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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동안의 모유수유를 마치며, 나의 단유일지 2편

모유와 헤어질 결심 (단유를 하게 된 이유, 그리고 심정 )

by 옫아

9개월 동안의 모유수유를 마치며, 나의 단유일지 1편 에 이어 쓰는 글


모유수유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저 하고 싶다고 해서 가능한 영역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기가 빠는 힘이 약하거나, 엄마 젖이 충분히 많지 않아 분유를 보충할 경우에도 이는 이중 작업이기에 단유가 모두를 위한 길이다. 그리고.. 단유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복직이다. 나 역시 조리원에 있을 때 같은 시기에 조리원에 함께 있던 엄마들이 모두 바로 복직을 해야 해서 단유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있다. 그리고 나 역시 이제 같은 이유로 단유의 길을 걷게 되었다.


10월 중순에 복직 예정이기에 아기 돌을 못 채우고 복직을 해야 했기에, 사실상 원치 않게 자의가 아닌 타의에 가깝게 단유의 길로 진입하게 되었다. 속상했다. 내가 공무원이거나 더 좋은 직업을 가졌으면 육아휴직을 무급으로 2년 더 쓸 수 있는데, 이딴(!) 회사를 다녀서 육아휴직을 1년밖에 못 쓰고, 그리하여 돌도 못 채우고 복직을 해서 젖을 못 주는구나, 싶은 마음에 모든 것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월급 몇 푼이나 벌겠다고(그래도 몇 푼은 몇 푼이다. 띠끌 모아 태산쓰) 애기 젖도 못 주나 싶었고, 단유를 해야 해서 빨대컵을 아기에게 적응시키는데 익숙하지 않아 낯설어하는 아기를 보면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나는 것이었다. 시방 뭐시 중한디,를 외치며 그저 내 새끼를 끌어안고 젖만 주고 싶은 참담한 심정으로까지, 그렇게 극단적으로 좌절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회사 생활을 하면서 돌까지 모유수유를 병행할까, 고민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회사에서도 틈틈이 유축을 하면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다가 실제로 머릿속에 그 모습이 상상하니 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신생아도 아니고 돌에 가까워져가니 굳이 회사 다니면서까지 모유수유를 병행하진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험한 생각에 이르렀을 때, 나는 이제야 정말 탯줄을 끊는 기분을 느끼는 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포포가 조리원에서 깔끔하게 탯줄이 떨어졌을 때도 별 생각이 없었다. 나는 포포가 배 안에 있는 것보다 배 밖에 있어 마주보는 것이 훨씬 좋았고 그래서인지 모두들 애지중지한다던 그 탯줄도 대충 어딘가에 보관해둔 상태다(ㅠ). 그러나 단유는 누군가가 느꼈을 탯줄을 자르는 그 아쉬움 이상으로 내게 다가왔다. 포포와 나의 연결고리가 이제 없어지는 구나. 우리를 이었던 연결감은 단유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또한 포포를 건강하게 살찌우며 느꼈던 나의 은근한 자부심과 만족감과의 이별도 다가온 것이다. 나는 이제 포포에게 더 이상 생존을 위해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 나와 포포 사이를 잇는 중요한 무언가를 내 손으로 기어이 자르는 기분이었다. 보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엄마로서 포포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무이의 중요한 무언가를 내 손으로 포기하는 비정한 엄마가 되는 비참한 심정이었다. 나의 존재감이 옅어지고 포포를 저 멀리 독립시키는, 그런.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포포와 내가 비로소 헤어질 준비가 되었기에(9개월 모유수유면 할만큼 다 했다고 생각한다는 소신발언), 일종의 마음을 다잡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동안 누누이 남편은 포포는 독립된 개체이지 그 누구의 소속도(부모의 소유도) 아니라는 사상을 내게 주입해왔다(!ㅋ). 그럼에도 나는 포포는 우리 새끼지,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한없이 우리의 귀여운 인형 같은 존재가 아님을 이제는 조금씩 느끼고 있다. 품안에 얌전히 있던 포포는 이제 어디든 가려고 베이비룸을 잡고 아우성을 지른다, 내보내달라고. 내가 만들어준 이유식을 세상 제일 맛있게 먹다가 어느 순간부터 떡뻥에 눈을 떠서 떡뻥봉지를 흔들고 있다. 이처럼 포포는 내 예측과 내 상상을 벗어나 본인만의 우주로 날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기껏 젖을 준다는 이유로 포포가 나만의 것이 될 리가 없으며, 그렇게 되리라 마음을 먹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단유를 이야기하다 거창한 결론까지 냅다 와버린 느낌이지만, 그만큼 모유수유가 내게 주었던 의미는 너무 컸기에 헤어짐의 순간이 왔을 때 너무도 어려운 것이다. 이 작별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내가 꼭꼭 씹어 소화해낼 것인지, 그야말로 암담하다. 어쩌면 단유가 아쉬운 건, 포포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크기도 하겠지만서도 모유수유에 열렬히 임했던 그때의 나와 작별하는 허전함이 더 큰 건 아닐지, 그런 생각도 해본다. 어찌되었든 단유를 결심하고 한 10번도 넘게 울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단유를 어떻게 할거냐면..


8월 초 가슴에 울혈이 생겨 가슴마사지를 받고 온 날, 바로 그 날 단유 마사지 상담 및 예약을 진행했다. 단유 마사지는 총 6번의 마사지인데 처음 3번은 연달아 받고 1번은 1주 뒤, 1번은 2주 뒤, 마지막 1번은 한 달 뒤 이렇게 간격을 늘리며 유선 관리를 받는 시스템이다. 아무리 새벽수유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고 해도, 젖양이 적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자연단유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고 복직이 성큼성큼 다가와서 그런지, 회사에서 미팅하다가 젖이 새서 블라우스가 젖는 꿈까지 꾸기도 했다. 단유약은 부작용이 겁이 났기에 조금 가격은 나가더라도 건강하게 마사지를 통해 단유를 하는 것이, 그간 9개월 동안 젖소로 살아온 나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했다. 복직하는 날을 디데이로 잡아 마사지 일정을 잡고 집에 와서 수유를 하는데 덜컥 겁이 나고 눈물이 났다. 단유마사지를 받은 그 날부터 단유라는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내가 나 편하자고(복직 전 사랑니도 빼고, 완벽하게 젖을 말리고 가고 싶어서) 너무 단유 마사지 시작 날짜를 빨리 잡은 건 아닌지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래서 다시 마사지샵에 전화해서 날짜를 미루는 것을 상담하기도 했지만, 그래봤자 1주 미루는 거라 큰 차이는 없다고 답변이 왔으며, 9개월 완모 가깝게 모유수유했으면 할 도리를 다했다는 격려도 함께 돌아왔다. 그래, 그렇지,, 젖을 잘 말리고 가야 회사 생활에서 문제도 안 생기겠지, 마음을 기어이 잘 다잡았다. 또한 모유가 아니더라도 나는 5개월 후반부터 지금까지 내리 손수 이유식을 전부 다 만들고 있다. 때론 남편의 협업 하에 완두콩, 검은콩까지 기어이 까곤 했다. 모유가 아닌 다른 매개체로도 포포에게 내 진심 어린 사랑을 전하고 건강하게 잘 키울 수 있다. 그리고 좋은 분유를 사줄 것이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모유수유를 하면서-솔직히 고백하건대- 좋은 기억들보다 힘들었던 기억들이 곱절 많은 것이 불편한 사실이다. 좋은 몇 가지가 어마어마하게 크기에 힘든 기억들과 감정들을 상쇄시켜버리는 것이지, 힘든 자잘한 것들이 까끌까끌하게 가슴에 남겨져 있다. 단유를 앞둔 지금 이제와 생각해보면 뭐 그리 별거냐, 싶겠지만 당시에는 꽤 별거였다. 손목이 너무 아픈 건초염이 와서 약을 먹고 싶어도, 스트레스성 급성 위경련이 와서 빠른 조치를 취하고 싶어도, 내성발톱 때문에 병원을 찾아도 모두 '모유수유'라는 이유로 효과적인 방안을 제시 받지 못했다. 기미 때문에 글루타치온 같은 기능성 제품을 가까이하고 싶어도, 스트레스 받는 날에는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고 싶어도(나는 임신기간부터 쭉 무알콜, 논알콜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모유수유 중이라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 단유는 이 많은 제약으로부터 이제 해방되는 것이기도 할 텐데, 왜이리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씁쓸하고 허망한지. 그래도 그간 못해온 것들 하나하나 해나가며 단유의 즐거움을 찾아야 겠다. 또한 단유라는 좋은 이별을 하면서, 내가 내 삶 속에서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아왔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의, 삶 속 일정 조각을 잘 보내줘야겠다.


포포는 거의 완모에 가까운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체격도 좋고 살집도 있어서 소아과에서도 그렇고 문화센터에서도 '분유 먹는 아기' 같다는 농담을 받는다. 이유식을 하기 전에도 모유만으로도 충분히 무게가 많이 나가는 포포를 보며, 내 모유가 좋은가봐, 라고 자랑스러워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영광의 시절과 나는 이제 헤어진다. 잘 헤어질 준비를 천천히 하고 있다. 오랜 애도의 끝에서 나와 포포 모두를 위한 길로 기꺼이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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