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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카페에서 홀로

by 오제이


주말에 홀로 카페에서 두 시간 이상, 어쩌면 세 시간가량을 혼자 있어 보았는가? 나는 그랬다. 오늘 처음 그런 시간을 가져봤다. 한 시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은 채 계속 거기에 머물렀다. 마치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분위기를 잡고 고고하게 차를 마셨다.


그러나 실상은 이러했다. 어제 읽다 만 책을 조금 읽다가 영 집중이 잘 안돼서 숏폼 영상을 조금 보다가, 다시 책을 보다가, 그림을 살짝 끄적여 보았다. 그냥 이것저것 실속 없는 일을 하며 바쁜 척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곳에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고 그 시간을 즐기는 내 모습이 멋쩍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낸 것 없는 내실 없는 그 시간은 자칫 낭비가 될 될 수도 있었지만, 나의 왼편과 오른편 테이블에 있던 두 팀의 사람들 덕분에, 그 시간은 작지 않은 의미를 갖게 됐다.



오늘은 주말인데도 아내가 출근을 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집에 있으면 또 늘어질 것 같아서, 아내가 나갈 때 함께 길을 나섰다. 우리는 한참을 걷다 전철역 앞에서 갈라졌다. 아내는 사무실로, 나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우리 동네에는 골목마다 스타벅스가 있는데도, 자리 잡는 건 늘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그러나 오늘은 혼자인 몸이기 때문에 마치 맛집의 1인석을 노리듯 희망을 품고 전철역 앞의 붐비는 지점의 문을 열었다.


역 앞 스타벅스는 지금껏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세 번 모두 좌석 잡기에 실패했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사람이 가득했고, 자리는 있는 듯하면서도 없어 보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세 개의 테이블이 이어진 좌석이 있었는데 양 끝 두 개의 테이블에만 사람이 앉아있던 것이다. 내 눈에는 그 중간에 껴있는 테이블이 빈자리로 보였던 것이다.


'저기요. 여기 자리 있는 건가요?'


나는 빈 것으로 추정되는 테이블에서 비교적 몇 센티쯤은 더 가까워 보이는 테이블의 손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주머니는 괜찮다며 나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잠시 엉덩이를 들썩했다. 사실 그 들썩임이 자리를 만든 건 아니었고, 그저 형식적인 움직임이었는데, 나는 그 모양새가 재미있어 작게 웃었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나의 왼쪽에는 아주머니 두 명, 오른쪽에는 5살 남짓한 여자아이와 그 어머니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한 명 있었다. 두 테이블 모두 아직 테이블 위에 음료는 없었다.


나는 사이렌 오더로 평소처럼 오늘의 커피 샷 추가를 주문했다. 내 앞으로 열네 팀이나 대기가 있다는 알림이 울렸다. 나의 왼편 테이블과 오른편 테이블 모두 음료가 없는 걸로 미루어 보아 그들의 것이 나와야 내 것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한참 책을 보다 보니 픽업 메시지가 도착했다. 양쪽에 있는 손님들보다 내 음료가 먼저 나왔다. 내 주문이 단순해서 그런가 보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곧이어 오른쪽 테이블의 알람이 울렸고 아이의 어머니는 접시 한가득 음료와 케이크를 담아왔다.


그러나 한참을 있어도 왼쪽 테이블은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수상하리만치 자주 그리고 요란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들은 아마도 잠깐 추위만 피했다가 가려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았다. 주문하지 않고 잠시 머물러 가는 게 쑥스러워 점원 눈치가 보는 모양이었다.


'스타벅스에서는 주문 없이 매장을 이용해도 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가 문득 얼마 전 읽었던 기사가 떠올랐다. 이제부터 음료 주문을 하지 않으면 매장 이용을 제한하겠다는 북미지역에서 새롭게 바뀐 정책에 대한 기사였다. 그 기사를 읽은 게 불과 지난달의 일인데, 지금 즈음이면 한국에도 도입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맛보다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브랜딩 철학을 가진 스타벅스였는데, 공간에 대해 다소 인색해지는 변화가 진행된다는 소식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사실 이런 게 바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의 증거겠지만, 아무래도 공짜 서비스가 이어지다 가격을 메기면,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은 건 나만의 일은 아닐 테다.


그래서 나는 이런 고민을 해봤다. '어떻게 하면 손해 보는 기분 없이 회사도 좋고 고객도 좋게 만들 수 있을까?' 이에 내가 내놓은 답은 '스며들게 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가격을 올리면서 동시에 시간제한이 있는 추가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인데, 예를 들어 온라인 구독 요금제의 비용을 올려야 한다면, 일정 기간 동안은 몇 가지 프리미엄급 혜택을 추가해 주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음식점에서 가격을 올려야 한다면 한 달 동안 특별 음료를 제공한다던가 올린 금액만큼의 할인권을 제공해 주는 것이 그런 방법이겠다.


비록 이런 일은 조삼모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돈 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왠지 손해 보지 않는 기분을 들게 만들고, 파는 사람 입장에서도 이후 추가 수익까지 노려볼 수 있으니 마케팅적으로 꽤 괜찮은 아이디어가 아닐까 싶다.



나는 요즘 마케팅에 대해 꽤 깊은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재밌는 생각이 수시로 떠오르곤 한다. 오늘 저녁 아내와 함께 간 미역국 식당에서도 그랬는데, 식당의 매출을 올릴 마케팅 아이디어를 내놓느라 미역국이 식는 줄도 몰랐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떠들길 좋아하는 걸 보면 마케팅은 확실히 내가 흥미롭게 여기는 분야가 맞는 듯하다. 그러면 당연히 '본업으로도 해볼까?'라는 마음속 유혹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이 역시 마케팅 일의 가장 달콤한 부분이기에 흥미가 생겼을 뿐인, 그 뒤에 놓은 복잡하고 지진한 일들을 맛보지 못했기에 드는 풋내기의 어리숙한 생각일 것이라 여기며 유혹을 밀어낸다.


그럼에도 당분간은 이 흥미로운 일은 계속될 예정이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이러다 내가 광고업에 종사하게 될지.


아 참, 글을 쓰며 기사를 몇 개 뒤적여본 결과, 아직 국내 스타벅스의 규정은 변화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 앞으로도 가끔 우물가에 들르듯, 비 오는 날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듯,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편히 들러 몸을 녹이다 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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