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나서 듣는 단골 질문이 있다. 첫 번째는 결혼을 하니 행복하냐는 것과, 두 번째로는 결혼 전과 가장 달라진 점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으면 으레 하하핫 웃으며 좋아요. 정말 재미있어요 하고는 했는데 오늘은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재미있는지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왜냐면 진짜로 재미있거든.
나의 위장에 자유를
식습관에 엄격한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삼십여 년 간 그녀의 스타일에 순응했다. 우리집 냉장고로 말할 것 같으면 과일이 떨어지는 날은 없었어도 주스는 절대 못 들어가는 그런 냉장고였다. 그러니 주류는 말할 것도 없고 (절대 안 됨) 마요네즈, 케찹 같은 소스류 구경도 귀했다. 라면은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했다.
잔병치레가 잦은 엄마는 더 이상 아프기 싫었고, 그걸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도 않았고, 따라서 건강하기 위해서는 저런 것들을 안 먹어야했고(음주와 비만은 만병의 근원) 우리집 냉장고에는 줄곧 건강한 것들만 잔뜩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172센티 미터까지 겅중 자라났고 누가 봐도 날씬한 편에 속했었다.(당시에는 몰랐지만) 엄마랑 살 때 나의 몸무게는 20대 여성 상위 10% 였다.(아련)
평생 건강한 것만 먹는 인간이 되었다면 참 좋으련만. 타의에 억압된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바깥에서 커피며 음료수며 과자를 맛봤는데 그것들이 생각 안 날 리가. 나란 인간은 집에 들어가기 전 젤리를 한 움큼 집어 먹었고 친구들과 놀러 가면 항상 만취했다. 진짜진짜진짜 항상.
오랜 시간 [건강에 안 좋은 음식 = 살찌는 음식 = 맛있는 음식]에 대해 억압을 당하자 오히려 식습관이 더 나빠지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았다.
'지금 아니면 못 먹어'라는 마음가짐이 늘 깔려있었는지 그렇게 몰래 먹고 숨어서 먹고 그랬다. 일종의 식이장애가 와버린 거다. 몰래 숨어서 음식을 먹는 행동은 폭식증 대표 증상이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
퇴근 후 맥주 한 캔, 주말 아점으로 배달 토스트, 자기 전 냉면까지.
먹고 싶은 걸 원할 때 마음대로 먹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쾌감이 상당했다. 나는 이제 새벽에도 햄버거를 먹을 수 있어! 미친! 얼마나 재밌어!
누가 먼저 자는거니
친구들과 여행을 갔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새벽까지 맥주와 육포를 뜯어가며 그렇게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었다. 누구 하나 졸려 보이기라도 한다면 억지로 못 자게 하기도 했다. 자면 안 된다고! 더 놀아야 한다고!
결혼 후 남편과 나는 새벽 2시건 3시건 시간과 상관없이 수다 떨기에 바쁘다. 다음 날 출근을 생각해 억지로 잠을 청하긴 하지만 일요일 밤에는 특히나 더 잠 못 이루고는 한다. 개그코드가 잘 맞는 우리 부부에게 할 말은 끊이지 않고 양치를 하다가도 물을 마시다가도 웃긴 일은 자꾸만 생긴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결혼 생활이 여행이다. 마음껏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매사에 깔깔 웃어버리는 아주 즐거운 여행. 매일 퇴근하면 여행지에 도착한 심정이다. 짐 풀고 맛있는 거 먹고 놀면 된다. 퇴근이 이렇게 기다려질 수가 없고 집에 와서 하는 모든 일들이 신이난다.
여행을 기다렸던 건 일상에서 못하는 것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여행지에서 나는 항상 행복했었다. 언젠가 이 자유와 해방감이 일상이 되어 아무렇지 않아질날이 오겠지. 그때는 또 다른 해방감을 찾아내면 된다. (원래 여행지에서는 미래지향적 다짐이 쉽다)
내일 또 출근을 하겠지만 오늘도 나는 늦게까지 놀다 잠에 들거다. 원래 여행은 그런거니까.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더니. 정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