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아무개의 감상을 궁금해할까
나는 전형적인 예술병을 가진 굼벵이 작가다. 이따금씩 '어떻게 이런 걸 썼지?'하고 스스로 감탄하는 에세이를 쓰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내가 원할 때 아주 간헐적으로만 글을 써오며 스스로에게 취하는 삶을 보냈다. 그러다 작년 11월부터 부지런히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 플랫폼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2달 정도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내 글을 알리기도 힘이 부치는 형편이다. 맘만 먹으면 바로 인기 작가로 등극할 줄 알았는데, 역시 인생은 실전이야⋯
내 경우 이야기를 짓는 재주가 부족해 주로 에세이를 쓰는 편이다. 다만 번뜩이는 글감이라는 것은 매번 찾아와주는 건 아니라서, 읽고 있는 책을 에세이 형태로 쓰는 것을 정기적으로 시작했다. 책의 주요 메시지를 바탕으로 나만의 생각을 재구성해서 쓰는 글이었다. 책 메시지가 소재니까 적당히 줄거리도 있고 생각도 들어가기 때문에 완벽한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글이 쌓일수록 나의 인사이트도 차곡차곡 쌓일 것 같았다.
그러나 내 글을 반대로 말하자면, 책 내용도 완전하지 않고 그렇다고 큐레이션의 성격을 지니지도 않은 애매한 글이었다. 게다가 어려운 책은 가끔씩 해설로 썼는데, 내 생각이 많이 들어가지 않을 때는 망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애매하고 실패한 느낌을 받을 때면 쓰기가 겁나 '서평 잘 쓰는 법'을 찾아다녔다. 분명히 거기서는 간략히 줄거리가 들어가야 하고, 공감했던 내용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책을 읽고 난 후 행동에 대해 제안하라고 하는데⋯ 뭐랄까 쓰면 쓸수록 글이 키메라가 되는 것 같았다. 누구를 위한 글인지 모른 글이 탄생했다. 나 재능이 없나?
나는 모든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그리고 작가에게 의미를 주기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즐기는 예술을 할게 아니라면 시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키메라같은 글이 더 태어나기 전에, 공급자 입장의 서평이 아닌 실제로 보는 사람이 원하는 서평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서평 가이드에는 있으면 좋을 것 같은 내용이 가득가득 담겨있었는데 세줄 요약 시대에 이 가이드를 따르긴 시대착오적일 것 같았다.) 그리하여 믿을만한 친구들에게 정성적인 인터뷰를 요청했다. 책을 고를 때 서평을 참고하는지, 책을 고를 때 도움을 줬던 콘텐츠들이 있는지, 책을 읽은 후에 서평을 본 적이 있는지? 평소에 책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지.
이런 질문을 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대부분의 서평 가이드에는 '서평이 책을 고르는 사람에게도, 책을 읽은 타인에게도, 책을 읽은 자신에게도 유용하다'고 이야기하나, 글을 쓰면 쓸수록 사람들은 서평으로 책을 선택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서평 자체는 유용한 정보일 수는 있겠으나 실제로 사람들에게 유용함을 주느냐는 다른 문제니까 말이다.
인터뷰를 해보니 서평가의 견해나 제안 같은 내용들은 책에 관심을 두는 대중(책을 고르거나, 책을 읽은 독자)들이 원하는 정보가 아니었다. 책을 고를 때는 내가 직접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 속 문장이나 띠지 문구가 더 유효했고, 책을 읽은 후에는 굳이 다른 사람의 후기를 볼 만큼 시간이 많지도 않았다. 오히려 꺼려했다. 애초에 다른 제품들과 달리 책은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지 않는 개별성이 무척 강한 콘텐츠다. 사람마다 혹하는 문장이 다르고, 느끼는 감상도 다르고, 심지어 같은 개인도 읽는 시점에 따라 책이 다르게 읽히기도 하니까. 누군가의 인생책이라 해서 읽어봤는데 '엥 이게?;'하는 경험도 한 번씩 겪어봤을 테다. 반대로 내 인생책을 누군가 폄하하면 괜시리 기분이 안 좋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우리는 누군지도 모를 이 아무개가 말하는 서평에 얼마나 귀 기울일수 있을까.
단 한가지 예외는 있다. 서평가가 내게 유의미한 사람이라면 그의 독서 리스트와 서평은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한소희의 '불안의 서'나 '페이커 독서 리스트' 같은 것들. 다만 이는 서평이 좋아서라기보다 서평가의 내러티브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일 것 같다. 그렇다면 디아나의 서평이 유의미해지는 법은 하나다. 내가 유명해지면 된다. ^_ㅠ
서평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서평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숙련된 독서가들도 많다. 다만 (숙련된 독서가를 제외한) 대중을 대상으로 일반인 작가의 서평이 시장성을 갖는다는 것은, 알고리즘급 버프를 받는게 아니라면 대부분 어렵다는 것을 체감할 뿐이다. 실제로 독자들이 책과 관련된 글에서 기대하는 내용은 정확한 책 정보와 혹할만한 필사 내용이 8할 이상이다. 스스로 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책 속 재료를 원할 뿐이고, 앞으로도 서평을 쓴 이 아무개의 느낀점은 궁금하지도 않고 물어보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공들였는데’ 시간을 온전히 투자한 내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내가 원하는 예술만 하면서 시장성을 바랄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대중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아님에도 열심히 썼다는 이유로 떼를 쓸 수는 없으니까.
사실 이 이야기는 꼭 서평이 아니라도 하고 싶은 콘텐츠를 고집하는 크리에이터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무리 몸에 좋다는 약재를 때려 부었다고 해도 맛이 없으면 찾질 않는다. 서평에 좋다는 내용을 아무리 가득 집어넣어도 보는 사람이 원하는 내용이 아니라면 글은 외면받는다.
물론 대중성만 제외한다면 내가 쓰는 서평 방식은 개인적인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콘텐츠다. 다만 여태껏 써온 방식은 꽤 품이 많이 드는 방식이었다 보니 앞으로는 서평을 쓰더라도 조금 더 담백하게 써 내려가고자 한다. 그리고 예술병도 고칠겸 좀 더 책의 원재료 중심으로 글을 써볼까 싶다. 앞으로의 글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면 지금까지 말했던 이유에서다. 애초에 서평은 뮤즈가 오지 않았을 때 에세이를 연습하기 위한 것이니까, 서평에 들였던 에너지를 조금 비워내고 내가 쓰려고 했던 에세이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언젠가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내가 무엇이든 대박이 나서 유명해져서 그때는 예술하듯이 독서 에세이를 쓰는 날 말이다. 나, 정말, 잘 쓸 자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