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우산

by 오제이


아침부터 우산을 잃어버렸다. 우산은 보통 버스에서 잃어버리기 쉽다. 그렇게 버스에 두고 내린 우산이 지금까지 몇 개인지 모르겠다. 이런 일이 잦아지자 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우산 고리를 가방에 메달아두거나 엉덩이에 깔고 앉기, 혹은 손에 쥐고 있는 등 갖가지 방책을 마련했다. 그리고 다행히 이제 좀처럼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버스에 타기도 전에 우산을 잃어버렸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 벤치에서, 곱게 우산을 접어 나의 왼쪽 허벅지 옆에 가지런히 내려두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신발끈을 묶으며, 오늘따라 마음에 들지 않은 양말 색과 신발의 불협화음을 두고 혼자 투덜거렸다. 그러던 와중에 버스가 왔다. 혹여 기사님이 나를 못보고 지나칠까봐 서둘러 버스로 뛰어들었다. 나는 보통 음식점에서 나올 때는 한 번쯤 뒤돌아본 뒤 나오는 습관이 있는데, 오늘 버스를 탈 때는 괜히 조급해져서 그걸 잊었다. 버스에 앉고나서야 우산이 떠올랐다. 속상했다. 오늘 하루는 덜렁대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아침이었는데.



우산을 얘기하니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잡지사에서 일하던 시절의 한 선배. 겉모습은 부드럽고 말투도 다정하지만, 나는 이상하리만치 그 사람과 맞지 않았다. 천성이 악한 건 아니었지만, 어떤 날은 가만히 있다가도 사람의 신경을 찌르듯 살짝 비틀어놓는, 애매한 종류의 악의가 묻어났다. 그 선배는 트러블 메이커로, 갖가지 사고를 쳤는데, 내가 가장 기억하는 에피소드는 단연 우산이다.


그 선배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일회용 우산을 가장 많이 산 사람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꼭 편의점에 들러 우산을 샀다. 어느 장마철에, 나는 물었다. “대리님 우산 또 잃어버리셨어요?” 돌아온 대답은 놀라웠다. “아니, 버렸어. 나는 비 그치면 우산 버려. 들고 다니는 게 귀찮거든. 비 오면 하나 또 사지 뭐. 비싼 골프 우산도 결국 버리게 되더라고. 그래서 아예 일회용 우산만 써.”


그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고학력 변태인 건 눈치챘지만, 그 정도의 어리석은 인간일 줄은 몰랐다. 귀찮다는 이유 하나로, 그렇게 태연히 쓰레기를 만들다니. 자기는 그냥 ‘버렸다’고 하지만, 그건 엄연한 무단투기 아닌가.


그가 우산을 버리는 방식도 기가 막혔다. 하나는 음식점 우산꽂이에 그대로 두고 나오는 것. 또 하나는 지나가는 가게 입구에 기대어 두는 것. 차라리 “필요한 분 가져가세요”라는 쪽지를 붙여 놓기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그런 건커녕 우산을 발견한 사람이 주인이 찾아 올까 염려되어 치우지도 못할 걸 알면서도 그 애매한 곳에 툭 던져 놓고 갔다.


그때부터 나는 그 선배를 ‘순수 악’이라 칭했다. 나도 괜히 그 악이 옮을까 봐 거리를 두었다. 그 뒤로도 그는 수없이 우산을 사고 버렸다. 나는 가끔 그 우산이 아까워 회수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는 내가 그 우산을 챙기는 걸 불쾌해했다. 도대체 무슨 심보람.


세상에는 우산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고, 우산을 버리는 사람도 있다. 정말이지, 이 얼마나 기이한 지구 생활인가. 그나저나, 오늘 잃어버린 우산, 꽤 좋은 거였는데. 좋은 새 주인을 만났으면 좋겠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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