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유수유 일지
정말 아이러니하다. 단유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모유수유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니.
나는 9개월 간의 모유수유를 마치고 약 2주 뒤부터 단유의 길을 걸을 예정이다, 고 한 줄로 요약하기엔 그동안 많은 일들과 뒤엉킨 감정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전부를 쉬이 텍스트로 다 담아낼 순 없겠으나, 모유수유와의 좋은 이별, 그러니까 내가 무언가를 위해 그토록 애를 쓴 한 시절과 잘 헤어지기 위해 이 글을 쓴다.
하나의 글에 다 풀어낼 수 없기에 총 3번의 글, 그간의 모유수유 여정을 돌아보는 시간, 단유의 길을 걷게 된 계기와 심정 그리고 단유 그 후의 단상들로 나누어 적는다.
내게 모유수유는 어마어마한 경험이었기에 조금 과도한 의미부여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모유수유는 완벽한 정답이 아닌, 그저 하나의 선택일 뿐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분유수유로 키워진 아기였고, 내가 쓰는 글들이 누군가에게 일명 '모유라이팅' 같은 조금의 불편함이라도 남기지 않길 바란다.
1편: 나의 모유수유 일지
모유수유는 내게 '시작은 미약해도 그 끝은 창대하다'에 조금 견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얼렁뚱땅 모유수유의 길을 시작했고, 헤어질 때가 되니 거창한 의미 부여를 자꾸만 하게 된다. 모유수유를 시작할 땐 전혀 알지도 못했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가슴에 달린 이 두 젖꼭지가 어마어마한 의미를 갖게 될 줄을, 모유가 탯줄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게 될 줄을 정말이지, 꿈도 꿀 수 없었다. 고백하건대 모유가 좋다는 건 임신을 하고나서야 알았다. 누구나 그럴 것 같다는 편견에 기대어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임신 전까지는 분유와 모유의 개념을 크게 구분할 수도 없었다. 둘 다 좋은 거지(당연히 둘 다 좋은 것), 라고 막연히 생각했기에 나 역시도 분유수유를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파워J였던 나는 출산 전에 분유제조기를 비롯한 분유 관련 물품들을 알아보고 구입을 했다(브레짜분유제조기는 새 상품으로 샀고, 완모의 길을 걷게 되면서부터 이를 아끼는 동생의 동생에게 둘째 임신 선물로 주었다).
그러던 36주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임신 막달에 임신중독증을 발견해 응급제왕절개로 아기를 낳게 되었다(낳았다는 표현이 맞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기가 꺼내졌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 같다). 어수선한 상황이었고, 그렇게 아기는 미숙아로 태어났기에(그렇다고 하기엔 3.09kg) 코에 호스를 끼게 되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무치게 가슴 아픈지, 많이도 울었다. 다 내 잘못 같다는 죄책감 속이 모유수유의 첫 번째 동기였다. 이후 모유라이팅(모유는 최고의 선물이다 등)과 더불어 모유수유를 하기에 충분한 조건의 가슴을 갖고 있다는 격려 속에서 얼렁뚱땅 완모의 길을 걷게 되었다.
출산 전에는 막연히 모유를 1달만 먹여야지 했던 생각이, 출산 직후엔 아기가 이 나기 전인 6개월까지 먹여야겠다는 다짐으로 바뀌었다(결과적으론 목표를 이룬 셈이다). 모유수유의 장점과 단점은 각각 많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크리티컬한 단점은 수유를 오직 엄마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명 직수라고 해서 직접 젖을 물리는 수유 방식을 택할 경우 신생아 시절에는 시도때도 없이 젖을 물려야 한다. 모유는 소화가 잘 되어 분유보다 더 자주 먹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유축이라고 하는 방법을 일부 썼는데, 이를 통해 젖양을 늘릴 수도 있었고, 미리 유축을 하면 내가 아닌 남편이 나 대신 아기에게 맘마를 먹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유축은 직수보다 내게 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젖꼭지가 허는 것은 물론이고, 젖을 빼는 과정이 정말 불쾌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게 나였다. 그래서 유축을 할 때는 정신을 다른 곳으로 보내기 위해 책을 읽거나 웃긴 영상을 보며 불쾌한 감정을 애써 지웠다. 불쾌한 감정이 드는 것도 불쾌했다. 내 새끼 밥 먹이려고 하는 건데 불쾌하다고나 불평하다니, 모성애와 한 걸음 멀어지는 기분이라 더 울적하기도 했다. 불쾌함 때문에 불쾌해지는 악순환이었다. 그리고 막상 남편이 유축해둔 걸로 애기를 먹이려고 할 때, 젖이 계속 차서 마냥 누워있을 수 없어서 그동안 유축을 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온라인 모유수유 동지의 조언에 힘입어 유축을 멈추고 ALL 직수에 도전하기 시작했고, 그로인해 모유수유는 한결 수월해졌다. 물론 아이가 커서 수유 횟수가 줄어든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새벽수유가 존재했지만(분유를 먹이는 아가들은 포만감으로 통잠을 비교적 일찍 잘 수 있다고 들었을 때, 단유하고 싶은 욕망이 차올랐다. 그러나 모든 것은 애바애. 분유를 먹여도 새벽수유가 오랫동안 있는 아가도 있고, 모유수유를 해도 100일 전 통잠을 자는 아가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누워서 수유하는 눕수도 도전해보고 조금씩 상황에 적응되어 갔다.
모유수유의 단점이 많은 만큼(엄마가 직접 줘야 하고, 외출이 크게 자유롭지 못하며 엄마 컨디션이 곧 젖의 문제로 직결되는 등) 장점도 많다. 일단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다. 포포도 모유수유 덕분인지 지금까지 크게 아프거나 하지 않고 작은 코감기 한 번 정도 앓았으며 예방접종도 열 없이 지나갔다. 분유 관련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 분유 선택의 문제나 분유값 걱정 그리고 젖병 청소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외출 시 짐이 적는 것도 소소한 장점 중 하나이다. 그 외에도 여러 장점들이 있겠으나, 모유수유를 선택한 이들에겐 오직 '모유를 잘 먹고 잘 커주는 것'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답변이 될 것 같다. 나 역시 그러했기 때문이다.
모유수유가 어찌나 내 삶 속에서 큰 화두였는지, 관련 글을 몇 번 쓴 적도 있다.
모유수유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좀 힘들다는 투정, 그 사이에서 성실히 완모의 길을 걸어왔다.
그런 내가 9개월에 단유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더 풀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