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의 적은 나다'

이 세상을 올바르게 인지하고 행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그야말로 나 자신의 '편견'과 '상식'이었다. '편견'과 '상식'으로 대변되는 인지편향은 '좋은 관찰'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왜곡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여기서 '좋은 관찰'이란, '사물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가설과 그 사물의 상태 사이의 차이를 깨닫고 가설을 갱신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지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시선으로, 아기처럼 세상을 바라봐야겠다. 

 

<좋은 관찰의 사이클>                                                      

         가설 세우기 => 대상과 비교 => 차이점 파악 => 새로운 물음의 탄생 => 다시 가설 세우기


좋은 관찰은 인지를 변화시키고,
이는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반면 '나쁜 관찰''가설과 사물에 차이가 없다고 느껴 다 알았다는 생각에 가설을 더 이상 갱신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꼰대'가 '나쁜 관찰'의 최종 결과물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 일본 출장에서의 개인적인 성과는 크게 2가지이다. 


첫째는, 일본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가설을 갱신하고 새로운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인식이란 '일본은 변화하고 있는 진행형 국가이다'로 요약할 수 있겠다. 물론 거창한 깨달음은 아니지만 내가 갖고 있던 오래된 인식이 진실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점에서 아주 유익했다고 본다. 


두 번째는, 일본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몇 가지 건져 왔다.

예를 들면, 일본의 근무 시간은 점심시간 포함해서 8시간이다. 한국보다 1시간이 짧다. 나는 '잃어버린 30년' 동안 임금의 상승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일본이 지난 30년간 임금의 상승이 없었던 이유는 근무 시간 단축과 같은 노동 여건 개선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또 일본 지하철에서 노인의 수가 한국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관찰했다. 노인 인구 비율이 한국보다 높은 일본에서 참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일본 노인분들은 소비에 있어 상당히 보수적이다'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 일본의 대중교통은 노인을 위한 보조금 지원이 한국보다 적다'라는 가설을 세웠다. 

위 가설들이 얼마큼 진실에 부합하는지 당장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다시 일본 출장을 갔을 때 이러한 가설들이 새로운 관찰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


예전에 팀장님께서 때로는 '바보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고 하셨었다. 그 당시에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지금 그 의미를 반추해 보면, 기존의 상식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백지상태에서의 질문이 문제의 핵심을 올바르게 관찰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지 않나...라는 나만의 가설에 이르러 본다. 



위 글은 <관찰력 기르는 법> 사도시마 요헤이,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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