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숲이 필요해

by 오제이


요즘 조금 기분이 가라앉고 울적하다. 그 울적한 이유가 조금 바보 같아 더 슬프다.


내게는 싫은 사람이 한 명 있다. 그런데 내가 그를 싫어하는 이유가 그간 내가 지켜온 신념에 어긋나는지라 마음이 편치 않은 상황이다. 남들에게는 바르게 사는 삶의 근사함에 대해 떠드는 나인데, 막상 내 삶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걸 보며 큰 실망과 우울을 느끼고 있다.


사람이라면 다 그렇다는 말은 전혀 위로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신념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인데, 이런 중대한 상황을 그저 그런 말로 대충 때우자니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나는 지금 상황을 마치 '채식주의자가 밤마다 몰래 소시지를 먹으며 느끼는 죄책감'과 동일시한다. 이 불안과 불쾌를 어떤 말로 표현해야 좋을까. 어디든 누구든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휴대용 대나무 숲이 있었으면 좋겠다. 말하면 속이 싹 풀리고 잊어 없어져 버리는 그런 제품, 어디 없으려나?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요즘이다.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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