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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녹차 Jul 08. 2020

far****  

시선 1호

  




    전에 헤어졌는지 매번 손가락을 세어 보게 하는  남자친구. 그만큼 내가 누군가를 만나지 않은 시간이 오래되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은 시간이 오래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전 남자친구만큼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오래된  분명했다.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요즘 들어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생각이 난다. 한 일 년 전쯤부터 생각이 난 것 같다. 그보다 훨씬 전에는 생각이 아예 안 났고, 엊그제 헤어지고도 멀쩡한 나에게 친구들은 정말 괜찮냐고 물을 정도였다. 나는 정말로 괜찮았다.  그런 내가 꽤 마음에 들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괜찮다. 괜찮은데, 궁금해졌다. 이전에는 무슨 일을 하며 사는지 결혼을 했는지,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던 존재가 오늘은 결혼을 했을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런 게 궁금해졌다.





그냥 그렇게





  이미 지나쳤을 거다 그는. 그는 이미 나에 대해 그런 생각을 나보다 먼저 했을 거다. 나는 이제야 해 본다. 그래서 그에 대한 생각이 조금 강하게 들 때면, 마침 내가 노트북을 하고 있을 때면, 네이버 메일함을 뒤져 그가 보내온 메일을 찾아내곤 한다.

 오늘, 그가 아주 기쁜 마음으로 샀던 태블릿이 중고거래에 올려진 것을 발견했다. 우연히가 아닌 의도적으로 발견한 글이었다. 그와 내 중간고리는 아무것도 없어서 그의 소식을 알지 못했는데 단 하나 알고 있는 것이 그의 네이버 아이디였다.




  네이버 아이디가 보여준 하나의 게시글. 중고거래. 태블릿. 태블릿을 팔며 그가 적은 글은 그답게도 조금은 문학적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치만 해둬서 판다는 그 태블릿. 그가 그것을 샀을 때 꿨던 많은 꿈과 기대를 나는 봤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곧 하나의 글을 더 발견한다. 그의 블로그에 재작년에 게시된 글. 공무원 7급 홍보용 주소만 달랑 있는 게시글이었다. 블로그에 홍보용 게시글을 올리는 이벤트에 참여한 거였다. 혹시 7급을 준비하지 않을까했는데 그는 정말로 7급을 준비했나보다. 그의 결말을 알 길도 알 수도 없지만 왜일까 나는 좀 더 진지해졌다.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은 이게 아니었는데.

 그가 3개월 만에 붙은 9급을 3개월이 되기도 전에 그만뒀을 때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그가 살면서 받아온 인정은 7급에 있을 거라는 생각. 어찌 됐든 우리는 서로가 무얼 다시 준비하는지 알지 못 한 채 헤어졌었고 뒤늦게 나는 알게 되었다.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와 헤어진 후 연애를 하지 않았을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중고거래에 찍혀있는 그의 번호로 카톡 프로필을 보고 싶은 궁금증이 일순간 생겼다가 말았다. 그래서 뭐. 봐서 어쩌게. 나는 분명 그가 좋은 사람이었어도 그를 다시 만나지는 않을 거라고 여러 번 말한 적이 있다. 그러고보니 그 이유에 대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없다.

 






 삼 년을 만났지만 헤어지는 순간은 삼 분도 되지 않았다. 무덤덤했던 나에 비해 며칠을 슬퍼했던 우리 엄마. 그때의 나는 헤어진 상황의 감정을 다 미루어 둘 수밖에 없었고 외면했다. 그래서 내가 슬프고 화나고 그리운 감정을 미루어 둔 것인지, 안도하고 후련한 감정을 미루어둔 것인지 모르겠다. 후자가 내 행보와 가까웠을뿐. 그럼에도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이 궁금하다고 철없이 친구들한테 말할 때면 그가 생각난다. 그에게 내가 어떤 존재였을지에 대한 궁금함보다 그가 내게 어떤 존재였는지가 궁금하다.

 


 사실은, 우리가 서로 잘 되었을 때도 서로를 떠올릴 수 있을까. 생각이나 날까. 지금 공부를 하고 있는 당신은 나를 미워할 것 같다. 근데 그 미워하는 감정이 치사한 감정일 것 같아서. 우리가 서로를 응원하며 헤어진 때를 떠오르게 한다. 당신은 늘 나의 예상 안에 있던 사람이었다. 오만한 생각일지라도 예상은 맞을 수밖에 없다. 삼 년 전의 당신밖에 모르는 나에게는 이 예상의 근거는 우리가 만난 삼 년이니깐. 그리고 이렇게 예상되는 그가 모두 빗나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가 나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살고 있기를 바란다. 나를 오래오래 당신의 오만한 생각들로 예상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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