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별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내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거였으니까.
그 별의 깜빡임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이길 바라는,
그 근거 없는 직감을 확인하고 싶은 거였으니까.
"좋습니다. 수리해 드리죠."
그는 작업용 확대경을 눈에 끼우더니,
선반 깊숙한 곳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라벨도 붙어있지 않은 그 병에는
투명하고 끈적해 보이는 액체가 담겨 있었다.
그는 부드러운 융에 그 액체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그러자 융에서 은은한 빛이 감도는 것 같았다.
"이 작업은 조금 섬세함이 필요해서요.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는 융으로 깨진 렌즈 표면을 아주 천천히, 원을 그리며 닦기 시작했다.
슥, 슥.
단순히 닦는 행위일 뿐인데, 묘했다.
그의 손끝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미세한 빛무리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가게 안의 공기가 한층 더 따뜻해지고,
째깍거리던 시계 소리마저 리듬감 있게 들려왔다.
마치 숲속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것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아침부터 나를 괴롭히던 지끈거리는 두통과
묵직한 피로감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홀린 듯 그의 손놀림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수리가 아니라 마치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융을 내려놓고 고글을 벗었다.
나는 얼른 다가가 렌즈를 들여다보았다.
놀랍게도, 렌즈 안쪽을 뒤덮고 있던 하얀 곰팡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유리는 새것처럼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렌즈 중앙의 금은 그대로였다.
"금은... 못 없앴네요."
아쉬움에 내가 중얼거리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일부러 남겨둔 겁니다."
"네? 깨진 렌즈로 어떻게 별을 봐요? 빛이 다 산란될 텐데."
"그 틈이 있어야 빛도 들어오는 법이니까요.
완벽하게 매끄러운 렌즈보다,
상처 입은 렌즈가 때로는 더 깊은 곳을 비추기도 합니다."
그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며 망원경을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이 망원경은 이제 보통의 렌즈와는 다를 겁니다.
빛의 굴절률을 조금... 특별하게 조정했습니다."
"특별하게요?"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 영역 너머, 마음의 파장까지 잡아낼 수 있도록요."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집에 가서 설치하고, 배율 노브를 끝까지 돌려보세요.
믿음이 강할수록 더 선명하게 보일 겁니다.
하지만 의심하거나,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면 초점이 흐려질 거예요.
당신의 마음이 곧 렌즈니까요."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과학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이 공간, 이 남자 앞에서는 그게 진리처럼 들렸다.
마치 코딩할 때 논리적인 오류가 없는데도 버그가 나는 상황처럼,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 법이니까.
나는 지갑을 꺼냈다.
특수 약품 처리까지 했으니 꽤 비쌀 것 같았다.
현금을 넉넉히 챙겨 오길 잘했다.
"얼마... 드리면 될까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돈은 됐습니다."
"네? 아니 그래도... 꽤 고생하셨는데. 재료비라도 받으셔야죠."
"대신."
그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중에 아주 맛있는 커피나 한 잔 사 오세요. 제가 믹스커피는 별로 안 좋아해서."
"커피요?"
"네. 아주 향이 좋은 걸로요. 원두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를 좋아합니다."
구체적인 주문에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90도로 인사를 하고 망원경을 챙겨 가게를 나왔다.
공짜로 수리를 받다니.
뭔가 죄송하고 찜찜했지만,
그의 태도가 너무 단호해서 더 권할 수가 없었다.
가게 문을 나서자 다시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닥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춥지 않았다. 가슴 한구석이 훈훈한 기운으로 채워진 것 같았다.
어깨에 멘 망원경 케이스가 올 때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등 뒤에서 낡은 나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언덕을 내려오며 뒤를 돌아보았다.
파란 대문 집 옆, 어두운 골목.
저 안에 정말 가게가 있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골목은 고요했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 이름도 못 물어봤네.'
명함도 없었고, 영수증도 없었다.
다음에 오면 이름부터 물어봐야지.
그리고 제일 비싼 원두커피를 사다 드려야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 발걸음이 빨라졌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바람이와 나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아빠가 뭔가 해냈다고.
빨리 밤이 왔으면 좋겠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었다.
멈춰있던 내 시간의 톱니바퀴가 아주 조금씩,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망원경 접안렌즈 뚜껑을 만지작거렸다.
그 남자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믿음이 강할수록 선명하게 보일 겁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었지만,
내 눈에는 벌써 저 너머에 있을 별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