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류유산 후 6개월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무언가 끝났다는 신호.
가지고 있던 감정과의
온전한 이별을 의미하기도 한다.
초여름에 겪었던 일을
초겨울이 되어서야 쓸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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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가방에 달고 다니던
임산부 배지를
가위로 자르지도
내 손으로 풀지도 못하겠어서
그냥 다른 가방을 들고서 병원에 간 날이다.
어제의 나는
내 옆과 앞뒤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들뜬 엄마의 마음이었는데.
하루 만에 나는
심장이 멈춘 내 아이를
보내주러 온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러니까 그날은
나의 호칭이 12주 차 산모였다가
환자로 바뀐 날이다.
링거를 꼽고 회복실 한편에 누워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연신 옆방에서 쏟아지는
응애응애 울음소리를 들었다.
"5월 18일 목요일 오전 10시 43분
건강한 여아입니다 축하드려요!"
하필 내 자리가
분만실 한 귀퉁이의 옆이여서는
잔인한 선고를 몇 번이고 들었네
이 시간이 무척 곤욕이었다.
우리 아기도
저렇게 건강하게 울며 잘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생각을 멈추기 힘들었다.
나는 마음이 찢기고 있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이지 심장 부근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그 와중에도
와씨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란
이런 걸 말하는 건가 보다 생각했다.
그동안 해왔던 크고 작은 이별은
정말이지 쨉도 안 되네
이후의 감정들은
더욱 처참했다
차가운 수술대를
뚜벅뚜벅 직접 걸어 올라가
두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기분이란.
산소호흡기를 쓰고
사지가 결박된 기분이란.
팔다리가 묶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수술방을 오가는 선생님들이
조용히 눈가를 닦아주었다.
아무 말 없는 그 손짓이
제법 위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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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마취에서 덜 깬 채로
휠체어에 옮겨지는 내가 있었다.
의자에 앉으며 간호사 선생님께
나도 모르게 우리 아기 봤냐고 물어봤다.
비몽사몽한 그 순간에
그게 궁금했나 봐.
선생님은 아니요 못 봤어요라고 했지만
찰나의 머뭇거림에
나를 위한 거짓말이라는 걸 느꼈다.
근데 뭐 거짓말이면 뭐.
봤어도 뭐.
그게 궁금해서 뭐 어쩔 건데.
다리 밑에 부스럭
비닐봉지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은데
그 비닐에 우리 아가가 남겨졌을까
상상력이 풍부한 내가 싫었다.
아까 누웠던 회복실 침대에 다시 누워
영양제 링거를 맞는 동안에도
연신 아기 울음소리와
축하합니다 소리를 함께 들었다.
뭐 별도의
계류유산실이라고 격리되어 있어도
기분은 안 좋았겠지만.
오늘 이렇게 많은 생명이 태어나는데
우리 아가는 떠나는 날이구나
생과 사는
종이 한 장 차이라더니
내 앞에 놓인 모든 경험이 낯설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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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이후 집에 와서는
몸이 박살이 났다는 걸 깨달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에서 바닥으로 발을 딛는데
비명이 절로 나왔다.
촘촘한 압정을 깔아 둔 바닥을 밟은 기분이었다.
손목이 시큰 거려 김봉지 하나를
뜯을 수가 없었고
온몸이 너무 추웠다
에어컨 없이 못 자던 날들이었는데.
목에는 손수건을 두르고
수면양말을 신었다
손가락 보호대가 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더 아픈 곳은 마음이었다.
심장 언저리를 움켜쥐며 내내 울었다.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억지로 먹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어떻게 다시 회사에 출근할 수 있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점심을 먹으며 일을 할 수 있다고 내가?
카톡은 쌓여가는데
누구의 연락도 받고 싶지 않았다.
뭐라고 답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이 당시에 나는
남편과 엄마 외에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가 않았다.
어찌할 수 없는
감정들이 쌓일 때마다
메모장을 켜서 쓸어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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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던지는 시시한 농담에
가끔 웃기도 하는 날들이 생겨났다.
이때의 나는 디즈니플러스를
결제해 버렸는데
판타지 장르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도망치는데 생각보다
큰 도움을 줬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좌절하고
끝없이 무너졌다.
총을 연타로 쏘는 장면을 보며
와 이 장면
아기한테 안 좋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아 맞다 이제 뱃속에 애기없지
무의식과 혼잣말에도
눈물이 터지고는 했다.
내게 보장된 약속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뿐이었는데
울어도 울어도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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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데
창 밖에 첫눈이 내린다.
참 우습지
첫눈을 볼 때는 세명일 거라고
기대했던 지난 여름날이
그래도
시간은 배신하는 법이 없다.
묵묵히 제 몫을 해낸다.
이제 나는 유산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할 수도 있는 사람이 됐다.
아니 나 임산부였을 때!
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역시 시간은 믿음직스럽지.
우는 날 보다
웃는 날이 비교할 수 없이 많고
정말 괜찮은 것 같기도 해
묵은 이야기를 꺼내어
한 줄 쓰고 눈물이 나면 못쓰고
코가 시큰하면 또 못쓰고
오늘에서야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이제
내일로 건너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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