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 흘러갔지만, 마지막이 조금 달랐던 날이었다. 오늘은 아침에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운동을 했다. 평소라면 조금 미루다 시간이 임박했을 때 부랴부랴 해치우듯 했을 텐데 웬일인지 바로 시작하고 싶어졌다. 이어지는 오전 근무도 막힘없이 잘 해냈고 오늘은 뭔가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후가 되며 슬슬 졸음이 오더니 급기야 정신을 못 차리고 해롱대기 시작했다. 병든 닭처럼 고개를 조아리며 꾸벅꾸벅 졸았는데, 낮잠을 조금 자도, 커피를 연거푸 들이켜도 도통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사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다 있었다. 첫 번째 이유이자 가장 큰 이유는 전날 밤, 그러니까 오늘 새벽 2시 30분경에 울린 재난문자 때문이다. 소리를 들어보니 아내의 전화에서 울린 것 같았다. 아내의 전화기로는 사소한 경고가 다 뜨기 때문에 이번에도 큰일은 아닐 거란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왠지 신경이 쓰였다.
혹시 밖에 눈이 너무 많이 왔나? 북한이 로켓을 쐈나? 아니면 대통령이 홧김에 뭐라도 했나? 무슨 내용인지 확인하지 않았더니 그 내용에 대한 상상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게다가 아내가 자꾸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보채는 통에 결국 거실로 나와 휴대 전화를 확인해 봤다. 먼 곳에서 발생한 작은 지진 때문에 보내진 것이란 걸 알고, 이기적인 마음이겠지만 속으로 살짝 안도했다.
그러나 이미 잠에서 깨어버린 탓에 나의 수면 주기는 깨져버렸고 그 뒤로 두 어 시간을 뒤척이다가 4시 반경 일어나서 출근했다. 이러니 피로했을 수밖에.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피로의 이유는 회사에서 점심으로 돈까스를 먹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점심에 샐러드를 먹지만, 가끔 동료들과 함께 외식을 즐기기도 한다. 어제 퇴근 직전에, 할라피뇨 님이 나와 엠제이 님에게 다가와 "우리 복날마다 갔던 신라원 삼계탕 집 있죠? 거기가 사라지고 돈까스집이 오픈했어요. 내일 같이 가볼 사람~" 하고 유혹했다. 제육볶음과 돈까쓰는 백전불패의 메뉴이므로 나는 기쁜 마음으로 승낙했고, 그리하여 오늘 점심에 돈까스 집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새로 생긴 돈까스 집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가게에 도착하기 전 멀리서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한 게 보였고, 나는 본능적으로 오늘 점심을 일찍 먹긴 글렀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가게는 5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밖에서 대기하는 손님만 스무 명은 되었다. 가게 앞에 도착해 내부를 훑어보니 아직 음식을 받지 못해 맹물만 홀짝이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 그리고 그 나머지 역시 이제 막 식사를 시작한 사람으로 파악됐다.
'분명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겠군.'
그런 생각이 들며 살짝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지만 우리는 후퇴하지 않았다. 일부는 가게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서, 나머지는 가게 밖에서 눈 보라치는 추위를 견디며 30분 정도를 기다린 끝에 결국 '마장동에서 직접 떼온 우리 돼지로 만든 수제 돈까스'를 맛보게 됐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막상 맛본 수제 돈까스는 그리 훌륭하지 않았다. 아마 장사 초기라 이것저것 맞춰가는 중이어서 그랬으리라. 손님의 대기열을 처리하는 것부터 가게 벽면을 장식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까지, 여러 근거로 미루어 보건대 사장님은 장사에 처음 도전하는 모양이었다. 시작하는 사람에게 비난보다는 응원을 주는 것이 강호의 도리이므로, 나는 더 이상 그곳을 평가하지 않기로 다짐했고, 사장님을 응원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밥공기와 돈까스 접시를 새것처럼 싹싹 비운 뒤 가게를 나섰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점심에 매번 샐러드를 먹으며 가볍게 살아오다가, 오랜만에 탄수화물로 배를 단단히 채웠더니 귀신같이 식곤증이 몰려왔다. 그리하여 맛은 몰라도 포만감에서만큼은 제 역할을 해준 돈까스 덕에 나는 비몽사몽하며 오후 시간을 떠돌게 됐다.
그 뒤로 잠을 깨기 위해 커피를 두 세잔 다이렉트로 마셔보고 계단도 타봤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이것은 자야 끝나는 게임이었다. 그래서 나는 퇴근 후 곧장 집으로 와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계획한 일은 거의 다 해냈지만 저녁에 할 일은 하나도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불현듯 마음이 불편해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일 조금 더 바쁘게 움직여야지. 오늘 밤은 지진이 없길.이라는 마음으로 잠을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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