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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May 13. 2024

"왜 하필 호텔이야?"

“호텔리어를 보면 정돈된 멋에서 오는 맵시가 있어요. 그리고 저는 호텔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좋던데요.”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호텔에 들어가 볼 일이 생겼다. 멋진 공간에서 깔끔한 유니폼을 입고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들의 포스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변호사, 의사보다 멋져 보였다. 호텔리어는 손님을 직접 응대하는 프런트 오피스와 사무직군인 백오피스 두 가지로 구분된다. 나는 컨시어지, 벨맨, 도어맨, 하우스키핑 등 프런트 오피스 직무 중에서도 가장 전문성이 필요해 보이는 ‘컨시어지’라는 직무에 관심이 갔다. 


컨시어지 프랑스에서 유래된 말로 중세 시대 성을 지키며 초를 들고 성을 안내하는 사람인 'le comte des cierges(촛불관리자)'에서 유래된 이다. 고객을 맞이하며 서비스를 총괄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나 최근에는 개인비서처럼 고객이 필요한 정보 및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리인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컨시어지 서비스에는 짐 들기를 비롯해 교통 안내, 관광 · 쇼핑 안내, 음식점 추천 · 예약 정보 제공, 고객이 직접 구하기 어려운 티켓 구매 대행 등까지도 포함된다. 


무엇보다 컨시어지로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레끌레도어 배지를 갖고 싶었다. 프랑스어로 ‘황금열쇠’를 뜻하는 레끌레도어는 세계 컨시어지 협회의 엄격한 심사와 시험을 거쳐 베테랑 컨시어지를 인증하는 제도다. 레끌레도어가 되면 양쪽 옷깃에 황금 열쇠가 교차된 배지를 유니폼에 패용한다. 현재 레끌레도어 정회원은 전 세계 4천여 명, 국내에는 약 25명이 활동하고 있다. 시험 절차만 4단계, 엄격하고 까다로워 신뢰도가 높다. 양쪽에 황금 열쇠를 달고 있는 호텔리어를 만난다면 프로페셔널한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다.


호텔리어가 되기 위해서 내가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스위스나 호주 등의 호텔 전문 학교로 입학하는 것. 하지만 대한민국의 지독한 입시 과정을 거쳐 입학한 대학을 두고 갑자기 유학을 가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그 동안 뒷바라지 해준 그들에게 대놓고 불효인 것 같아 고민없이 제외했다. 유학 외 다른 방법도 충분히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는 호텔 인턴 경험을 통해 경력을 쌓는 것이다. 나는 일반 경영학 전공자다. 호텔 실습은 불가하나 “무급도 괜찮으니 인턴을 하고 싶다.”며 호텔 인사 팀에 직접 찾아가 서류를 내밀었다. 다행히 이 들이댐을 남다른 적극성으로 인정받아 호텔 비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기업 소재의 5성급 호텔에서 2번의 인턴십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학부 졸업 후, 동기들은 은행, 회계사, 대기업의 경영지원 부서로 이미 취업을 했다. 인턴십을 통해 호텔이  궁금해진 나는 여전히 흥미를 가지고 호텔 취업 준비를 했다. 동기들하고는 확실히 다른 길이었다. 다만, 레저업계는 보수가 높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대기업 소재 호텔 공채 위주로 지원했다. 공채로 입사하는 것만이 호텔 취업의 명분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업 공채는 사무직 군인 백 오피스 업무에 한해서 모집했다. 상반기 공채를 모집하는 대기업 총 2군데 지원하였고 하나는 내가 첫 번째 인턴십을 한 A 그룹이었고 다른 하나는 C 그룹으로 모두 서울 중심지의 5성급 호텔이었다.


지원 직무는 ‘객실 세일즈’. 지원자들의 90% 이상은 마케팅, 영업이라고 명기할 뿐 이 직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인턴 경험을 통해 해당 직무를 자세히 이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객실 세일즈’라는 직무의 존재는 물론 어떤 일을 하는지 내가 왜 그 직무를 하고 싶은지 누구보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호텔 비 전공자가 2번의 인턴십을 거쳐 객실 세일즈 업무에 지원하고 호텔의 대표 상품인 객실을 팔아보겠다고 어필한다. “쟤 뭐야?” 면접 관들은 시종일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호텔리어가 되고 싶은지 지난 시간과 경험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리라.


서류, 인 적성검사, 면접 3단계 모든 과정을 마치고 며칠 뒤, C 그룹으로부터 합격 통보 전화를 받았다.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트랜스포머’가 개봉하던 날, 코엑스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가 전화를 받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남자 1명, 여자 1명, 최종 합격자 2명에 내가 포함되다니!  대학에 합격한 이후로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한 기분. 인생 살면서 가장 큰 기쁨 중에 하나였다. 2009년, 감사하게도 내가 희망하던 객실 세일즈 직무로 그토록 바라던 호텔리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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