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를 뿜어내고, 온기를 품어내는 일

을 하는 저는 워킹맘 5개월차입니다.

by 옫아

어느덧 10년 차,

회사 모니터 앞에 앉아 세상으로 내보낼 문장들을 정제하는 일은 이제 내 몸의 일부와 같습니다.

홍보팀 직원으로서 나는 가장 전략적이고 매끄러운 언어들을 세상 밖으로 뿜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보도자료의 헤드라인을 고민하고, 사보의 페이지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기획을 채우며, 회사의 목소리를 가장 선명하게 발산하는 것이 나의 일과입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듬어진 나의 '뿜어냄'은 이 회사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업'이라는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2월의 찬 공기를 뚫고 퇴근하는 길, 나의 언어는 급격히 형태를 바꿉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10년 차 홍보인의 기획력은 이제 가족의 식탁 위로 향합니다. 2월의 첫 주부터 어린이집이라는 낯선 사회에 적응하느라 애쓰는, 이제 막 15개월에 접어드는 아기와, 육아휴직이라는 큰 결심으로 그 곁을 지키는 남편.


퇴근 후의 나는 다시금 무언가를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이번에 뿜어내는 것은 세련된 문구가 아니라, 가족의 허기를 달래줄 따뜻한 밥상의 김입니다. 낮 동안 보도자료의 자구 하나에 매달렸던 그 예민함으로, 이제는 아기가 오물오물 씹어 삼킬 반찬의 질감을 고민하고 남편의 고단함을 덮어줄 찌개를 끓여냅니다.


사회에서 뿜어냈던 에너지가 나를 증명하기 위한 투쟁이었다면, 집에서 뿜어내는 정성은 사랑하는 이들을 품어내기 위한 헌신입니다. 밖에서 온 힘을 다해 에너지를 발산하고 돌아왔음에도, 다시 주방으로 출근해 사랑하는 나의 이들의 입으로 내일 들어갈 밥을 짓는 과정은 묘하게도 나를 다시 채우는 시간이 됩니다. 낯선 곳에서 긴 하루를 보냈을 아기의 칭얼거림을 받아내고, 육아에 지친 남편의 어깨를 토닥이며, 나는 비로소 워킹맘이라는 낯선 이름의 정체성을 내 안에 품어 안습니다.


세상으로 향하는 가장 정확한 메시지를 뿜어내는 홍보인으로 살다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지어내는 엄마로 돌아오는 길.

비록 몸은 고단하고 두 역할 사이의 줄타기는 여전히 아슬아슬하지만,

뿜어낼 열정이 있고 품어줄 온기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됩니다.


다음 날 아침,

15개월 아기가 내가 차린 밥을 한 입 가득 물고 웃어주는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다시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비록 몸은 고단하지만, 뿜어낼 곳이 있고 품어줄 이가 있다는 것은

10년 차 워킹맘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풍요로운 이중주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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