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택한 직장생활을 위한 몇가지 팁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좋은 상사를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학교 다닐때 아무리 좋은 선생님을 만나도 1년이면 헤어지는데, 보통 한 팀에서 3-5년 있는다 치고, 관계가 좋으면 아마도 회사생활 끝날 때까지 일을 같이 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누적시간으로 따져보면 부부보다 인생의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매일 직속고참 욕만 하는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조심해야 합니다.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그런 분들은 나중에 십중팔구 욕하던 상사같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필자의 지난 국내외 8년간의 직장생활 경험을 토대로 좋은 상사의 요건은 어떤 것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봅시다. 물론 저도 슬슬 중간관리자가 되니 저를 돌아보는 차원에서 쓴 글임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 아래 글에선 상사를 시니어;Senior, 부하를 주니어;Junior라 칭하기로 했습니다. 글을 써놓고 보니 자꾸 상사, 부하 하니 어감이 좋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시니어의 전투력은 무조건 중요합니다. 이 전투력은 당연히 치고 박는 싸움은 아니고, 임원이든 타 팀이든 주니어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전투력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 팀웍입니다. 다른 말로 '신뢰'. 앞뒤 전후 관계를 따지지 않아도 내 주니어가 합리적 행동을 했을 것이란 확신이 들어야 전투력도 발휘됩니다.
일을 하다 보면 타팀/타사와 싸울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내가 잘못을 하기도 하고, 그들이 잘못을 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일하다 싸운다는 것 자체가 팀의 성과를 위해서 노력하다 발생한 일인 건 인정해야 합니다. 시니어의 입장에서 주니어가 타 팀과 싸우고 있다고 하면, 당연히 주니어의 편에 서서 싸우던 중재를 하든 나서줘야 합니다.
페르시아 속담에 ‘적의 적은 나의 친구’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곧 공동의 적이 생기면 친구가 된다는 말인데, 싸울 때 같이 싸워주면 팀웍은 몇 배로 상승합니다. 전투력이 쎈 시니어는 이럴 때 위력을 발휘하지요. 하지만 이 때 시니어가 타 팀이나 타사 앞에서 주니어의 잘못을 지적하고“니가 잘못했네~”라고 한다면, 이런 시니어는 그냥 판사나 하면 됩니다. 시니어로선 불합격입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치는 배타주의나 파벌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사장님 입장에선 직원들이 끼리끼리 몰려다니면 안 좋아 보이겠지만, 시니어에겐 더 나은 성과를 위해선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덕목입니다. 미생에서 오차장이 술 마시고 다른 팀장이 장그래를 갈구자 "내 새끼 왜건드려!!"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장그래는 밤에 자기 전까지 오차장의 그 한마디, "내새끼"를 생각하며 흐뭇해 합니다. 그 다음 날부터 오차장 밑에서 뭔가 잘해보려고 하는 맘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회사는 공립학교도 아니고 복지국가도 아닙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 어느 정도의 배타성은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니어는 주니어가 '내새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건 사실 상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도 합니다. 흔히 최악의 상사를 '멍부'로 분류하는데, 이는'멍청하고 부지런한'의 준말입니다. 최고의 상사는? 당연히 '똑게'입니다. 즉 '똑똑하고게으른!'.
일단 상사가 너무 부지런해 버리면 주니어들은 숨이 턱턱 막혀 옵니다. 주니어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 주니어가 할 일을 하나하나 기록하며 일일이 체크하고. 이때 똑똑하지 않은 상사는 업무와 방향이 다른 삽질도 종종 강요하기도 합니다.
물론 업무시간엔 시니어든 주니어든 부지런히 일해야겠지만, 커피한잔 때리면서 큰 그림을 생각하는 것도 시니어에겐 중요한 덕목입니다. 숲을 보고 주니어에게 길을 알려줘야지, 자꾸 둘 다 나무의 나이테만 세고 있으면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목표설정은 시니어에게 중요한 덕목입니다. 목표설정을 하는 중요한 이유는 주니어의 자율성 보장입니다. PJ가 시작되면 일단 다같이 앉아서 Target date를 목표로 스케줄을 짜고 Key milestone을 설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니어는 그 스케줄에 따라 주니어의 업무량만 관리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니어는 자신이 알아서 업무시간에 커피를 마시고 놀든 연차를 쓰던, 마일스톤에 맞게 부족하면 야근을 하든 주말근무를 하든지 어떻게든 커버합니다. 어른입니다. 주니어는 유치원생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시니어가 알아서 혼자 목표설정을 하고, 짧은 일만 툭툭 던져준다면 주니어는 수동적으로 일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게 악순환이 되면 시니어의 입에서 이런 말도 튀어 나옵니다.
"너 왜 업무시간에 커피 마시러가냐?"
"너 자리 너무 많이 비우는 거 아니야?"
최악입니다.
사람이 수동적으로 일하게 되면 참신한 아이디어는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서도 피드백은 상당히 중요한데, 목표에 맞게 시키고 나서 나 몰라라하거나 검토의견을 주지 않으면 주니어들도 일을 대충대충 합니다. 같이 설정한 목표와 마일스톤에 맞게 점검해 주고 조언해 주는 일은 시니어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리고 혼낼 땐, 일로 혼내야 합니다. 그 때 기준이 되는 것이 같이 만든 목표량과 Target date일 것입니다. 태도가 불량하다, 말대꾸한다, 성실하지 않다, 등의 모호한 개념으로 혼내기 시작하면 주니어는 반감밖에 생기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시니어가 있습니다. 일을 벌리려는 시니어, 일을 줄여나가는 시니어.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얻어지는 정보가 많으니 일은 점점 많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Time과 인력;Man Month은 제한적이니 결정;Decision making을 하며 일을 줄여나가야 합니다. 주니어들은 종종 과욕을 부려 일을 너무 많이 벌려놓거나 한가지만 엄청 파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시니어가 잘 보고 필요없다 싶은 건 빨리빨리 접으라고 결정을 내려줘야 합니다.
'고르디우스 매듭'이라는 일화가 있습니다. 고대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알렉산더는 어느 마을을 지나가던 중 뱅뱅 꼬여있는 매듭을 봤습니다. 그 마을에서 지난 몇 백년동안 아무도 풀지 못한 이 매듭을 풀면 아시아를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알렉산더는 말에서 내렸지요. 그리곤 매듭을 단칼에 내려치고 외쳤습니다.
"자 이제 매듭이 풀렸다!"
빙고~ 시니어는 주니어가 풀지 못한 매듭을 칼로 잘라서라도 풀어줘야 합니다.
사실 이 능력은 젤 마지막에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시니어가 일을 잘하면 원론적으로 좋긴 하지만, 간혹 안 좋은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MB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 시리즈입니다. MB는 어찌 보면 필자의 건설업계 선배시기도 한데, 당근 저보다 일을 무지막지하게 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꾸 주니어에게 "나는 옛날에 이랬는데", "넌 왜 일을 그렇게 하냐, 이해를 못하겠다", "어이구, 그렇게 해서 대학은 어떻게 갔냐" 이런 식으로 버로우를 타는 경우, 답없습니다.
사실 일하는 능력이 중요하긴 합니다. 예를 들어 시니어가 3박4일 밤새서 할만한 일을 시켰다고 칩시다. 시니어와의 피드백을 통해 일을 호기롭게 마치고 좀 쉬려고 했는데, 그 다음 날 하는 말, "주니어야, 이거 다 다시 해야겠다. 팀장님이 다시 하래"... 그러면 광탈이죠. 시니어의 능력이 필요한 부분은 이런 부분입니다. 방향을 잘 잡고 그 위의 시니어나 타 팀과의 업무조율을 잘하는 것, 그리하여 주니어로 하여금 자기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런 환경 하에선 시니어가 간혹 뭐라고 구박해도 주니어는 대체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 환경도 조성하지 못하고 맨날 구박만 한다면… 주니어는 떠날 것입니다.
식구;食口란 밥을 같이 먹는 사람입니다. 내 새끼, 내 식구를 만드려면 당연히 밥을 자주 같이 먹어야 합니다. 업무시간에 사무적인 환경에서 주니어가 시니어에게 말을 건네긴 쉽지 않습니다. 지극히 한국적인 마인드지만, 종종 삼심오오 회식을 통해서 속 깊은 대화를 하다 보면 불필요한 오해도 해소되기 마련입니다.
상기 언급한 상사가 필요한 몇 가지 요건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터득한 장돌뱅이 지식입니다. 상사에게 필요한 '몇가지' 요건만 나열했으므로, 혹시 빠진 사항이나 틀린 부분이 있다면 댓글을 통해 언제든지 조언바랍니다. 필자도 아직 십년도 회사생활을 하지 않았으니 분류상 주니어일 것입니다. 이런 글을 쓰기엔 조금 주제 넘는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의 제 생각을 정리하고 나중에 더 나은 시니어가 되기 위해 이 글을 작성했다는 변명을 해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