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회사생활을 위한 몇 가지 팁
'좋은 상사의 몇 가지 요건'이란 글이 예기치 않게 널리 공유되어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제가 일하며 느낀 부분이 많은 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조금 주제넘긴 하지만 표제와 같이 부하직원 입장에서 글을 한번 더 써 보았습니다. 부디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대리들에겐 유용한 글이 되길 바라며, 부장/사장님들께는 부하직원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 이전 글과 같이 상사를 시니어;Senior, 부하를 주니어;Junior라 칭했습니다. 글을 써놓고 보니 자꾸 상사, 부하하니 어감이 좋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새로 입사하여 일이 주어졌을 때, 주니어는 인정받고 싶은 열망에 종종 완벽한 결과물을 보여주고자 노력합니다. 물론 완벽함을 추구하는 자세는 좋지만, 팀으로 일을 할 때에는 막내의 결과물이 최종 결과물이 아님을 인지해야 합니다. 시니어는 주니어에게 일을 시킬 때, 100% 완벽한 수준의 결과물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가끔 출장보고서 한 장짜리를 작성하라고 시켰는데 하루 종일 붙잡고 씨름하는 주니어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작성한다 한들, 시니어 눈을 100% 만족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간단한 걸 주문받았을 때는 쉽게 쉽게 타자가는 대로 그야말로 ‘초안;Draft’을 만들어 보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속함이 중요한 이유는 ‘방향;Direction’을 잡기 위한 이유도 있습니다. 아무리 잘 만든 크루즈선이라도 산으로 간다면 쓸모가 없어질 것입니다. 보고할 사람은 시니어기 때문에 시니어가 원하는 방향대로 문서를 작성해야 하며, 이는 초안 작성 후에 검토되어야 할 사항입니다. 하루 종일 문법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완벽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들고 갔는데 시니어의 반응이 신통치 않음을 종종 느꼈을 것입니다. 이건 '완성도'의 문제가 아닌 ‘방향’의 문제입니다.
주니어의 행동에는 시니어가 책임을 집니다. 따라서 보고는 필수적인 사항인데요, 보고를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해 나가면 팀원으로서 아웃입니다. 물론 시니어에 따라 얼마나 세세한 사항까지 보고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레벨은 개인에 따라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나중에 책임질 수 없는 사항을 보고 없이 혼자 치고 나가면 같이 일하기 어렵습니다. ‘보고’는 곧 책임이 ‘보고자’에게 간다는 뜻입니다.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하다가 나중에 문제를 '빵!' 터뜨려서 팀 전체를 곤경에 빠뜨리면 곤란합니다. 주니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생각보다 많이 없습니다.
주식시장에서 애널리스트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불확실성;uncertainty'입니다. 실제로 공시를 통해 기업공개를 하는 상장된 대기업도 종종 실적을 꽁꽁 숨겨놨다 한 분기에 조단 위 적자를 발표합니다. 이럴 경우 이 기업 주식에 '적극 매수' 의견을 보였던 애널리스트들은 욕을 한 바가지 먹곤 합니다. 물론 향후 그 회사 주식은 신뢰를 잃고 저평가될 수밖에 없겠지요.
시니어가 제일 싫어하는 주니어도 바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주니어입니다. 보고도 없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주니어는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더라도 부담스러운 존재밖에 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불만은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불만은 ‘글쓰기’입니다. 물론 한 반에 70명이 같이 공부한 저의 어린 시절엔 불가능했겠지만, 이젠 좀 글쓰기 교육을 학교에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수능이라는 객관식 문제에 익숙한 대부분의 신입사원은 보고서를 작성할 때 큰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나마 문과 출신은 학교 다닐 때 리포트를 쓴 경험이 풍부해 나은 편이지만, 이과 출신은 대학 때도 연습문제 풀이 등으로 리포트를 대체하는 게 일반적이므로 보고서 작성은 큰 산입니다.
어디서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보고서 초안을 작성해서 가져가면 빨간 플러스펜으로 죽죽 낙서를 해대는 고참 때문에 나의 마음도 죽죽 금이 가곤 하지요. 사실 ‘미생’에서도 등장하는 ‘문장 줄이기’ 연습은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신공(?)입니다. 다음의 예를 보시죠.
상기 보고 내용은 잘 쓰인 글 입니다만, 보고서로 사용하기엔 적합하지 않습니다. 보고서를 만드는 목적이 팀장이나 사장님께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결재서류를 검토해야 하는 '보고받는 사람'에 입장에선 조금 더 축약된 형태의 문장이 요구됩니다. 상기 보고 내용을 ‘문장 줄이기’를 통해 보고서에 적합하게 다듬으면 다음과 같이 축약됩니다.
중동항로 관련 이슈
라마단(2012.7.20~12.8.18) 종료에 따라 중동 항로 물동량 및 소석률 회복이 예상됨.
IRA가 7월 중 적용 예정이던 PSS(USD 300/TEU)를 유예함.
(제가 쓴 게 아닙니다. 이것도 출처는 '미생'입니다.)
이처럼 ‘문장 줄이기’ 연습은 스스로 하기 쉽지 않습니다. 좋은 상사를 만난다면 더없이 좋은 기회겠지만, 실제로 그럴 확률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코트라 글로벌 윈도우를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www.globalwindow.org) KOTRA는 해외진출 아국 기업을 위해 정보의 수집 및 전파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해외시장 뉴스를 보고서 형식으로 올려 놓기에 보고서 어법에 맞는 문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괜히 서점 가서 보고서 작성에 대해 삼척동자도 알만한 당연한 내용만 적힌 책을 사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느니, 글로벌 윈도우가서 매일 조금씩 필사를 하거나 한두 개의 Article을 읽는 편이 훨씬 나은 방법으로 보입니다. 가성비 짱입니다.
회사엔 나보다 머리 좋은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쉽게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회사는 학교완 다르게 하나의 능력으로 줄 세우긴 하지 않습니다. 이때 나의 '장기;Strong point'를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내가 좋아하는 것과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입사해서 엑셀이란 프로그램이 너무 재미있어서 나의 장기로 삼고 싶습니다. 헌데 같이 입사한 옆자리 동기를 보니 이 친구는 과학고를 졸업하고 대학 때 프로그래밍으로 게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나는 함수 배우기도 벅찬데, 이 친구는 매크로에 VBA까지 척척 이용합니다. 이럴 경우 엑셀을 나의 장기로 삼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헌데 또 가만히 보니 팀 내에서 작성하는 PPT는 대부분 MS에서 제공하는 간단 기능들만 사용하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블로그 잉여짓 한다고 만졌던 포토샵이랑 일러스트레이터가 문득 생각납니다. 고참이 PPT 하나 만들어 보라고 했을 때 간단한 포토샵 기능 몇 가지를 넣었더니 어떻게 이런 자연스러운 비주얼을 보여주냐고 감탄을 하며 팀장님께 보고를 합니다. 이럴 경우엔 얼른 포토샵 및 일러를 내 '장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술 잘 마시는 것, 골프 잘 치는 것도 장기가 될 수 있는 게 회사입니다. 내가 사내에서 다른 사람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잘 한번 찾아봅시다.
일을 하다 보면 상사나 유관부서와 분쟁이 종종 생기기도 합니다. 사람이다 보니 일을 하다 보면 정말 열 받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이런 경우 감정을 컨트롤하고 차근차근 일을 풀어나가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자칫 열 받을 때마다 성격을 드러내면 '싸움닭'이란 이미지만 낙인찍힐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싸움닭인 주니어와 일하고 싶어 하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고분고분히 말만 잘 듣는 주니어라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정말 감정적으로 폭발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잠시만 객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타자화가 필요합니다. 즉, 상황을 '객관적;objective view'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랑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은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바로 와서 자초지종을 물어볼 수도 있고, 분쟁이 끝난 후 따로 불러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이 때 50:50 정도로 평가될 분쟁이라면 굳이 크게 만들어 득 될게 없습니다. 누가 봐도 억울한 상황이 아니라면 앞서 언급한 싸움닭이란 이미지만 낙인 될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8:2 정도의 우세한 상황이라면 한 번쯤 질러볼 필요도 있습니다. 예컨대 상대가 욕을 했다던지, 성희롱적 발언을 했다던지 그런 류의 상황입니다. 이럴 경우 고분고분한 주니어가 되어 계속 들어준다면 이후엔 계속되는 억울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끊어줄 땐 끊어 주는 것도 능력입니다.
A: "아까 너네 고참이랑 왜 싸웠어?"
B: "아니 저보고 미친놈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아무리 잘못을 했기로서니 다 배울만큼 배운 성인인데, 미친놈은 좀 너무하잖아요."
A: "대들만 했네~"
뭐 예를 들자면 이런 상황...
회사에 입사하면 같이 입사한 동기들, 팀내 선배들, 유관부서 선배들, 이어서 갑을관계의 외부인사들까지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게 됩니다. 대부분의 주니어들은 이 수많은 인간관계에 어려워하며 고충을 토로합니다. 저는 이때 모두에게 사랑받을 생각을 말라고 조언합니다. 즉, '미움 받을 용기'를 갖으란 말이죠. 아들러의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대화체의 이 책이 괜히 베스트셀러가 된 건 아닙니다.
경험적으로 10명의 집단이 있다치며 일단 2-3명은 저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1-2명은 저를 싫어할 수도 있지요. 그렇담 나머지 5-7명은?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나밖에 없습니다. 회사는 바쁩니다. 내 행동 하나하나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맙시다. 그러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지요.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미움 받을 용기' 중에서,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저)
상기 언급한 똑똑한 주니어의 몇 가지 특징은, 앞서 좋은 상사의 글과 같이 개인적인 경험에서 터득한 장돌뱅이 지식입니다. 주니어에게 필요한 '몇 가지' 요건만 나열했으므로, 혹시 빠진 사항이나 틀린 부분이 있다면 댓글을 통해 언제든지 조언 바랍니다. 필자는 아직 십 년도 회사생활을 하지 않았으니 그다지 경험 많은 선배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기억들을 조각조각 모아, 혹시 도움이 될까 하고 글을 올려봅니다. 이런 글을 쓰기엔 조금 주제 넘는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의 제 생각을 정리하고 나중에 '좋은 상사'가 되기 위해 이 글을 작성했다는 변명을 또 한번 해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