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일기
글을 읽고 쓰는 것 관련하여 나에게 전범이 되어주셨던 서경식 작가가 며칠 전 세상을 떠나셨다. 서경식 작가는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평생 디아스포라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글을 쓰고 입장을 발표하고 강연을 했다. 7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예전에 회사에서 독서 동아리에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춘천에 있는 김유정 문학관에 탐방을 간적이 있다. 함께 춘천을 찾았던 동아리 회원 중에 어떤 팀장님이 <나의 서양미술 순례> 책을 소개하신 적이 있는데 그게 내가 서경식 작가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첫 걸음이었다. 2012년 상반기는 서경식 작가의 모든 책을 읽으며 보냈는데, 이 사람처럼 글을 잘 쓰고 싶다라거나 이 사람처럼 예술과 사회와 인간 스스로에 깊은 고민을 기울여야겠다 라는 생각을 감히 하진 않았다. 다만, 자신의 생을 투과해서 서사를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이 글을 쓴다는 것의 방향이 되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다. 그게 2012년, 내가 스물 아홉 살 무렵이었다.
서경식 작가와 관련해서 나름대로의 많은 생각을 남겼지만 그 중 두 가지를 아래에 옮겨 둔다. 둘 다 누나와 함께 했던 <나와 누나의 서재>에서 나눈 생각인데, 하나는 2021년 2월에 정리한 것, 또 하나는 2017년 7월에 정리한 생각이다. 다시 읽어보아도 서경식 작가를 존경으로 대하는 나의 태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경식 작가님의 명복을 빈다.
[나누서2021] 2월 '읽고 쓰기' - '나..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누나에게,
2011년 3월 어느 날 저는 늦은 밤까지 조선일보사 뒤에 위치한 모 카페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창 서울 시내의 공공미술 작품을 탐방하고 글을 쓰던 무렵이었는데 무엇에 홀렸는지 글을 모아 책을 내겠다고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던 무렵이었어요. 50개 정도 크고 작은 출판사에 투고를 했던가 …… 작은 규모의 어느 신생 출판사와 연락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다소 긍정적인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그 날이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두 번째 미팅이었죠. 사실 세 번째 미팅은 없었답니다. 그 미팅이란, 출판사 내부 논의 결과 책을 내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저에게 통보하려 만난 것이었죠. 이대로 작가가 되는 것인가? 들떴던 마음이 갑자기 차갑게 식었고, 내게 이별 통보(?)를 전했던 출판사 직원이 먼저 자리를 떠난 뒤에도 카페에 앉아 멍하니 있었던 3월 어느 날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읽고 쓰는 것의 의미랄까 혹은 목표가 다분히 책을 출판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던 무렵입니다. 사실 책을 출판하고 난 뒤에는 무엇이 될 것인가? 그것을 깊게 생각해 본 편은 아니에요. 전업 작가로 변신하겠다는 마음보다는, 이대로 평범한 직장인으로만 머무르지 않겠다, 뭐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모아진 결과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그런 시도가 조금 빛을 보는 것 같다가 무산되고 나니 …… 어차피 책을 낼 것도 아니라면 읽고 쓰는 것을 왜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펜을 들어 뭔가를 쓴다는 것도, 책을 집어 읽는다는 것을 잠시 멈추고 하릴없이 일상을 보내던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읽고 쓰는 삶의 거대한 공백기라고 할까요.
그런 공백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것이 서경식 작가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 입니다. 이 책은 여러 의미로 내게 많은 충격과 울림을 주었고, 이 책을 계기로 서경식 작가의 열렬한 팬이 되었지만 (지금도 단연 제게는 최고의 작가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왜 읽고 써야 하는지? 저만의 답을 찾아 나설 수 있게 한, 일종의 시발점이 된 책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해보면, 읽고 쓰는 것은 꼭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 전업 작가만의 전유물은 아닌 듯 해요. 누구에게나 열려 있되, 꼭 그 목적이 작가가 되기 위함은 아닐 겁니다. 읽고 쓰는 것, 크게 봤을 때 뭔가를 보고 접하고 그 흡수한 것을 나만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수단이자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제목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 순례라 …… 경건한 마음이 우선 들 법하죠. 작가의 문체가 경건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분이 미술에 조예가 무척 깊다거나 학자로서 전공했다거나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 책을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같은 부류의 책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서경식 작가는 195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로 와세다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 이력 때문인지 예술가보다는 사상가 내지 교양인에 가까운 인상입니다. 그의 두 형은 - 리쓰메이칸 대학 교수인 서승과 인권운동가인 서준식 – 재일교포 간첩으로 간주되어 근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찍 돌아 가셨고 …… 이런 상황에서 누이와 함께 ‘도망치듯’ 유럽으로 떠난 것이 그의 서양미술 순례의 출발입니다. 이른 1980년대, 그의 나이 30대 초반의 일입니다.
작가는 프랑스, 벨기에,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오랜 기간 체류하며 여러 작품에 대한 감상을 글로 남겼는데, 그 중 열 한 편의 글을 골라 묶어 펴낸 것이 이 <나의 서양미술 순례> 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이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말하는 미술관이나 미술 작품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도 분명 있겠지만, 그 보다는 작가에 대해 겉잡을 수 없는 관심과 호기심이 생기게 된다는 점입니다. 10년 전 이 책을 처음 읽고 나서 저는 “미술에 대해 말하는 것 같지만 결국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고 메모를 남기기도 했는데, 여전히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답니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심리를 순례하는 책입니다.
작가는 미술 작품을 보며 끊임없이 그것을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연관지어 시선을 안으로 거두고 맙니다. 모딜리아니의 <쑤띤 초상>을 보고 누이와 어머니를 떠올리고, 미켈란젤로의 <반항하는 노예>를 보며 영어(囹圄)의 몸이 된 두 형을 생각하고, 삐까소의 <게르니까>를 보고 1980년대 후반 한국의 치안정국을, 그 속에서 51일간에 걸쳐 단식투쟁을 한 형을 생각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작가가 작품에 대해 더 정밀하게 묘사하지 않아도, 작품의 미술사적 의미를 더 풍부하게 소개해주지 않아도 저는 괜찮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미술에 대해 더 알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니라는 결론마저 내렸습니다. 그건 묘한 뫼비우스의 띠였습니다. 작가가 미술 작품을 보며 더 많은 자신의 생각을 들려줄수록, 독자인 저는 작가에 대해 더 궁금해졌고 이윽고 그런 작가가 소개하는 작품을 직접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이 2012년 …… 그 뒤로 10년 동안 저는 끊임없이 많은 텍스트를 읽고 또 많은 글을 썼습니다. 그것이 누군가에 더 많이 읽히고, 또 어딘가에 팔리길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저는 끊임없이 읽고 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읽고 쓰는 것을 일종의 직업으로 살아가는 누나와 달리 나에게는 그것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아무래도 없습니다. 그 답을 조심스럽게 말씀 드리면, “읽고 쓰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한 걸음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 이라는 생각입니다.
타인이 남긴 글을 읽으면 분명히 지평이 넓어지고 넓어진 지평 어딘가에는 제가 감응하는 지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것을 지향할 때 조금의 보람과 행복을 더 느끼는 유형의 사람인지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읽으며 느낀 것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다 보면 미처 정리되지 못한 채 헝클어진 것이 바로 잡히며 보다 명확하게 나 자신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읽고 쓰는 것은 서로 결합된 행위 같아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독립적으로 해 나갈 수 있지만 그것을 함께 할 때 비로소 완전하게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에 한 5년 전이던가요, 또 무슨 바람이 들었던지 독립잡지를 만들겠다고 해서 월간 <그런 사람>을 1년 정도 만들고 시중 서점에서 판매했던 적이 있죠. 제작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했기 때문에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1년만에 접었던 비운의 잡지입니다. 돌이켜보면 독립 잡지를 만들어 보겠다고 한 것도 서경식 작가의 끊임없는 영향 아니었나 싶어요. ‘아, 나는 읽고 쓰는 사람이다.’ 비록 읽고 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누구인지 계속 알아가기 위해 평생을 읽고 쓰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은 이 책에서부터 지금까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자의식을 느끼고 키워가는 수단이 직장일 수도 있고, 열렬한 운동일 수도 있고, 또 다양한 사람과의 교류일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텍스트와 결부된 유형이라는 사람임을 …… 인정해버린 듯 합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처음 읽은 것이 2012년 2월입니다. 지금은 2021년 2월, 10년의 시간이 흘렀네요. 2021년 서른 일곱 살의 나는 2012년 스물 여덟 살의 나보다 얼마나 더 나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요? 고백하자면 사실 저는 조금 자신이 없습니다. 나를 알아갈 수록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만 알게 됩니다.
나와 누나의 서재 - 06. 주홍색 (나의 서..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누나_ 동생은 주홍색과 어떤 추억이 있나요.
나_ 우리가 어떤 색을 접할 때 자연에서 그 색을 추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홍색은 자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색은 아닌 듯 합니다. 인공적인 색에 가깝기도 하고 저 역시 주홍색이 친숙하진 않습니다. 저희 남매가 아주 어렸을 때는 경기도 수원 아파트에 살았죠. 구조를 한 번 떠올려보면 가운데에 거실과 부엌이 연결되어 있었고 안방이 있었고 현관에 작은 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누나_ 그 작은 방이 우리 자는 방이었어요.
나_ 그게 우리 방이었나요. 그 작은 방 말고 방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부엌 쪽에 더 작은 방이 하나 또 있었는데 그 방에 들어가서 왼쪽을 바라보면 커다란 책장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책장 가장 하단에는 하늘색인지 회색인지 두꺼운 백과사전 전집이 있었죠. 10권 가량의 백과사전이었는데 아이들용이라 그런지 글씨도 크고 사진이 많았죠. 백과사전인지 과학책 시리즈였는지 가물가물 합니다. 누나와 제가 열심히 꺼내 읽었는데 읽고 다시 책장에 꽂아두지는 않고 옆에 쌓아두었다가 어머니께 종종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릴 적에 또 다른 전집이 있었습니다. 책 한 권에 이야기가 세 개씩 실려 있던 문학전집인데 혹시 기억나는지요.
누나_ 네 기억나요. 금색으로 된 문학전집이었죠.
나_ 표지가 반짝대던 문학전집이었죠. 국내작품은 아니고 주로 세계문학작품이 실려 있었는데 아동용 세계문학전집이어서 그런지 쉬운 문학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쉽다는 건 작품의 깊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동용으로 내용을 각색하고 축약했다는 의미입니다. 원본의 내용이 100이라면 20의 내용만 소개하거나 항상 권선징악으로 결론이 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세계문학전집에 어떤 작품들이 있었는가 하면 소공자, 소공녀, 걸리버 여행기, 정글북, 해저2만리 ...... 이런 작품들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컴퓨터가 발달하면서부터 조금씩 그런 전집 문화가 사라진 것 아닌가 싶어요.
누나_ 그런 건 아닌 듯 해요. 예전에는 책이 귀하던 시절이었는데,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어서 전집을 꼭 들이곤 했던 거죠. 지금도 저는 단행본으로 책을 많이 사지만 사실 아이들에게 단행본을 사주는 비율이 많지 않아요. 여전히 아이들 교육을 위해 대형출판사의 전집이 널리 쓰이고 있죠.
나_ 아 그렇군요. 제가 자라면서 전집 문화권에서 잠시 벗어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렇게 바뀌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전집 이야기를 계속 해보죠. 지금도 본가에 가면 아직도 갖고 있는 전집이 있는데 어느 출판사 것인지 역시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얀색 두꺼운 표지로 구성된 양장본 세트인데 아마 고등학생 논술 대비로 널리 팔렸던 전집으로 기억합니다. 마치 자녀를 서울대에 보내고 싶으면 이문열 삼국지를 읽으라고 해서 그 삼국지 10권 세트가 정말 인기가 높았던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겁니다. 이 전집을 누나가 고등학생일 때 샀으니 제가 중학생 때입니다. 그 전집은 앞서 이야기했던 아동용 세계문학전집과는 차원이 다르게 정말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원본이 100이라면 아동용 전집은 20의 내용을 담았다면 이 하얀색 양장본 전집은 한 80-90의 내용이 담겼죠. 수록된 작품들도 하나같이 어려웠습니다. 스탕달의 <적과 흑>, 펄벅의 <대지> ...... 제목만 봐도 <해저2만리>와는 상당히 다르죠. 그 전집에 수록된 작품이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다시 찾아보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어떤 출판사에서 발간했는지 결국은 못 찾겠더라고요.
누나_ 표지나 전집 제목을 바꿔서 다시 발간했을 수도 있어요.
나_ 그렇군요. 그런데 그 전집 중에 <주홍글씨> 작품이 있었습니다. 1850년에 출판된 미국의 나다니엘 호손의 첫번째 장편 소설이니까 150년 전의 고전작품입니다. 얼마 전 찾아보니, 청교도주의의 인습적 도덕사회에서 애정도 없이 늙은 학자와 결혼한 헤스터 프린이 뉴잉글랜드라는 신세계에서 젊은 목사와 불륜의 관계로 인해 냉혹한 제재를 받으며 살아나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윤리소설이라고 소개하고 있군요. 그런데 이 <주홍글씨> 책이 책장에 꽂혀 있는 것만 보고 정작 읽지는 않았습니다. 책을 읽지는 않고 제목과 뒷표지에 있는 책 소개만 읽었는데 내 자신이 뭔가 가득 채워진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서점에 가서 책을 굳이 사지 않고 서서 책 날개에 쓰여진 책 소개만 읽어도 책을 다 읽은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죠. 그런 비슷한 기분이 그 당시에도 들었습니다. 책을 읽진 않았지만 꼭 읽은 것만 같은, 읽었다는 행세를 하고 싶은 그런 감정이었죠. 지금 돌이켜보니 그런 제 모습이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했던 것이 책에 담긴 문학적, 예술적 가치가 아니라 책을 읽는 행위 혹은 책을 읽는 내 모습 아니었나 싶었거든요. 책이 아니라 나 자신에 초점을 맞춘 셈이죠.
누나_ 괜찮아요. 최근 방영하는 어떤 방송을 보니 김영하 작가도 <토지> 안 읽었다고 하면서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거라고 말하는걸요. (웃음)
나_ ‘좋은 글이네요,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 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종이로 출력해서 보면 전혀 긴 분량의 글이 아닌데, 요즘 대부분 인터넷으로 글을 접하다 보니 화면으로 보면 길어 보이기 때문에 읽지 않는 세태를 패러디한 유머입니다. 저에게는 <주홍글씨>가 약간 그런 책이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떠올렸을 때 나는 그걸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그것인지 혹은 그것에서 연상되는 정서를 좋아하는 것인지, 그것을 좋아하는 내 모습을 좋아하는 것인지 ...... 사실 잘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속내였습니다.
누나_ 어떻게 보면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체 하는 것에서 오는 부끄러운 마음 같은 거네요. 동생에게 그런 주홍색의 느낌으로 소개하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아마추어 미술 감상자가 전하는 절절한 자기 고백”
나_ 저에게 주홍색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지 못하다는 일종의 고백이고 오늘 소개하고 싶은 책은 서경식 작가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입니다. 제가 서경식 작가를 소개하며 드는 감정은 가수 박정현씨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는 박정현씨를 아주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2011년 <나는가수다>라는 음악 프로그램에 나오고 난 뒤 박정현씨는 대중적으로 정말 유명해졌죠. 물론 그 이전에도 유명했지만 이제는 만인의 연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서경식 작가도 그러합니다. 제가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처음 읽었던 것이 2010년인데 그때 이후 지금은 이 분의 인지도도 정말 높아지고 서경식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참 많아진 걸 느낍니다.
누나_ 동생이 저에게 이 책을 처음 추천해주었던 것이 아마 2013년 무렵이었을 거에요. 이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잖아요. 그래서 이력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지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고, 책이 그렇게까지 유명한 편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나_ 서경식 작가의 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약간은 남달리 보일 수 있죠. 혹은 책을 읽으며 그런 걸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까 누나가 특이한 이력을 이야기했죠. 이 분의 이력을 먼저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경식은 재일조선인 2세입니다. 서경식 작가의 조부께서 1928년 당시 대 여섯 살 이던 작가의 아버지를 데리고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 옵니다. 서경식 작가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죠. 그런데 일제강점기만해도 비록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국가이긴 하지만 한반도에 존재했던 국가는 바로 조선이었습니다. 남한이나 북한이라는 개념이 아직 없었죠. 일제강점기가 끝나자 다시 조선이라는 국가가 부활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분단이 되었고 전쟁을 겪으며 분단 체제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게 됩니다. 그 결과 조선이라는 국가가 영영 사라져 버렸죠. 일본에 남아있던 조선의 후예들, 망국의 후예들인 재일조선인들은 국적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일본인으로 귀화하거나 북한을 선택하거나 혹은 한국 국적을 선택해야 했죠. 나의 뿌리는 조선인데 더 이상 조선의 국적을 택할 수 없다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재일조선인들을 일종의 유목민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서경식 작가는 바로 이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앞장서서 하는 분입니다. 어느 한 국가에 뿌리를 내리고 귀속된 국민이 아니라 이 나라도 아니고 저 나라도 아니고 계속 부유하며 떠돌아다니는 난민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이 단어는 바빌론 유수 이후에 팔레스타인에서 강제적으로 떠나 전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녀야 했던 유대인들의 삶에서 기인합니다. 이산(離散)이라는 그리스어가 기원이죠. 한 마디로 서경식 작가는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로 예술, 문학, 인문학, 혹은 사회학까지 접근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네요. 1951년생이니 어느덧 60을 넘어 70에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할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이 분이 오늘의 나와 같은 나이인 서른 세 살 때 누이와 함께 유럽을 기행하며 보았던 미술작품을 자신의 관점으로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때가 1983년입니다.
누나_ 제가 1983년생인데요 (웃음) 저는 이 책이 이 분의 데뷔작으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나_ 제가 알기로는 <나의 서양미술 순례>가 거의 데뷔작에 해당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1991년에 출판되었고 한국에는 그 이듬해인 1992년 창비에서 펴냈습니다. 언제 이 책을 소개할까 고민이 될 정도로 저는 서경식 작가를 정말 좋아합니다. 이 작가의 문체, 사유, 어휘 모든 것들을 참 존경하는 마음까지 갖고 있습니다. 문체하니까 생각나는데 언젠가 누나가 저에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이 분의 책이 대부분 창비에서 발간되었는데 제가 이 작가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누나가 싫어하는 표현을 줄곧 쓰자 누나가 잔소리를 했던 적이 있죠. 프리모 레비가 아니라 쁘리모 레비, 톨스토이가 아니라 똘스또이 등 ......
누나_ 이 작가의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출판사의 표기 원칙이죠. 제가 잔소리를 했던 이유는 표준 외래어표기법에 맞지 않아서였어요. 사람들이 어떤 단어를 접했는데 그 단어를 잘 몰랐을 때 사전을 찾아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 단어가 표준어법에 맞지 않게 표현되어 있으면 검색이 어려울 수 밖에 없어요. 저는 번역자의 입장이다 보니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한 거죠. 원어 발음에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 독자가 혼란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나_ 표준어법은 저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흔히 컨텐츠라고 쓰지만 사실은 콘텐츠라는 점, 워크샵이 아니고 워크숍이고, 리더쉽이 아니고 리더십으로 표기하자고 주변에 말하고 있기도 하죠. (웃음) 작가 소개로 돌아가보죠. 서경식 작가의 가족사도 상당히 기구합니다. 비록 투철한 독립운동가의 후예는 아니지만 큰 형과 작은 형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간 뒤 반공사상에 휩쓸려 감옥에 투옥하게 됩니다. 거의 20년 가까이 옥중생활을 겪게 되죠. 그 일을 계기로 작가의 어머니가 십 여 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고 가다 자궁암으로 1980년 돌아가시고 3년 뒤 1983년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서른 세 살의 서경식 작가는 부모님이 모두 작고하시고 두 형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있는 상태였죠. 국가적으로도 그랬지만 가족적으로도 비극을 겪으면서 마음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았고 유럽행을 결심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벨기에, 프랑스, 영국 등을 돌아다니죠. 서경식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일본에서 대학 강단에 서고 있지만 역시 미술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일종의 아마추어 미술 감상기에 가까운 책입니다. 미술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엄청난 심미안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미술 작품을 마주했을 때 작가의 경험에 비추어 생겨나는 심상을 담담하고 슬픈 어조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어조가 너무나도 흡입력 있습니다.
누나_ 저는 동생이 처음 이 책을 소개했을 때 썩 끌리진 않았어요. 그 이전에 미술 에세이를 상당히 많이 읽었던 편인데 한 동안은 또 찾지 않게 되더라고요. 너무 좋고 예쁘고 감상적인 이야기들에 약간 지쳤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한 동안 미술 에세이를 멀리하고 있었는데, 이 책의 제목을 보니 예전에 읽던 그런 에세이들이 연상되더라고요. 동생에게 추천 받았으니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단 분량이 짧아서 읽기 시작했죠. 어떻게 보면 개인사가 많이 담긴 책이고 참 감상적이라고 느껴지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내쳐지지 않더라고요. 이 작가의 절절한 마음이 너무나 와 닿았거든요. 이 문장이 겉으로만 쓰여진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심장에서 글을 써 내려가는 펜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거쳤을지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다른 미술 에세이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책이었어요.
나_ 서경식 작가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분이 진중권 작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중권 작가는 미학, 인문학에 알고 있는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날줄과 씨줄을 엮듯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폭넓게 전개하는 분입니다. 전문가죠. 반면 서경식 작가는 미술작품은 하나의 소재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미술작품을 소재로 자신의 삶과 생각을 전개해나가는 겁니다. 미술작품이 아니라 서경식 작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누나가 이야기한 절절한 울림이 느껴졌고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어떤 미술작품이 생각나기보다 이 작가만 제 가슴 속에 남더군요.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계기로 서경식 작가의 모든 책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 분이 제 인생 작가가 되었습니다.
누나_ 저도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책을 읽고 났을 때 절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어떤 구절들이 생각나고, 그 그림을 다시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보다도 이 작가가 누구며 무엇이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저는 같은 작가의 책을 두루 찾아보는 편은 아니에요.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책을 묶어 읽는 편이거든요. 진짜 오랜만에 같은 작가의 책을 찾아서 여러 권 읽었던 그런 작가입니다.
“예술 앞에서의 진실된 자세”
나_ 오늘 제가 떠올린 주홍색은 부끄러운 것이라고 이야기 했었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것이 2010년이니까 7년 전이네요.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도 미술을 좋아하고 싶다, 좋아해야 하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표현이 약간 미묘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 작품을 정말 좋아해서 미술이 나의 삶이 된 그것과는 다른 감정입니다. 예전에 누나가 들려주었던 경험인데요. 누나는 아주 어릴 적 샤갈 전시회를 찾았다가 거기서 푸른 빛이 가득한 샤갈의 그림에서 받았던 인상을 계기로 지금까지 샤갈과 미술을 좋아하게 되었잖아요. 사실 저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이 책을 계기로 나도 미술을 알아가고 싶다는 감정이 시작된 셈입니다. 그런데 내가 미술작품을 많이 알고 싶다는 감정을 곰곰이 뜯어보니 내가 서경식 작가처럼 되고 싶다는 치기 어린 감정이었습니다. 이 작가를 흉내 내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웠습니다.
대학 3학년생이 되었을 뿐인 스무살 때에 형들의 투옥사건을 만난 나에게는, 형들을 구출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하는 것이 그 후의 ‘생활’로 되었다. 그것은 좀더 보편적인 대의(大義)에 이어지는 길이기도 할 터이었다. 허나 그것은 또한 스스로의 무력함과 왜소함을 알게 하는 나날이기도 했다. 나는 단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이 운명의 형태를 속속들이 지켜보도록 스스로에게 명령해왔을 따름이지만, 그 과정에서 역사와 인간, 민족과 개인, 고향과 유망(流亡) 그리고 고통과 죽음 같은 것들에 대해서 거듭거듭 많은 것을 느끼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특히나 죽음이란, 그것이 내 자신의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언제나 내 몸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한 느낌이나 생각은 모름지기 명확한 언어로 표현되기에는 너무도 불분명한 ‘응어리’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럽을 여행하면서 온갖 종류의 서양미술에 접하고 그것들과 마음속에서 대화를 거듭하는 가운데, 내 속에 있던 불분명한 ‘응어리’가 조금씩 표현의 형상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나의 서양미술 순례>, p.208-209, 서경식, 창비
누나_ 동생이 쓰는 글을 보면 서경식 작가 문체와 너무 비슷하다고 제가 몇 번 이야기도 했죠.
나_ 네. 제가 미술에 대한 글을 썼을 때 누나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죠. 여하튼 2010년에 이 책을 읽고 나서 서울시 곳곳에 있는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도 돌아보고 서울 시내 곳곳의 미술관도 참 많이 다녀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누군가가 저에게 해준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제가 미술 전시회 다니는 것을 참 좋아하지만 정작 미술 작품을 굉장히 짧게 스치듯 감상한다는 겁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어떤 작품 앞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작품의 포로가 된 경험이 거의 없어요. 짧게 감상하고 또 돌아다니면서 흘깃 보고 그런 식으로 짧게 여러 번 그림을 보곤 합니다.
누나_ 결국 동생도 동생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나_ 결국 미술을 통해 나 자신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지난 7년을 돌아보니 나는 줄곧 주변에 미술을 좋아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슬램덩크>에서 채소연이 강백호에게 농구 좋아하냐고 물어봤을 때 강백호가 농구를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는데 사실은 농구보다는 채소연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나도 미술이 아니라 서경식 작가를 끊임없이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그래서 되돌아보니 내가 정말 좋아했던 것이 미술 그 자체인지. 미술을 좋아하는 나의 모습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나는 미술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때 느껴지는 일종의 부르주아 같은 감정이었는지, 어떤 것을 내가 좋아했던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어요.
누나_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성인들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로 그림책을 활용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어른이 되어서 잃어버린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주제와 관련된 그림책을 네다섯 권 선정해서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셈이죠.
나_ 어떻게 보면 상대방과 교감하는 소재로써 그림책을 활용한다는 거군요.
누나_ 네, 내가 이야기하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소재이기도 해요. 그런데 저도 동생과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정말 그림책을 좋아하는 건지, 혹은 그림책을 통해 어떤 이야기 소재를 찾는 것인지 고민했던 거죠. 그림책의 매력에 푹 빠진 건지 아니면 내가 말하고 싶은 글귀를 찾는 건지 말이죠. 그림책 커뮤니티에 가보면 그림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_ 그림책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이죠.
누나_ 네. 하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은 또 아니거든요.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긴 하는데 그 강도가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또 약한 것 아닌가, 이런 반성도 해보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을 바꿨어요. 사람마다 예술을 감상하는 방법이 다양한 것 같아요. 그 작품에 푹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감상자도 있고, 그 작품을 자신의 방법으로 소화해서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것에서 흥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죠. 저는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동생도 조금은 마음을 가볍게 가져도 좋을 것 같아요. 내가 너무 그림을 얄팍하게 좋아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림을 통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동생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해요.
나_ 누나 말을 듣고 보니 의심하지 않고 어쨌거나 계속 해 나가는 것이 신성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이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린다고 고백했지만 그림을 거짓으로 좋아한 것은 아니거든요. 그 앞에 마주했을 때 감동을 느꼈던 그림이 분명 있었습니다. 다만 한 시간 동안 그림의 포로가 되지 못했을 뿐이죠 (웃음) 저에게는 그런 작품 중 하나가 마네의 <올랭피아> 였습니다. 2015년 파리 여행 도중 오르세미술관을 찾았는데 직접 그림을 보니 압도적이더군요. 생각보다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파리 여행 중에 센 강을 걷다가 팔레 드 도쿄 바로 옆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에 들린 적이 있었어요. 마침 관람요금도 무료여서 가방을 맡기고 어느 큰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에 앙리 마티스의 엄청나게 큰 그림이 단 한 점 걸려 있었습니다. 마티스 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나요.
누나_ 여러 가지가 있죠. <춤>도 있고 ......
나_ 바로 그 <춤 La Dance>의 미완성 작품이 걸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이 내 시각을 압도했는데, 마치 원시시대의 사람들이 회전하며 춤을 추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습니다.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어요. 이게 정말 위대한 그림의 힘이라고 경탄했습니다. 내가 나중에 서경식 작가처럼 미술에 대한 글을 쓰게 된다면 이 그림을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제가 미술작품을 좋아했던 순간과 경험이 분명 있었고 내 자신에 대해 조금은 자신감을 가져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누나_ 너무 아는 척 하는 것만 아니라면, 약간의 허세도 다 필요한 것 같아요.
나_ 맞습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 같은 서경식 작가의 <소년의 눈물>을 추천합니다. 사실 이 분의 모든 책을 추천하고 싶지만 이 작가의 사유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보다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죠. <소년의 눈물>은 서경식 작가가 읽었던 책을 소개하는 책인데 유년기에 읽었던 책과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담담하게 전해줍니다. 슬플 이유가 없는 책인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딘가 또 슬퍼집니다. 슬픈 정서가 이 작가의 고유한 정체성인 것 같아요.
누나_ 기본적으로 자신의 뿌리 없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의 흔들리는 마음이 계속 엿보이는 것 같아요.
나_ 이런 생각도 문득 해봅니다. 누나가 저에게 너무 서경식 작가를 오마주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했는데, 기본적으로 아예 상극인 사람들끼리 서로 오마주 할 수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어느 정도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끌리는 것 같아요. 저도 제가 쓴 글이 이유 없이 슬프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몇 번 들었던 적이 있거든요. 무슨 글을 써도 하여튼 슬프대요 (웃음) 그 정서가 비슷하기 때문에 이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던 것 아닌가 합니다.
누나_ 저는 짧게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서경식 작가의 또 다른 책 중에 <나의 조선미술 순례> 라는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생각한 조선과 이 사람이 생각하는 조선이 너무 달랐거든요. 흔히 생각하는 조선은 곤룡포 입은 임금님이 등장하는 조선왕조를 떠올리기 마련인데요. 그런데 서경식 작가에게 조선은 지금의 대한민국과 북한으로 갈려진 바로 그 지점의 조선을 떠올리고 있는 거에요. 조선인들의 디아스포라 삶이 서경식 작가의 조선을 관통하는 키워드죠.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참 충격적이었어요. 이 작가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세계관이 폭넓어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_ 일종의 다짐을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해보겠습니다. 황정은이라는 젊은 작가가 있습니다. 2014년에 쓴 <계속해보겠습니다> 소설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한 후회, 부끄러움, 두려움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겁니다. 더구나 그 두려운 감정의 대상이 취미 영역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것이 직업의 영역이면 더 큰 고민이 될 법합니다. 그렇지만 이 <계속해보겠습니다> 소설 제목처럼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일단 계속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닌가 싶어요. 자, 제게 주홍색은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자각 때문에 부끄러웠고, 나에게 좋아해볼 수 있는 것을 알려주고 또 좋아하는 것이 정말 그것 맞는지 물어보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소개하고 같이 읽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