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지도에는 없는 수리점

by 커다란고양이

오랜 시간 습한 베란다에 방치된 탓일까.

렌즈 안쪽 면에는 하얗게 피어오른

곰팡이 꽃이 유리 전체를 거미줄처럼 뒤덮고 있었다.

마치 백내장에 걸린 눈처럼 뿌옇게 탁해져 있었다.

이 정도면 빛이 들어와도 산란되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플래시 불빛을 비추자,

렌즈 정중앙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선명하고 날카로운 선 하나가 번뜩였다.

균열.

금.

렌즈가 깨져 있었다.


언제 깨진 걸까.

지난번 이사할 때 이삿짐센터 직원이 박스를 떨어뜨렸나?

아니면 창고 안에서 무거운 짐들에 눌려서 압력을 받은 걸까.

아니면 내가 방금 꺼내다가 어딘가에 부딪혔나?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는 명확했다.

이 망원경은 죽었다.

빛을 모으지 못하고 산란시켜 버리는, 망가진 눈.

더 이상 별을 볼 수 없는 고철 덩어리.


"하..."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럼 그렇지.

15년이나 처박아 둔 물건이 멀쩡할 리가 없지.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

별은 무슨 별.

그냥 술이나 더 마시고 잠이나 자라는 계시인가 보다.

나는 망원경을 다시 분해하려고 손을 뻗었다.

내일 날 밝으면 재활용 쓰레기장에 내다 버려야겠다.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

반짝.

등 뒤에서 다시 그 빛이 느껴졌다.

나는 홀린 듯 고개를 돌려 맨눈으로 하늘을 봤다.

그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아까보다 더 또렷하고 강렬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여기야. 포기하지 마. 얼른 봐."


오기가 생겼다.

안 보인다고 하니 더 보고 싶어졌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처럼,

망가진 망원경을 보니 저 별을 기어코 확인해야겠다는 고집이 솟구쳤다.

단순히 별 하나 보겠다고 이러는 게 우습긴 했지만,

왠지 저 별을 확인하지 않고 넘어가면 계속 찜찜해서 잠을 못 잘 것 같았다.

그냥 어릴때부터 무언가를 하다말면 찝찝했다.

지금도 그랬다.

나는 거실로 들어와 노트북을 열었다.

바람이가 노트북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꼬리로 내 손등을 탁탁 쳤다.


"아빠, 뭐해?"


라고 묻는 듯한 에메랄드빛 눈동자.

나는 바람이의 등을 한 번 쓸어주고 검색창에 타자를 쳤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거실의 적막을 채웠다.


[천체 망원경 수리]

[깨진 렌즈 복원]

[굴절 망원경 곰팡이 제거]


화면에는 수많은 정보가 떴지만,

클릭해 보면 하나같이 절망적인 답변들뿐이었다.


'오래된 모델은 부품 단종으로 수리가 불가능합니다.'

'렌즈 곰팡이는 닦아낼 수 있지만, 코팅이 벗겨져서 성능이 저하됩니다.'

'렌즈가 깨졌다고요? 그건 교체밖에 답이 없습니다. 근데 렌즈 교체 비용이면 차라리 요즘 나오는 입문용 망원경을 새로 사는 게 쌉니다.'


새로 사라고?

지금 당장 보고 싶은데,

배송을 2~3일씩 기다릴 여유 따윈 없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고집이었지만,

다른 망원경이 아니라 꼭 '이 망원경'으로 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 열정이 담겨 있는 녀석이니까.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었다.

어떻게든 고칠 방법이 없을까.

사설 수리점이라도 있지 않을까.

스크롤을 내리고, 또 내렸다.

페이지가 5페이지, 10페이지를 넘어갔다.

눈이 뻑뻑해지고 목덜미가 뻐근해질 때쯤이었다.


어느 천문 동호회 카페의 구석진 자유게시판.

조회수도 거의 없는 3년 전 게시글에 달린

댓글 하나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공식 센터에서는 다 안 된다고 해서 포기하려다가,

성북동 쪽에 '만물 수리점'이라고 있는데 가보세요.

지도에는 안 나오는데,

성북동 언덕 끝자락 파란 대문 집 옆 골목에 있어요.

주인분이 좀 특이한데 못 고치는 게 없더라고요.

저는 렌즈 박살 난 50년 된 필름 카메라도 거기서 살렸습니다.'


성북동.

여기서 버스로 40분 거리. 멀지 않다.

나는 황급히 지도 앱을 켜서 해당 위치를 검색해 봤다.

하지만 로드뷰로 확인해보니 차도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이었고,

아무런 상호도 뜨지 않았다.

등록되지 않은 가게.

혹은 이미 폐업했을 수도 있는 곳.


'주인분이 좀 특이하다.'

'못 고치는 게 없다.'


밑져야 본전이었다.

어차피 고치지 못하면 버려야 할 고철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번 가보기나 하자.

만약 거기도 안 된다고 하면... 그때는 깔끔하게 포기하자.

나는 댓글에 적힌 대략적인 위치 설명을 휴대폰으로 캡처했다.


[성북동 00-00번지 뒤편 골목 끝. 파란 대문 집 옆. 간판 없음.]


내일 날이 밝으면... 아니,

오늘 해가 뜨면 당장 가야겠다.

나는 베란다로 나가,

흉물스럽게 서 있는 깨진 망원경을 바라보았다.

렌즈 안쪽의 금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날카롭게 번득였다.

기다려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보자.

나는 망원경 렌즈 캡을 닫고, 다시 작은 원룸으로 돌아 왔다.

어둠 속에서 나무의 호박색 눈과 바람이의 에메랄드색 눈이 반짝였다.

바람이가 내 다리에 와서 머리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든든한 위로였다.

내일 일찍, 아니 오늘 날이 빨리 밝길 바랄 뿐이었다.

긴 밤이 지나고 있었다.


<매주 월요일, 수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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