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이 지구에서 혼자 동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듯한 위화감을 느낀다.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나 혼자 다른 방향을 바라본 채 멈춰 선 듯하다. 지난 아침 을지로 거리를 산책할 때도 그랬다. 한참 걷다가 변압기 옆 가로수 아래에 멈춰 섰다. 가만히 서서 물 흐르듯 흘러가는 출근길 자동차들을 바라봤다. 마치 도시의 동맥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량의 흐름에 이 도시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안에서 나 홀로 멈춰있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힘차게 요동치는 핏줄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내가 낄 틈이 있을까.’
그 상황은 마치 단체 줄넘기 같았다. 빠르게 움직이는 줄 속으로 과감히 뛰어들어야 한다. 망설이면 반드시 줄에 걸린다. 줄에 걸리면 아프다. 그러니 아프지 않으려면, 용기를 내야 한다. 어린 시절 내 주변 친구들은 그쯤이야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줄 안으로 가뿐하게 뛰어들었다. 겁을 먹고 망설이는 건, 그때도 지금도, 늘 나 혼자뿐이었다.
친구들은 왜 이 쉬운 걸 못 하냐며 비웃었다. 한 친절한 친구는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뛰어들면 돼’ 하고 조언해 줬다. 하지만 나는 줄 앞까지 갔다가 다시 뒤로 물러난다. 아무 생각 하지 않는 것이 안 되었을뿐더러,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 도로 위 운전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고개를 돌려 가로수를 바라봤다. 잎사귀가 잘 관리된 이 나무는 도시의 혈관쯤일까? 제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 하고 있는 녀석이 새삼 대견해졌다. 나는 시선을 옮겨 좀 더 아래로 옮겼다. 그곳에는 배 위로 붉은색 띠를 두른 손톱만 한 공벌레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녀석은 뿌리 쪽 흙에서 기어 나와 인도 방향으로 30센티미터가량을 가로질러 갔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자기가 정한 길을 걸어가는 그 작은 몸뚱어리에게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당당함이 느껴졌다.
화단 속 풍경을 조금 더 들여다보니, 작디작은 새싹들과 이름 모를 벌레들이 눈에 들어왔다. 좁은 가로수 아래 작은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순간 감탄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나는 낄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것은 외로움이라기보다는 허전함에 가까운, 조금은 안쓰러운 감정이었다.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무리에 속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나는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꼈다.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이 도시에서 홀로 선 나의 모습을 떠올리니, 애처롭기까지 했다. 대체 무엇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겁이 날까.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왜 그 평범함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걸까. 그냥 눈 딱 감고 뛰어들면 될 텐데, 도대체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이러는 건지.
회사로 돌아가는 길, 길 위에 버려진 담배꽁초 하나를 발견했다. 얼마 타지 않고 꺼진 장초. '얼마나 급했으면.' 잠시 타올랐다 사그라진 그 담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너는 한 번쯤 불타오른 적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따라 긴 산책이었다.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