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 소음의 근원을 찾아서

by 오제이


우리 아파트는 지은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만큼 세월을 품은 나무들은 키가 크고, 각 동마다 1층 정원이 아기자기하게 가꿔져 있어 오래된 동네 특유의 사람 냄새와 정겨운 풍경이 곳곳에 배어 있다. 느린 엘리베이터, 여름이면 들끓는 날벌레, 늘 부족한 주차 공간 같은 단점도 있지만, 그런 불편쯤은 감수하겠노라 작정하고 들어온 터라, 아직까지는 큰 탈 없이 다정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 입주한 지도 벌써 햇수로 8년째.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보니 작은 문제들이 여기저기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아내도 나도 무던한 편인지라 웬만한 일에는 쉽게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는다. 윗집에서 밤마다 안마의자 진동 소리가 들려와도, 아랫집에서 여름이면 쉰내가 올라오고, 옆집 베란다에서 담배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들어와도 ‘사람 사는 데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웃어넘기기 일쑤였다.



그러나 아무리 무던하고 태평한 우리 부부라도 도무지 참기 힘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위층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망치질 소리였다. ‘쿵, 쿵, 쿵, 쿵, 쿠르르르르’ 마치 기계가 리듬이라도 익힌 듯 규칙적으로 울리는 그 소리는, 한 번 시작되면 몇 시간이고 이어졌다. 처음엔 그저 생활 소음이겠거니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점차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불안으로 바뀌었다.


‘안마의자 위치가 문제인가?’, ‘혹시 할머니가 화가 나서 할아버지에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시신을…?’ 어처구니없는 상상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우리는 그럴 리 없다면서도, 계속해서 답 없는 추측을 주고받았다. 이쯤 되면 찾아가서 직접 물어보는 것이 맞겠지만, 괜한 이웃 간의 불화를 만들기 싫어 또다시 참고 넘어갔다. 그런 날이 몇 번이고 반복됐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보다 신경이 곤두서 있던 주말 밤이었다. 쿵쿵거리는 소리에 뒤척이다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을 맞았다. 해가 뜨자마자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는 윗집으로 향했다. ‘이젠 더는 못 참아.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어.’ 현관문을 열고 비상계단을 오르는데, 바로 그 익숙한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쿵, 쿵, 쿵, 쿵, 쿠르르르.’ 그런데 이상한 점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이 위층이 아니라 비상계단 쪽이라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계단 틈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소리의 발원지를 추적했다. 모기와 사투를 벌이며 층계참에 숨어 있다가, 몇 번의 반복 끝에 드디어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람에 밀려 열리고 닫히는 비상문이 녹슨 경첩과 부딪히며 내는 마찰음이었다.



그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윗집 노부부를 의심하고, 그들을 내심 미워하고, 온갖 상상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를 화나게 만들었던 것은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둘러싼 나의 상상’이었다는 것을. 존재하지도 않는 행동을, 존재하는 것처럼 상상하고, 그 상상 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든 뒤, 그 허상에 분노하고 괴로워했던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던가. 실재하지 않는 대상을 만들어 화를 내다니. 그런데 그 소리의 주인이 자연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화는 신기하게도 사그라졌다. 불어오는 바람은 누구의 탓도 아닌, 그저 세상의 이치일 뿐이니까. 나는 그 바람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며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왜 사람에게는 화가 나고, 자연에는 화가 나지 않을까. 한참을 곱씹다 문득 마음이라는 것의 작동 방식을 알 것도 같았다. 사람에게는 의도가 있다고 믿기에, ‘그 사람이 나를 무시했을 거야’, ‘나를 괴롭히려는 거겠지’ 하고 감정을 덧입힌다. 그러나 자연에는 그런 의도가 없으니, 거기엔 화낼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사람을 자연처럼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그 역시 자연의 일부라 생각하고, 의도 대신 사연을 떠올린다면, 어쩌면 우리는 훨씬 덜 상처받고 덜 화내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날 이후로 어떤 층간 소음이나 냄새, 불쾌한 일이 닥쳐도 누군가를 쉽게 의심하거나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분명 사정이 있으리라. 어쩌면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면, 화낼 일은 의외로 사라진다. 오히려 마음이 조금은 여물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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