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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나 Dec 09. 2023

관계의 온기

미숙한 너와 내가 데우는 관계의 에세이

01
누구에게나 온기가 있다. 모두 소중한 사람과 포옹하고 사랑한다 속삭이며 살아간다. 남이 보는 온기의 정도는 다를 수는 있겠지만, '나 정도면 정이 많은 편 아닌가'라 느낄만한 각자만큼의 온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 주장은 성선설이고, 인류애이며, 순정이 있는 깡패 곽철용의 이야기 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 모두가 다정한 눈빛을 가지고, 남을 위해 미소 지을 수 있는 삶을 산다고 믿는다. 


02
그러나 종종 집 밖을 나서면 온기에 대한 믿음들이 산산조각난다. 나를 반기지 않는 작은 적에게 상처 받고, 남을 반기지 않는 나를 보며 실망하기 때문이다. 사랑받지 못한 오늘을 떠올리며 집으로 터덜터덜 걷는다. 건강한 마음으로 큰 그릇으로 모두를 품고자 했으나, 타인의 온기에 영향을 받는 나는 너무나 미숙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괴롭다. 타인의 온기에 바짝 졸며, 내 온기를 나눠주는 것에 주저하고 경계했던 모습이, 샤워를 해도 눈을 감아도 드문드문 떠오른다. 무형의 우울감을 깊숙이 느낀다.


03
그럼에도 온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미워보이는 한 순간에도 아주 미약한 너의 온기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한 온기를 믿고 내가 너를 공격하지 않았을 때, 우리의 관계는 0.1도씨 데워지는 것을 경험하기에 그렇다. 비록 손해보는 것 같아도, 그 손해는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내가 온기를 믿고 한발짝 내미는 순간, 이익과 손실, 승리와 패배, 강자와 약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나를 염려하는 것이라, 다양한 방향을 제안해주는 것이라, 또는 따뜻한 마음과 달리 어울리지 않는 말이 나왔을 뿐이라, 나의 온기를 듬뿍 얹어 너의 본심을 헤아린다. 나의 작은 발끈을 사랑을 담아 사포질한다. 실제로 너의 대부분은 나를 해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너의 온기에 휘둘리는 나와 같이 너 역시도 완전해지고 있는 중이기에 그렇다. 


04
기꺼이 믿는다. 이 믿음은 너를 사랑하는 내 온기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너의 온기에 내가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눠줄 완전한 시간을 잃지 않기 위해 쟁취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의 작은 종양이 점점 커지지 않도록, 악성으로 발견되지 않도록 부지런한 사랑으로 돌본다. 온기는 일방향이 아니다. 온기를 내어주면 너그러움을 건네받는 일이다. 


05
나의 불완전한 온기로 유한한 대상만을 사랑하더라도, 너에게 내어줄 온기만은 한켠에 꼭 남겨두려 한다. 우리사이의 온도가 조금씩 데워져 좋은 친구가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좋다. 이웃과 같이 너를 사랑하며 점점 타인의 온기에 의지하지 않는 나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나는 완전해지는 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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