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여기는 라파엘 수리점입니다.

by 커다란고양이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들린 것은 경쾌한 소음이었다.

아작, 아작, 아작.

거실 쪽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파열음.

건사료를 씹어먹는 소리였다.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털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커튼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겨울 햇살이 거실 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다.

거실로 나가보니 식탁 아래 밥그릇 앞에서 고등어 무늬 뒤태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둘째 '바람'이었다.


"바람아, 굿모닝."


내가 잠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자,

바람이가 밥 먹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 사료 가루를 묻힌 채,

녀석은


"냐앙!"


하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하던 식사를 마저 하지 않고 내게로 달려왔다.

묵직한 머리로 내 정강이를 쿵,

하고 박치기하더니 꼬리를 바짝 세우고

다리 사이를 8자로 감아 돌았다.


"우리 바람이, 밥 잘 먹네."


나는 허리를 숙여 녀석의 단단한 등을 쓸어주었다.

바람이는 요즘 들어 부쩍 애교가 많아졌다.

내가 조금이라도 처져 있다 싶으면 귀신같이 알고

다가와 골골송을 불렀다.

밥도 평소보다 더 전투적으로 먹었다.

마치


"아빠, 나 봐봐. 나 이렇게 튼튼해. 그러니까 아빠도 기운 차려."


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든든한 위로 덕분에 나는 억지로라도 입꼬리를 올릴 수 있었다.


"냐아?"

막내 나무가 캣타워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와

내 손에 들린 스마트폰 냄새를 맡았다.

호기심 많은 치즈색 털 뭉치.

나는 두 녀석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주고,

거실 한구석에 세워둔 망원경 케이스를 바라보았다.

밤새 안녕했냐는 듯,

먼지 쌓인 검은색 케이스가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어젯밤 베란다에서 봤던 그 기이한 별빛도,

충동적으로 캡처해 둔 수리점 주소를 확인했다.

나는 욕실로 들어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며칠째 면도를 하지 않아 까칠했고,

눈 밑은 퀭했다.

재택근무를 하며 밤낮이 바뀌었기 때문에,

밤샘에는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긴장감은 육체의 피로와는 질이 달랐다.

면도할 시간도 아까웠다.

대충 스킨만 바르고 옷을 챙겨 입었다.

두꺼운 패딩 점퍼에 청바지.

그리고 망원경을 담을 하드 케이스.


"아빠 갔다 올게. 밥들 많이 먹고 있어."


현관을 나서며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무는


"다녀와!"


하듯 짧게 울었고,

바람이는 현관 중문 앞까지 따라 나와

내가 신발을 다 신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나를 빤히 응시했다.

'잘하고 와'라는 응원 같아서,

나는 녀석에게 엄지를 척 들어 보이고 문을 열었다.


성북동으로 가는 버스 안은 한산했다.

출근 시간이 지난 평일 오전 11시.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풍경은 무채색이었다.

잎을 다 떨군 가로수, 회색빛 아스팔트,

무표정한 사람들. 버스 라디오에서는 활기찬

DJ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내 귀에는 웅웅거리는 소음으로만 들렸다.

내 머릿속은 온통 그 깨진 렌즈와 별 생각뿐이었다.


나는 스마트폰 갤러리를 열어 어젯밤 캡처해 둔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성북동 00-00번지 뒤편 골목 끝. 파란 대문 집 옆. 간판 없음.]

지도 앱을 켜서 검색해 봤지만,

여전히 해당 주소지에는 아무런 상호도 뜨지 않았다.

'데이터 없음'. 프로그래머인 나에게 나에게 이 문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로드뷰로 봐도 그저 낡은 담벼락만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그 불확실한 좌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어젯밤 보았던 그 별의 불규칙한 깜빡임이,

마치 내비게이션처럼 나를 이끌고 있는 기분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성북동의 오래된 주택가.

높은 담장과 굳게 닫힌 대문들이

줄지어 있는 골목은 미로 같았다.

고급 단독주택과 허름한

다세대 주택이 기묘하게 섞여 있는 동네.


찬 바람이 얼굴을 때렸지만,

무거운 망원경을 메고 걷다 보니 등줄기에는 땀이 흘렀다.

패딩 안쪽이 눅눅해졌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허벅지가 뻐근해질 때쯤,

골목 끝자락에 칠이 다 벗겨진 파란 대문 집이 보였다.

"여기... 인가?"

파란 대문 집 옆,

사람이 다닐 수 있을까 싶은 좁은 샛길이 나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어둡고 음습한 틈새.

보통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곳이었지만, 댓

글의 설명과 정확히 일치했다.

나는 망원경 케이스의 끈을 고쳐 메고,

의심 반 기대 반으로 그 좁은 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케이스가 벽에 긁히지 않게 조심하며,

게걸음으로 틈새를 통과했다.

어깨가 벽에 쓸릴 만큼 좁은 길을 10미터쯤 들어갔을까.

거짓말처럼 시야가 트이며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사방이 높은 담벼락으로 막힌,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공간.

그리고 그 구석에,

시간이 멈춘 듯한 목조 건물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이건 가게라기보다는 폐가에 가까웠다.

기와지붕에는 이름 모를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나무로 된 창틀은 뒤틀려 칠이 다 벗겨져 있었다.

유리창은 오랜 세월 닦지 않은 듯

뿌옇게 흐려져 있어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가게 앞 마당에는 주인을 잃은

고장 난 괘종시계, 녹슨 타자기, 정체불명의 기계 부품들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마치 기계들의 무덤 같았다.


정말 여기가 맞나?

이미 폐업한 곳 아닐까?

3년 전 댓글이라더니,

그사이 망한 건가?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던 찰나,

문 앞에 걸린 손바닥만 한 나무 팻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라파엘 수리점]


단 여섯 글자.

어떤 걸 고치는 지도 쓰여지지 않았다.

영업시간도, '어서 오세요'

같은 상투적인 인사말도 없었다.

붓으로 대충 휘갈겨 쓴 듯한 그 투박한 글씨체가 묘하게 압도적이었다.

이전 03화제3화 지도에는 없는 수리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