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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Nov 28. 2023

조금 묵은 이야기

계류유산 후 6개월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무언가 끝났다는 신호.


가지고 있던 감정과의

온전한 이별을 의미하기도 한다.


초여름에 겪었던 일을

초겨울이 되어서야 쓸 수 있게 됐다.


-



그날은

가방에 달고 다니던

임산부 배지를

가위로 자르지도

내 손으로 풀지도 못하겠어서

그냥 다른 가방을 들고서 병원에 간 날이다.


어제의 나는

내 옆과 앞뒤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들뜬 엄마의 마음이었는데.


하루 만에 나는

심장이 멈춘 내 아이를

보내주러 온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러니까 그날은

나의 호칭이 12주 차 산모였다가

환자로 바뀐 날이다.


링거를 꼽고 회복실 한편에 누워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연신 옆방에서 쏟아지는

응애응애 울음소리를 들었다.


"5월 18일 목요일 오전 10시 43분

건강한 여아입니다 축하드려요!"


하필 내 자리가

분만실 한 귀퉁이의 옆이여서는

잔인한 선고를 몇 번이고 들었네

이 시간이 무척 곤욕이었다.


우리 아기도

저렇게 건강하게 울며 잘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생각을 멈추기 힘들었다.




나는 마음이 찢기고 있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이지 심장 부근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그 와중에도

와씨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란

이런 걸 말하는 건가 보다 생각했다.


그동안 해왔던 크고 작은 이별은

정말이지 쨉도 안 되네


이후의 감정들은

더욱 처참했다

차가운 수술대를

뚜벅뚜벅 직접 걸어 올라가

두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기분이란.


산소호흡기를 쓰고

사지가 결박된 기분이란.


팔다리가 묶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수술방을 오가는 선생님들이

조용히 눈가를 닦아주었다.


아무 말 없는 그 손짓이

제법 위로가 됐다.


-




그리고는 마취에서 덜 깬 채로

휠체어에 옮겨지는 내가 있었다.


의자에 앉으며 간호사 선생님께

나도 모르게 우리 아기 봤냐고 물어봤다.

비몽사몽한 그 순간에

그게 궁금했나 봐.


선생님은 아니요 못 봤어요라고 했지만

찰나의 머뭇거림에

나를 위한 거짓말이라는 걸 느꼈다.


근데 뭐 거짓말이면 뭐.

봤어도 뭐.

그게 궁금해서 뭐 어쩔 건데.


다리 밑에 부스럭

비닐봉지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은데

그 비닐에 우리 아가가 남겨졌을까

상상력이 풍부한 내가 싫었다.


아까 누웠던 회복실 침대에 다시 누워

영양제 링거를 맞는 동안에도

연신 아기 울음소리와

축하합니다 소리를 함께 들었다.


뭐 별도의

계류유산실이라고 격리되어 있어도

기분은 안 좋았겠지만.

오늘 이렇게 많은 생명이 태어나는데

우리 아가는 떠나는 날이구나


생과 사는

종이 한 장 차이라더니

내 앞에 놓인 모든 경험이 낯설기만 했다.



-



수술 이후 집에 와서는

몸이 박살이 났다는 걸 깨달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에서 바닥으로 발을 딛는데

비명이 절로 나왔다.

촘촘한 압정을 깔아 둔 바닥을 밟은 기분이었다.


손목이 시큰 거려 김봉지 하나를

뜯을 수가 없었고

온몸이 너무 추웠다

에어컨 없이 못 자던 날들이었는데.


목에는 손수건을 두르고

수면양말을 신었다

손가락 보호대가 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더 아픈 곳은 마음이었다.

심장 언저리를 움켜쥐며 내내 울었다.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억지로 먹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어떻게 다시 회사에 출근할 수 있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점심을 먹으며 일을 할 수 있다고 내가?


카톡은 쌓여가는데

누구의 연락도 받고 싶지 않았다.

뭐라고 답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이 당시에 나는

남편과 엄마 외에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가 않았다.


어찌할 수 없는

감정들이 쌓일 때마다

메모장을 켜서 쓸어 담았다.



-


남편이 던지는 시시한 농담에

가끔 웃기도 하는 날들이 생겨났다.


이때의 나는 디즈니플러스를

결제해 버렸는데

판타지 장르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도망치는데 생각보다

큰 도움을 줬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좌절하고

끝없이 무너졌다.


총을 연타로 쏘는 장면을 보며

와 이 장면

아기한테 안 좋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아 맞다 이제 뱃속에 애기없지


무의식과 혼잣말에도

눈물이 터지고는 했다.


내게 보장된 약속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뿐이었는데

울어도 울어도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




이 글을 쓰는데

창 밖에 첫눈이 내린다.


참 우습지

첫눈을 볼 때는 세명일 거라고

기대했던 지난 여름날이


그래도

시간은 배신하는 법이 없다.

묵묵히 제 몫을 해낸다.


이제 나는 유산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할 수도 있는 사람이 됐다.


아니 나 임산부였을 때!

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역시 시간은 믿음직스럽지.


우는 날 보다

웃는 날이 비교할 수 없이 많고

정말 괜찮은 것 같기도 해


묵은 이야기를 꺼내어

한 줄 쓰고 눈물이 나면 못쓰고

코가 시큰하면 또 못쓰고


오늘에서야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이제

내일로 건너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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