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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세탁소

by 오제이


이번 설에 부모님을 찾아뵈었을 때의 일이다. 어머니께서 준비한 갖가지 음식을 차려 놓고,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다른 집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명절에 모일 때면 과거에 우리 식구가 얼마나 지질하고 힘겹게 지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얼마나 복받고 행복에 겨운 삶인지를 늘어놓는 걸 좋아하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아버지께서 그 이야기의 서막을 올리셨다.


'OO아, 예전에 우리 집이 얼마나 추웠는지 아느냐. 외풍이 너무 심해서 한 겨울에도 실내가 바깥처럼 추웠단다. 그때 그렇게 춥게 지냈으니, 우리 애들은 아마 어지간한 추운 집에서도 잘 지낼 거야. 너희 집이 노후화돼서 춥다고 했지? 그래도 오제이는 옛 시절부터 추위에 단련이 된 덕에 이제 감기도 잘 안 걸리고 건강하게 잘 살 거다.'


아버지의 의중이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나로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 시절 나는 추위로 고생만 했고 그로 인해 지금 도움이 되었다거나 하는 일은 결단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시절은 이렇다. 한파가 아니어도, 나는 겨우내 두터운 외투를 입고 생활했고 심지어 잠을 잘 때도 패딩을 입었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 입김이 나왔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 80~90년대도 아닌, 21세기에 말이다.


또한 손발이 너무 차가운 탓에 집에서는 어떤 생산적인 일도 할 수 없었는데, 그저 전기난로를 껴안고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며 겨울이 지나길 손꼽아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전기난로 이야기를 하니 또 사건이 하나 떠오른다. 한 번은 난로를 켜 놓고 자다 이불에 불이 붙어 집을 홀랑 태울 뻔하기도 했다. 한밤중에 어머니가 나를 깨워 피신하고 아버지가 불을 끄는 등 여간 소란이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보일러는 온수를 만드는 기능을 못해 매일같이 들통에 물을 끓여가며 샤워를 했고, 그마저도 순서를 기다리며 물을 쓰다 보면 막내인 나는 늘 다 식은 찬물로 씻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불행한 보일러는 늘 고장 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어디서 구했는지 신통할 정도로 다 부서져가는 중고 보일러를 가져다 달아 놓은 탓에, 나는 같은 문제를 반복하며 살아야 했다.



나는 이런 불행한 과거를 그런 식으로 포장하는 일이 너무 억지스럽고 못마땅하여 이야기를 바로잡길 원했으나, 아버지의 자랑스럽고 만족스러운 얼굴을 보고 있으니 내가 굳이 그것을 정정한다고 해서 누구 한 명의 기분도 더 나아질 것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혀끝까지 차오른 말을 도로 깊이 넣었다.


하긴 조금만 더 긍정적으로 조금 더 넓은 아량을 갖고 생각해 보면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그 시절 어려운 형편 덕에 나는 이렇게 살아남아 끈질기게 성공을 쫓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움 속 빈번히 발생한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수많은 꽤를 내야 했고, 그런 자잘한 시련이 반복되면서 문제해결력이 상승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 모든 것들이 정말 모를 일이다. 결과론 적으로 볼 때야 끼워 맞추고 억지로 이어 붙일 수 있겠지만, 내가 지금 이루고 가진 것들을 모두 그 시절의 힘겨움 덕이라고는 확신에 차 말하기 힘들 것 같다.


그럼에도 한 가지 제법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결핍이 내 횃불 같은 실행력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많이 가진 채 시작했다면 결코 가질 수 없었을 능력, 그것을 만들어 준 지긋지긋한 가난과 부모님께 감사하는 이 아이러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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