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v - Paris in the Rain

우리는 파리의 비를 맞아본 적 없다.

by 김동화


우리는 파리의 비를 맞아본 적 없다. 더 나아가 파리를 가본 적도, 그것보다 더 나아가서 프랑스를 가본 적도 없다. 그랬던 우리가 파리의 날씨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Paris in the Rain>이라는 곡이 수록된 엘피를 들었던 순간부터다.


무심하게 비가 내리는 가을이었다. 우산이 없던 터라 더 많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전에 아무 곳이나 들어가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서로의 손을 잡고 들어간 곳이 동네에 있던 작은 엘피바였다. 음악을 즐겨 듣지 않는 우리였기에 하필이면 들어온 곳이 엘피바였다는 게 참 난감했다. 다시 나갈까, 싶었지만 이미 엘피바의 직원과 눈이 마주쳤고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비가 그칠 때까지만 머물자고 생각했다.

엘피바 내부에는 긴 바 테이블이 있었고 혼자서 음악과 술을 음미하는 사람과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둘이 각자 헤드셋을 끼고 웃으면서 노래를 듣고 있었다. 우리는 제일 구석진 곳에 짐을 풀었고 산토리 하이볼을 한 잔씩 주문했다. 그러자 아까 전 눈이 마주쳤던 직원이 웃으며 엘피 플레이어의 조작법과 오늘의 추천곡 리스트를 건네주었다.


엘피 플레이어의 조작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플레이어의 전원을 켜고 엘피를 올린 후, 트랙이 나눠진 선에 맞춰 바늘을 올려두면 노래가 재생되는 방식이었다. 조작법은 익혔고, 이제 음악만 고르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말했다시피 우리는 음악을 즐겨 듣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추천곡 리스트를 펼쳤다. 80년대 노래부터 최신곡까지 다양한 음악들이 앨범 커버와 함께 빼곡히 적혀있었고 발라드, 인디, 팝송, J-POP, 캐럴 등 분야도 나눠져 있었다. 오히려 선택지가 넓어지니 더 고르기가 힘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리스트가 적힌 페이지를 무작위로 선택한 다음, 계속 눈을 감은 채로 그중에서 한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앨범 이름이 아이 멧 유 웬 아이 워즈 에이틴(I met you when i was 18)이네?"

"느낌 있다. 무슨 곡 들을래?"

"그래도 타이틀곡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타이틀곡이 두 개야. 하나 골라봐."

"그럼 지금 비 오니까 <Paris in the Rain> 듣자."


우리는 앞에 놓인 헤드셋을 끼고 눈빛을 주고받았다. 나는 슬며시 엘피를 꺼내 플레이어 위에 놓고 <Paris in the Rain> 트랙에 맞춰 바늘을 놓았다. 엘피가 뱅글뱅글 돌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노래가 흘러나왔다. 음악에는 문외한이라 그 노래가 왜 좋았는지에 대해 전문 용어를 곁들여 설명하긴 힘들었다. 그 곡을 들었을 때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는 비가 내리고 있는 밤의 에펠탑이었다. 야경 속 각자의 길을 향해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들과 빛나는 에펠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경계에 마치 유령이 된 것처럼 공중에 떠서 그들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옆에서 음악을 듣고 있던 너도 같은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노래가 끝나고 우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파리에도 비가 올까?" 먼저 네가 말했다.

"왔으면 좋겠다."

"왜?"

"그래야 이 곡을 듣는 내 기분이 완성될 거 같아."


그 뒤로 우리는 비가 올 때면 종종 <Paris in the Rain>을 재생한다. 더불어 파리의 날씨를 검색하기도 한다. 그러다 파리에도 비가 오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기도 한다. 어느새 우리는 그때 갔던 엘피바의 단골이 되었고 가지각색의 음악을 들으며 여러 분위기를 떠올리고 공유한다.

우린 곧 파리에 간다. 프랑스어를 공부하지 않기로 했다. 이름 모를 어려운 술을 발음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우리가 하기로 한 것은 비가 오는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고 <Paris in the Rain>을 듣는 일이다. 파리에 머무는 기간 동안 하루만이라도, 잠깐이라도 비가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