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바다를 보며 살고 싶었다. 수십 년을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살아온 터라, 넘실대는 물결과 탁 트인 수평선을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시원해지는 듯했다. 결혼을 하고 산골을 벗어나 서울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리게 된 이후에도 그 마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사는 곳의 마운틴뷰도 꽤 훌륭하지만, 힘겨울 때 바다로 달려가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서 있고 싶다는, 어쩌면 허황되지만 간절했던 마음은 더욱 자주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런 삶에 로망이 있었다. 출렁이는 파도에 마음을 얹고, 때론 조용히 부서지고 때론 거칠게 일렁이며 살아가는 삶을.
그 마음을 품은 채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나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정말 서울에서의 삶을 내려놓고 강릉으로 간다면 나는 만족할 수 있을까?’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실제로 강릉에 매물을 찾아보던 시기였다. 내가 고른 강릉의 한 건물은 바다를 직접 바라보는 집은 아니었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해변을 밟을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서울을 떠난 삶을 구체적으로 떠올린 순간, 망설임이 파도처럼 들이쳤다. 조금 놀라웠던 점은 돈에 대한 걱정보다 내가 과연 그곳에서 만족할 수 있는 질문이 자꾸 마음을 가로막는다는 사실이었다. 돈은 어떻게든 되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강릉에 산다고 내가 달라질까? 서울에서 살 때와 무엇이 다를까? 서울에서도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데, 강릉이라고 다를까?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바다와 3시간 거리에 있는 바다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바다 풍경에, 쉽게 질리지 않고 오래 감탄할 수 있을까?’
북한산을 바로 앞에 두고도 1년에 한두 번 오르기 힘든 내가, 바다를 가까이 둔다고 자주 들르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해변에서의 피크닉, 스노클링, 서핑 같은 상상은 달콤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내 모습은 분명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을 생각하고 또 되짚는 고민의 끝에서, 나는 한 가지 물음과 마주하게 됐다.
‘나는 진정 바다를 원하는가, 아니면 바다를 가진 삶을 부러워하는가.’
그 물음은 꽤 단호하게 내 마음의 끝자락을 정리했다. 나는 강릉에서의 삶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단지 쉼을 원했던 것이고, 그 휴식의 형태를 바다에 투영해왔던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있었고, 그 지친 마음을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걸어두고 싶었을 뿐이었다.
무엇을 진짜 원하는가, 그리고 무엇이 그저 부러움에서 비롯된 욕망인가를 분별해 내는 일. 그건 삶을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뿌리 같은 감각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 질문을 떠올려야겠다. 내 삶이 기분 따라 흔들리게 둘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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