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외할머니와 올갱이

외할머니가 그랬듯, 나도 그러고, 언젠간 포포도 그럴 사랑의 되물림

by 옫아

남편과 마주앉아 포포가 먹일 완두콩을 한 알 한 알 까는 동안 나는 외할머니를 생각했다.

맞벌이에 주말 부부셨던 부모님이셨기에 나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외할머니와 특별하고 애틋한 관계였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게 나는 그야말로 '첫사랑'이었다.

내가 포포의 새로운 순간들을 경이롭게 마주했듯

우리 외할머니도 나의 여린 순간들을 처음으로 봐주신 목격자이시다.

그래서인지 나의 작은 취향 하나하나 할머니는 정확하게 기억하시는데,

이를테면 올갱이가 그러하다.

외할머니와 올갱이를 잡으러 갔던 추억부터

(외할머니가 올갱이 한 마리라도 더 잡아주려고 물에서 안 나오시니까 내가 "할머니! 나보다 올갱이가 좋아?"라고 외쳤다고 한다)

내가 올갱이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까지 외할머니에겐 전부 소중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의 올갱이를 책임져주시는 외할머니이다.

시장에 가셔서 올갱이 한가득 사셔서 외할아버지와 마주앉아 한 알 한 알 올갱이를 까시고 맛있는 국으로 만드셔서 종종 내게 주신다.

오늘도 그 사랑 가득한 올갱이국을 내게 가져다 주셨다.

외할아버지랑 무려 2시간을 앉아서 까셨다고 한다.

그 말씀을 들으니 포포를 위한 완두콩을 다듬던 나와 오빠가 저절로 그려진다.

사실 그 어느 때와도 다를 것 없는 올갱이국인데,

포포의 이유식을 손질하며 나는 어렴풋 외할머니의 마음을 비로소 해석하는 데 성공한 것 같다.

그 마음 하나 읽는 데 정말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마조차도 "나는 포포 위해서 2시간 올갱이는 못 까줄 것 같아..ㅎㅎ"라고 하시는데

그 연세에 나를 위해 올갱이 한 알 한 알 까셨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포포가 오빠와 내가 깐 완두콩 한 알 한 알에 담긴 사랑으로 커가듯

나 역시 외할머니의 깊은 사랑으로 자라온 것이겠지.

이 사랑 다 갚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나의 아기 포포가 커가는 모습으로 그 사랑을 갚을 수 있다는 희망을 오늘 본 것 같다.

포포도 어느 날이 되면

내가 그랬든 완두콩의 사랑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그저 그런 사랑으로 본인이 커왔다는 사실을 느끼면 좋겠다.

더 나아가 포포에게도 그런 사랑을 주고 싶은 존재가 생긴다면, 더 좋겠다.

KakaoTalk_20250621_202931058_06.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7개월 진입 전 6개월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