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고양이들의 반응

by 커다란고양이

"킁킁."


먼지 쌓인 케이스를 거실 한복판으로 끌고 나오자,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막내 '나무'였다.

풍성한 치즈색 털을 가진 시베리안 종인 나무는

워낙 호기심이 많은 녀석이었다.

녀석은 꼬리를 바짝 세우고 다가와 케이스 냄새를 킁킁 맡았다.


"나무야, 저리 가 있어. 먼지 나."


나는 손을 휘저어 나무를 가볍게 밀어냈다.


"냐앙?"


나무는 불만 섞인 소리를 내더니,

내 주위를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아빠가 갑자기 꺼낸 이 거대하고 시커먼 물건이

장난감인지 먹을 것인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때, 등 뒤에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누군가 내 등에 앞발을 턱, 하니 올리고 있었다.

둘째 '바람'이었다.

온몸에 고등어 무늬를 두른 단모 코리안 숏헤어.

진한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가진 녀석.

바람이는 나이로 치면 우리 집 첫째였다.

13살. 고양이 나이로 치면 노묘에 속했지만,

녀석은 여전히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집안에 큰일이 있고 나서

내가 며칠째 넋을 놓고 지내는 동안,

나를 가장 챙긴 건 다름 아닌 바람이었다.


"냐아."


바람이가 짧고 굵게 울며 내 팔에 머리를 비볐다.

녀석은 내가 우울해 보이면

꼭 이렇게 다가와서 체온을 나눠주곤 했다.

밥도 평소보다 더 잘 먹고,

화장실도 잘 가고,

일부러 내 앞에서 스크래처를 벅벅 긁어대며


"나는 괜찮아, 아빠도 힘내"


라고 말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속 깊은 녀석.

나는 잠시 망원경을 내려놓고

바람이의 미간을 쓰다듬어 주었다.


"바람아, 밥 먹었어? 아빠가 이거 좀 확인해볼 게 있어서 그래. 금방 치울게."


바람이는 내 손길을 피하지 않고 골골송을 불렀다.

녀석의 따뜻한 온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져 왔다.

그 온기 덕분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 녹는 것 같았다.

바람이는 망원경 케이스 위에 털썩 주저앉아 식빵을 구웠다.

마치 내가 딴짓하지 못하게 감시하려는 감독관처럼.


나는 미소를 지으며 케이스의 잠금장치에 손을 댔다.

오랫동안 열지 않아 녹이 슬었는지 뻑뻑했다.

힘을 주어 걸쇠를 밀어 올렸다.

딸각, 딸각.

경쾌한 금속음과 함께 잠금이 풀렸다.

뚜껑을 들어 올리자, 세월의 냄새가 훅 끼쳐왔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윤활유 냄새.

스펀지 완충재 사이사이에 잠들어 있는 부품들이 보였다.

묵직한 경통, 삼각대, 가대, 그리고 밸런스 웨이트.

겉보기엔 멀쩡했다.

15년의 세월을 창고 안에서 버텨준 게 기특할 정도였다.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부품을 하나씩 꺼내 조립하기 시작했다.

비록 15년 만이었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베란다에 삼각대를 넓게 펼쳐 세우고 수평계를 확인했다.

그 위에 적도의식 가대를 올리고 나사를 조였다.

묵직한 무게추를 달아 균형을 맞추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메인 경통을 결합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에 닿자 묘한 전율이 흘렀다.


학창 시절, 이 망원경 하나만 있으면

우주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시절의 설렘이 아주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이걸로 저 별을 보면, 정체를 알 수 있을까?


확률은 반반이다. 대기가 불안정해서

그냥 흔들리는 점으로 보일 수도 있고,

운이 좋다면 고리나 위성 같은 게 보일 수도 있다.


"어디 보자..."


조립을 마친 나는 경통을 남서쪽 하늘로 돌렸다.

파인더의 십자선 중앙에 그 별을

맞추기 위해 미세 조정 나사를 돌렸다.

아까 봐두었던 그 낯선 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듯 묘한 리듬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육안으로 봐도 다른 별들보다 확실히 이질적이었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교차하는 그 빛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호흡 같았다.

나는 한쪽 눈을 감은 채,

차가운 접안렌즈에 오른쪽 눈을 갖다 댔다.

숨을 멈추고 시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별은커녕 밤하늘의 배경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그냥 까만 먹지를 눈앞에 대고 있는 느낌이었다.

초점이 나갔나?

나는 초점 조절 노브를 손가락으로 더듬어 돌려보았다.

드르륵, 드르륵.

경통 내부에서 렌즈가 앞뒤로 움직이는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시야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아니, 무언가 보이긴 했다. 뿌연 안개 속에 갇힌 듯

답답하고 흐릿한 빛의 덩어리가 어른거릴 뿐,

선명한 상이 맺히지 않았다.

빛 자체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왜 이러지."

나는 눈을 떼고 망원경의 앞부분으로 갔다.

혹시 내가 바보같이 뚜껑을 안 열었나?

빛을 받아들이는 대물렌즈 캡을 확인했다.

열려 있었다.


그렇다면 경통 내부의 문제, 즉 렌즈의 문제다.

베란다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플래시 기능을 켰다.

그리고 망원경의 대물렌즈 안쪽을 향해 빛을 비췄다.

그 순간, 나는 짧은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

렌즈 안쪽 상태는 생각보다 처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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