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낡은 나무 문을 조심스럽게 밀었다.
끼이익—
녹슨 경첩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훅, 하고 기묘한 향기가 코끝을 덮쳤다.
그것은 오래된 도서관에서 맡을 법한 종이 냄새 같기도 했고,
비 온 뒤 숲속의 젖은 흙 냄새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엔 은은한 라벤더 혹은 로즈마리 같은 허브 향이 깔려 있었다.
기름 냄새와 쇠 냄새가 진동할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아늑하고 신비로운 향이었다.
바깥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한겨울인데,
가게 안은 보이지 않는 난로를 피운 듯 훈훈했다.
공기의 질감 자체가 달랐다.
"계십니까?"
내 목소리가 먼지 쌓인 공기 중에 흩어졌다.
내부는 밖에서 볼 때보다 훨씬 깊고 넓었다.
천장까지 닿는 높은 원목 책장에는
책 대신 온갖 잡동사니들이 빼곡했다.
깨진 렌즈, 태엽이 멈춘 오르골, 필름 카메라, 깃펜, 그리고 수십 개의 모래시계들.
천장에는 모빌처럼 다양한 크기의 돋보기들이 매달려 반짝거리고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돋보기들을 통과하며 바닥에 기하학적인 무늬를 그려내고 있었다.
째깍, 째깍, 째깍.
수백 개의 시계가 서로 다른 박자로
돌아가는 소리가 묘한 최면처럼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책장 뒤편,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은, 물기가 어린 듯한 부드러운 미성(美聲)이었다.
사람의 목소리라기엔 울림이 너무 맑았다.
곧이어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들고 있던 망원경 케이스를
바닥에 내려놓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이 먼지 구덩이 같은 낡은 가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
창문 틈으로 들어온 햇빛을 받아 은색으로,
혹은 회색으로 오묘하게 빛나는 애쉬 그레이 톤의 머리카락.
큰 키에 마른 체구였지만 어딘가 단단한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나이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십 대 같기도 했고, 눈빛만 보면 훨씬 더 많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건 그의 눈동자였다.
컬러 렌즈를 낀 걸까?
그의 눈동자는 투명하고 깊은 에메랄드빛을 띠고 있었다.
마주치는 순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면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눈이었다.
그는 짙은 갈색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고,
긴 손가락에는 얇은 흰 면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손에는 아주 작은 정밀 드라이버와 부드러운 융이 들려 있었다.
"아... 그, 인터넷 보고 찾아왔는데요. 수리가 가능한가 해서요."
내가 어깨에 멘 케이스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더듬거렸다.
남자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내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기분 나쁜 시선은 아니었다.
마치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의 환부를 들여다보듯,
덤덤하면서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물건이 많이 아프군요."
그가 대뜸 말했다.
나는 아직 망원경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케이스 뚜껑도 열지 않았는데.
"네? 아... 네. 좀 오래된 거라. 관리를 못 해서..."
"주인도 많이 아프고요."
그의 시선이 내 충혈된 눈과 거친 피부,
그리고 며칠째 깎지 않아 까칠한 턱수염에 머물렀다.
뜨끔했다.
팩폭이라고 해야 하나.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초면에 듣기엔 당황스러웠다.
"일단 물건부터 봅시다."
그가 작업대 위를 손으로 쓸어 공간을 만들었다.
작업대 위에는 분해된 회중시계와 알 수 없는
광석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나는 케이스를 열고 경통을 꺼내 작업대 위에 올렸다.
묵직한 금속음이 울렸다.
그는 익숙하고 우아한 손놀림으로 대물렌즈 캡을 열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펜 라이트를 꺼내 렌즈 내부를 비췄다.
"흐음."
그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곰팡이가 하얗게 피어오른 렌즈,
그리고 그 한가운데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선명하고 날카로운 균열.
누가 봐도 사망 선고를 받은 물건이었다.
수리가 아니라 폐기가 답인 상태.
"힘들겠죠? 부품도 없을 테고... 인터넷 보니까 렌즈가 깨지면 답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체념하듯 묻자,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작업대 위의 조명을 받아 묘하게 반짝였다.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단호한 대답이었다.
"유리가 깨진 건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한 다시 붙지 않으니까요. 억지로 붙인다 한들, 빛이 굴절되어 상이 맺히지 않습니다. 깨진 거울로 얼굴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죠."
역시나.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지만, 기적은 없었다.
헛걸음이었다.
그깟 별 하나 보겠다고 여기까지 온 내가 한심해졌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바람이와 나무에게 미안해졌다.
괜히 기대했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바쁘신데..."
나는 망원경을 도로 집어넣으려 손을 뻗었다.
그냥 가는 길에 고물상에 넘기거나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의 하얀 장갑 낀 손이 내 손목을 부드럽게 잡았다.
놀라울 정도로 따뜻한 온기가 장갑 너머로 전해졌다.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그가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네? 아까는 불가능하다면서요."
"물리적인 복원 말고, 광학적인 보정은 가능하니까요."
그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손님."
"네, 네."
"이걸로 무엇을 보고 싶으신 겁니까?"
질문이 훅 들어왔다.
'별을 보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 투명한 눈동자 앞에서는 거짓말이나 겉치레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내 망원경이 아니라, 내 마음을 수리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단순히 천문 관측을 하려고 이 고물 망원경을 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입술을 달싹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어제 우연히 밤하늘을 봤는데, 이상한 별이 하나 보여서요. 보통 별이랑은 좀 다르게 반짝거려서... 그게 뭔지 꼭 좀 보고 싶습니다."
최대한 건조하게 말했다.
직업적인 호기심인 척, 덤덤하게.
하지만 내 대답을 들은 그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별이 아니라, 마음을 보고 싶은 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