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저 멀리 반짝이는 별

by 커다란고양이

치익, 탁.

알루미늄 캔 따개가 젖혀지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베란다의 정적을 갈랐다.

나는 베란다 난간에 삐딱하게 등을 기댄 채,

12월의 인천의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손에 쥐어진 캔맥주 표면에는

차가운 물방울이 맺혀 흘러내렸고,

입가에서는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영하의 날씨.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불어왔지만,

굳이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보일러가 돌아가는 따뜻한 원룸, 푹신한 매트리스가 있는 방 한켠.

그 모든 안락한 공간들이 지금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공허함을 주었다.

무언가 하나가 빠져나갔을 뿐인데,

집 안의 공기 밀도가 달라진 것 같았다.

그 텅 빈 압력을 견디느니 차라리 이 날카로운 겨울바람이

뇌를 찔러주는 게 정신을 차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인천의 밤하늘은 탁했다.

희뿌연 미세먼지와 도심에서 뿜어내는

광공해가 뒤섞여 만들어낸 거대한 회색빛 돔.

1등성조차 보기 힘든 삭막한 하늘이었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그 텅 빈 공간을,

나는 알코올의 힘을 빌려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재택근무자로 일하며 모니터 불빛에

혹사당한 눈을 쉬게 하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때였다.

무심코 시선을 돌리던 내 눈길이 남서쪽 하늘,

콘크리트 건물 너머의 낮은 산등성이

위쪽 허공에 딱 멈췄다.

"......?"

평소라면 아무것도 없어야 할 그 어두운 공간에,

무언가 이질적인 빛 하나가 박혀 있었다.

처음엔 드론인가 싶었다.

요즘은 밤에 드론을 날려 야경을

찍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아니면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의 야간 비행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1분, 2분이 지나고,

맥주 한 캔을 거의 다 비울 때까지 그 빛은 미동조차 없었다.

인공위성이라기엔 육안으로 식별될 정도로 너무 밝았고,

금성이나 목성 같은 행성이라기엔 고도가 터무니없이 낮았다.

무엇보다 이상한 건 그 빛의 '움직임'이었다.


반짝. 파팟. 반짝.

보통의 별은 지구 대기의 불안정함 때문에

반짝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고등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저건 달랐다.

단순히 대기 탓이라기엔 그 점멸의 패턴이

너무나 작위적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저만치에서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것처럼,

불규칙하지만 명확한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색깔도 제멋대로였다.

처음에는 차가운 푸른빛을 띠다가,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타오르더니,

다시금 영롱한 은색으로 변해갔다.

'저게 뭐지?'

취기 때문일까.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천문학, 별자리에 관심이 많아 오랜 기간 별들으 봐왔지만

저런 식의 발광체는 본 적이 없었다.

모스 부호인가? 누군가 산에서 조난 신호라도 보내는 건가?

아니면 술에 취한 내 시신경이 만들어낸 환각일까?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냥 눈으로만 보고 "별이네" 하고 넘기기엔,

저 불규칙한 리듬이 묘하게 신경을 긁었다.

마치 나를 향해 말을 거는 것 같은 끈질긴 깜빡임.

저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직감이 뇌리에 꽂혔다.

나는 비어버린 맥주 캔을 난간 선반에 내려놓고 베란다 구석으로 향했다.


구석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짐들의 묵은 먼지 냄새와 함께

잡동사니들이 쏟아질 듯 쌓여 있는 광경이 보였다.

여름에만 쓰는 선풍기, 한 번 쓰고 처박아둔 캠핑 의자,

바퀴가 고장 난 캐리어, 그리고 온갖 전선 뭉치들.

나는 그 쓰레기장 같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가장 안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묵직한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손끝에 딱딱하고 차가운 플라스틱의 감촉이 닿았다.

나는 잡동사니들을 옆으로 밀어내고,

구석에 처박힌 검은색 하드 케이스를 낑낑대며 끄집어냈다.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케이스.

고등학교 천문부 시절,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꼬박

6개월을 모은 돈으로 샀던 굴절 망원경이었다.

당시엔 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보물 1호였다.


친구들이 PC방에 갈 때 그 건물 옥상에 올라가

이 녀석을 붙들고 밤을 지새우곤 했다.

하지만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먹고사는 일에 치이면서 이 녀석은

15년 동안 케이스 밖으로 나와본 적이 없었다.

지난번 이사 올 때 짐이 너무 많아 버릴까 고민했었다가,

귀찮아서 그냥 구석에 박아둔 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