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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나 Apr 08. 2024

세입자를 용서하는 마음

1 비트코인 잃고 느낀 점

나에게 주어진 하루는 제각각 날이 서있다. 다만 일상의 뾰족함을 타원형으로 채점하는 일은 나의 몫이다. 내게 상처를 주고 허무와 상실을 안겨주었던 어떠한 문제라도, 내가 동그라미로 채점하는 순간 지구상의 어떠한 가시도 감히 나를 해할 수 없다. 나는 이것을 '용서'라 부르기로 했다. 무지하고 무례했던 나를 무지하고 무례했던 너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정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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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1비트 코인을 잃었다. (요즘엔 1억을 1비트 코인이라 부른다) 어떻게 잃었냐면 투자한 물건 가격이 떨어졌는데 전세금을 급하게 빼줘야 해서 급매하는 과정에서 잃었다. 왜 부동산은 내 마음대로 팔 수 없다고 말하는지, 왜 매도는 예술이라고 하는지를 그제야 체감했다. 손실은 괜찮았다. 물론 아주 괜찮은 건 아니었지만 선택에 대한 책임이었고 내 기준에 아주 아득한 금액은 아니었으니까. 조금 더 노력하고 절약한다면, 금방 다시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1비트 코인을 확정적으로 잃는 것보다는 돈을 메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견디는 것이 더 어려웠다. 재계약을 한 지 1달도 되지 않아 집을 나가게 되었다는 세입자는 사업 실패로 은행에 추심을 당하는 중이라고 했다. 갭투자라는 것을 세입자도 알고 있었기에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우리에게 거듭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손실금은 감당 가능했지만 전세금은 아득했기에 앞이 깜깜했다. 분양으로 최근 시세가 떨어진 것도 걸렸지만, 무엇보다 제때 돈을 돌려주지 못해 상대방이 곤란해질 수 있다는 이 조건부 상황이 제일 무서웠다. 혹시나 문제가 생겨 분쟁을 하게 되거나 집이 경매로 넘어가거나 세입자가 파산할 수 있다는 여러 가정들이 매 순간 불안하게 했다. 돈 걱정에 밥이 안 넘어간다는 것도 내 인생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매도 계획을 가지고 이번 계약도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터였기 때문에, 우리는 손해 보더라도 매도하는 쪽으로 결론 내렸다. 부동산 70곳에 연락을 돌렸고 보름에 한 번씩 잘 부탁한다는 전화를 걸었다. 마음이 아주 괜찮지는 않지만 우리는 아직 젊고 앞으로 잘해나갈 수 있을 거라 서로를 다독였다.



근데 사실 사업 실패와 추심은 거짓말이고, 시골집에 내려간다는 말도 거짓말이고, 모델하우스 갔다가 덜컥 신축 물건을 계약한 것뿐이고, 당장 버틸 집은 필요하니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재계약을 했다는 것을 매도 계약날 중개 소장님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참고로 계약갱신청구권의 신박한 조건 때문에 전세 2년을 계약하더라도 세입자는 언제든지 통보하고 나가도 되고, 나는 3달 안에 돈을 뱉어줘야 한다). 사실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으나, 추심을 당하는 중이라 하여 그렇게 믿었던 참이었다. 소장님은 말실수를 감지하고 아닐 수도 있다를 시전 하셨으나, 나는 억울해서 눈물이 났고 남편인 동글이는 핸드폰을 만질 뿐이었다. 세입자분께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메시지를 보냈으나 미안합니다라는 다섯 글자만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대성통곡했다. 보기 좋게 속았다는 마음이 들어서 분했다. 아빠와 나이가 비슷한 그 세입자 눈에는 우리가 얼마나 속이기 쉬운 사람으로 보였을까. 세입자분이 우리를 속일 수밖에 없던 남모를 사정이 있었을지 몰라도, 지난 3개월 동안 우리가 했던 여러 염려와 걱정과 설친 잠과 타들어가는 마음이 무가치한 일이 되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이 제일 컸다. 내가 약해지면 동글이도 힘들걸 알아서, 그동안 꾹 버티며 "잘 되겠지!" 하며 웃었던 날들이었다. 서로를 위해 내색하지 않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생각을 하면 할수록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어떻게 나 좋다는 대로만 사나' 하는 마음으로 은행을 드나들었는데⋯⋯. 남이 파산하든 말든 나 좋은 대로만 살아도 되는 세상인 것 같았다. 그렇게 허무한 한 달을 보냈다.



그러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뾰족한 감정은 처음엔 몰라도 결국 내게 닿는다는 것을 안다. 다소 억울할 수 있지만 나를 다치게 한 적의 가시든, 적에게 뿜은 나의 가시든, 그 가시를 치워버려야 할 책임자는 오롯이 나다. 뾰족한 가시는 제때 치워두지 않으면 마음속에 여러 감정이 오갈 때마다 방해물이 되니까. 그리고 애먼 사람에게 가시가 박히기도 하니까. 나는 한참 울다, 억울하고 저주하고 싶은 마음에 기한을 두기로 한다. 동글이와 나는 오늘까지만 실컷 욕하고 내일부터는 우리의 삶을 살자고 이야기한다.


내 안의 들끓는 가시를 치우는 방법 중 하나는 뾰족한 가시 주변을 따라 걷는 것이다. 나의 사정과 그의 사정. 걔는 왜 그랬을까라는 것들을 버려둔 채, 사건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조금 멀리서 '그런 일이 있었대'라는 이야기로 내 하루를 정의하고, '그랬구나'하는 너그러움으로 내 마음을 다독이며 날 선 하루를 감싸본다. 오늘의 불안이 외로움으로 남지 않도록 점에서 점으로 이어 붙인다. 그렇게 감싸며 걷다 보면 어떠한 뾰족한 날들도 긴 타원형의 동그라미 속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한다. 제아무리 뾰족하고 실패한 날들도 원한다면 기꺼이 동그라미로 채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된다.


뾰족한 가시같기도 틀린 문제의 빗금 같기도 한 많은 문제들은 대부분 우리의 시선으로 바꿀 수 있는 일들이다. 시행착오로 가득한 우리의 인생에 앞으로도 필요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선택을 이해하고 마음을 다독여주는 그런 긴 타원형의 동그라미가 아닐까. 1비트 코인을 잃은 건 잃은 것이고 속은 건 속은 것이다. 겪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겼었다 한들 망할 일은 아니다. 그저 잘 테두리 치며 이번 일을 동그라미로 끝맺는 것이 내게는 더 중요하다. 왜냐면 나는 앞으로도 동그라미를 만들어나가야 할 사람이니 말이다.



사실 말은 쉬웠지만, 빗금에 동그라미를 덧대기 위해선 고통받고 버티는 시간이 필요하다. 동그라미를 그리는 일은 단순히 위로하거나 없던 일로 부친다는 뜻이 아니라, 인내하며 상황과 나를 보듬는다는 뜻이니까. 우리는 이렇게 묵묵히 스스로를 다독이고 용서하는 삶을 조금씩 살아내고 있다.


오늘 아침 나와 동글이는 드디어 잔금을 치렀다. 그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세입자분은 마음이 안 좋다며 건강하고 좋은 일이 있길 바란다는 문자를 주셨다. 3개월 동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했던, 통곡의 눈물을 쏟게 했던 일들이 오늘로써 끝이 났다. 그 끝은 조금은 허무했고, 동그라미 속 날 선 가시도 많이 무뎌져 있었다. 그리곤 평소와 다름없는 분주한 월요일을 보냈다. 앞으로 1비트 코인만큼 다시 달려야 할 나를 두고, 내가 그렸던 긴 동그라미에 웃는 얼굴을 그려본다. 기왕이면 웃는 얼굴로 다음 동그라미를 잘 그려보고 싶다.


* 내용의 일부는 사실과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각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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