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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쉰다는 건 무엇일까

by 오제이


하루는 온종일 쉬고 싶은 날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고 먹고 자고 대소변만 가리며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고 싶었은 그런 날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런 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 보다, 오히려 바쁘지 않게 그럭저럭 살아갈 때다.


바쁜 날은 얼른 잠들어서 체력을 회복할 생각밖에 들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잡생각 없이 그저 하루하루 충실하게 된다. 반면에 한가로운 날에는 '삶이 이렇게 한가로우면 낭비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라는 마음도 든다.


그러면 내가 정말 보상이 필요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냐고 되물어보곤 하는데, 나는 나 자신에게도 솔직한 타입이기 때문에 그 질문에 대한 답변도 우물쭈물하며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아무튼 나는 어느 날, 마음먹고 진지하게 쉬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잘 쉬는 게 무엇인지 집요하게 머리를 굴렸다. 맛있는 걸 먹는 걸까?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유명 맛집에 가서 평소라면 생각지도 않을 만큼 비싸고 양이 적은 메뉴를 골라가며 한껏 사치를 부리는 게 진짜 쉬는 걸까?


아니면 두뇌에게 피로를 주지 않으며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맞을까? 동남아나 동해안 해안 길에 숙소를 마련하고 찰랑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선베드에 누워 비타민 D를 흡수하는 것처럼?


그 밖에도 여행을 한다거나 하루 종일 티비를 본다거나, 쇼핑을 한다거나. 술을 마시거나 오락을 하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휴식을 취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도 나는 무엇 하나를 으뜸이라고 꼽기가 어렵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다 문득 엉뚱한 생각도 떠올랐다. 일하는 건 왜 휴식이 될 수 없을까? 휴식이란 말이 일의 정반대 편에 놓인 단어는 아닐 것 같은데 말이다.


어떤 말의 참뜻을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일이며, 인류와 문화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 일을 따로 도맡아 하는 학자들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요즘엔 위키 백과처럼 그런 일에 집단 지성을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나도 전통적인 사전보다는 위키를 읽는 걸 더 좋아한다.



최근 현대인의 불안에 관한 기사를 하나 읽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 가운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런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어떤 불안이냐면, 퇴근한 다음부터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이 의미 없이 흘러가는 걸 못 견디고 초조해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말에는 어디로든 나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만약 집에만 있게 되면, 자신이 사회에서 도태되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바보가 된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기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것 같았다. 나도 그런 불안을 느껴본 적이 있기에 공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안타까운 심정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이런 현대인의 조급함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과거에 그런 불안을 느꼈었는데, 그때 내 머릿속에는 내가 없었던 것 같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나의 현재나 미래를 떠올릴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휴가를 맞아 여행하는 상상을 할 때면 머릿속에는 노홍철 님이나 빠니보틀 님이 세계 여행을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식사를 할 때도, 놀이공원을 갈 때도, 나보다 앞서 그것을 해낸 사람의 기쁨을 떠올랐고 그것이 내 인생인 양 미래를 예측할 때 그들의 이미지를 가져다 놓는 습관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심각한 비약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습관을 두고 '자기 인생에 주인공이 자신이 아닌 삶'이라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일이 습관이 된 사람은 결국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흉내 내는 것 밖에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나는 다른 사람이 하는 걸 그저 참고만 하는 것이다'라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정말 말 그대로 참고만 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가 떠오르는 것처럼, 누군가의 인생을 참고하고 나면 결국 그 일을 하는 내내 그 기억이 망령처럼 따라다니게 된다.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비교를 멈추고 자신만의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정답을 하직 구하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통해 희미하게나마 힌트를 얻을 수는 있는데, 내가 얻은 힌트는 '자기만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흔한 말이고, 조금은 고리타분한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오래 살아남은 데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고전을 추천하는 것 아닐까 싶다. 오늘은 고전을 조금 들여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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